본문 바로가기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선유동천 나들길~(1)칠우칠곡

by 안천 조각환 2019. 7. 25.

선유동계곡은 백두대간의 대야산(931m)을 가운데 두고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쪽에 각각 있는데

대야산의 서쪽계곡은 괴산 선유계곡이고 동쪽은 문경 선유계곡이다

문경 선유계곡은 10km 거리에 펼쳐져있는 길고 화려한 계곡이다.

계곡미가 빼어나 문경팔경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나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무척 깨끗하다.

계곡의 양 옆에 펼쳐진 깊은 숲과 계류를 덮어버리는 오랜 소나무들이 많아 운치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문경시에서 개발한 선유동천나들길은

운강 이강년기념관에서 시작하여 칠우칠곡을 거슬러 올라 칠리계까지 기며

칠우칠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선유구곡으로 이어져서  학천정까지 4km구간을 간다.

학천정에 솔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용추계곡이 나온다.

용추계곡길은 계곡길과 산길을 반복하며 용추폭포를 지나 월영대까지 가서

용추입구로 돌아오는 왕복 4.4km정도로 총 10km가까운 거리이다

 .

선유동천 나들길 시작지점


우초 이강년기념관

선유동천 나들길은 우초 이강년기념관앞에서 시작이다


우초 이강년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낙인(樂寅), 호는 운강(雲崗)이다

. 문경 출신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礻+甫)의 18대손이다.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로서 선전관이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낙향하였다가

1895년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가 시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을 생포해

농암(籠巖) 장터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효수하였다

단양·제천·원주·연풍·영주·강릉·봉화·충주·안동·문경 등 3도 14개 군에서 유격전을 전개했으며

1907년 7월 제천에서 적 500명을 무찔러 충청도·강원도 일대에서 명성을 날렸다.

이에 고종은 이강년을 도체찰사에 제수했으며,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되고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돌다리를 건너고



나들길에는 범부채가 활짝피어 반겨준다



칠우칠곡의 제1곡 완심대(浣心坮)표지판


선유칠곡 제 1곡에 해당되는 칠우대

이 바위에는 나이 순서대로 7명의 친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칠우들은 1884년(甲申)~1888년(戊子)생으로 

우은 김종율, 우석 정세현. 우초 민순호, 우송 김정익 , 우포 김양한, 우전 김정진, 우천 김종훈등 7명이다

이들중 우초 민순호의 자는 봉래(鳳來), 호는 우초(愚樵)이고

 1895년 민비학살사건과 단발령 실시로 반일기운이 높아지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일어나자,

1896년 1월 이강년을 따라 문경에서 전재산을 군자금으로 삼아 의병을 모았으며

유인석을 의병대장으로 연합부대가 결성되자 이에 호응해 돌격대장이 된 이강년의 종사(從事)로서

서상렬(徐相烈) 부대와 함께 조령에서 적과 싸웠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의병활동을 시작해

이강년과 함께 단양·제천·원주·연풍·영주·강릉·봉화·충주·안동·문경 등 3도 14개 군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민순호는 후군소모장으로 임명되어 영춘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긍호와 합세해

충주를 공격하는 등 각지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며 태백산 일대에서도 3년여 동안 계속 투쟁했다.


제2곡 망화담(網花潭)인근으로 계곡이 다소 변하고 풀이 우거져있다


칠우폭포


제3곡 백석탄옆



제5곡 홍류천(紅流川)






제7곡 칠리계(七里溪)

칠우칠곡은 보기에 다소 밋밋하여 별 관심없이 걸어 정확하질 않았다

조용한 기회에 다시한번 정확하게 답사하고자 한다.

칠우칠곡의 칠곡은 이른바 제1곡 완심대. 제2곡 망화담, 제3곡 백석탄,

제4곡 와룡담, 제5곡 홍류천, 제6곡 월파대, 제7곡 칠리계이다


파적곡(破寂曲)

파적곡은 고요함을 깨뜨린다는 뜻으로

칠우의 한사람인 우당 김종훈이 지은 가사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