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촌종택
안동 지촌종택(安東 芝村宗宅)은 의성 김씨 김방걸(金邦杰 1623∼1695)의 종가로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임하댐 상류 강변 지례예술촌에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7호이다.
. 김방걸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대사간과 대사성 등의 벼슬을 지낸 분이다.
건물은 1663년(헌종 4년) 에 지었고 지금 있는 자리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1985년 옮긴 것이다.
원래 지례마을은 도원향이라 불릴만큼 산자수명한 곳이었다.
김방걸은 아버지 김시온을 문안하러 자주 왕래하다가
도원 상류에 자리한 지례마을에 터전을 잡아 입향조가 되었다
본채와 곳간, 문간채, 방앗간 등과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 별묘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이 있는 문간채를 들어서면 마당을 지나 앞쪽에 본채가 있다.
지촌종택 대문채
대문채 측면
지산서당과 대문채 사이 담
지촌종택 본채
-본채에는 "하남"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본채 측면이며 본채뒤는 내당이다
이 건물은 원래 곡간이었으나 현재는 고택체험 식당으로 사용중이다
본채마당에서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은 내당으로 가는 출입문이고 오른쪽은 지산서당으로 가는 출입문이다
지산서당 전경(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
지산서당 바깥 출입문
지촌제청 출입문
의성김씨 지촌제청(경상북도 유형문화제 제505호)
-지촌의 제사를 모시는 곳-
지촌 김방걸은 1677년 사헌부 장령 재임시 임금에게 시폐(때의 폐단)를 상소하면서
폐단을 바로잡는 방법으로서 임금이 마음을 바르게 할것과
퇴폐된 기강을 바로 세울것을 주장하였으나 온갖 시기가 있어 곧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그 뒤 수찬, 사간, 응교를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로 올랐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고향에 돌아왔다.
1692년 사간원 대사간에 오르고 이듬해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였다.
1694년 병조참의를 거쳐 참지가 되었으나 동년 여름에 일어난 인현왕후 복위와 관련된 사건으로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는데 귀향한지 며칠만에 전라도 동복으로 귀양를 가게되고
1695년(숙종21년) 배소에서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다음은 김방걸이 당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향리로 돌아와 칩거하면서 지은 칠언절구 시다
臥滄江世月深(일와창강세월심) ‘창강(滄江)에 한번 누운 지 세월 오래되었는데
幽居不受點塵侵(유거불수점진침) 유거(幽居)에 티끌 하나 침입하지 못 하네
已知漁釣還多事(이지어조환다사) 낚시질 하노라고 도리어 일이 많아졌고
更覺琴碁亦攪心(갱각금기역교심) 금기(琴碁) 또한 마음 교란(攪亂)함을 깨쳤네
石榻任他風過掃(석탑임타풍과소) 석탑(石榻)은 그냥 두니 바람 불어 쓰러져 가고
梅壇輪與鳥來吟(매단윤여조래음) 매단(梅壇)을 내다보니 새[鳥]가 와서 노래하네
如今全省經營力(여금전성경영력) 지금에 경영하든 일은 모두 성략(생략)하고
終日無言對壁岑(종일무엄대벽잠) 말 없이 종일(終日)토록 푸른 산(山)만 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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