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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 (11)영천, 경주 순례

by 안천 조각환 2019. 9. 14.


매계 조위(梅溪 曺偉, 1454~1503)선생은 1484년 2월, 명나라에서 돌아온 후


4월에 경주 안강 양민공 손소(孫昭)의 치전관(致奠官)이 되어

양동마을로 조문을 가게되었는데 이때 고향인 금산(김천)으로 귀성했다가

선산(善山)길 잡아 영천을 거쳐 안강 양동마을 손소의 빈소에 가서 조문하고

 경주, 양산, 밀양을 거쳐, 창녕에 가서 선영을 찾아 참배하고 다시 한양으로 돌아 가게 된다.

때 영천에서는 청량당, 경주에서는 금장대, 무열왕릉, 첨성대 ,반월성, 포석정 등을

순례하면서 가는곳마다 시를 남겼는데 시(詩)속에서 당시의 실상들을 생생하게 드듬어 볼수 있다.

그리고 5월에 응교(應敎)에 임명되었고,  8월에는 걸군(乞郡)하여 함양군수에 임명되었다.


-치전관이란 나라의 주요인물이 사망 했을 시에 왕을 대신하여 조문의 예를 하게되는 관리를 말한다.


참고로 손소(1433~1484)는 경주 손씨 양동마을 입향조로 호는 송재이고, 시호는 양민공이다.

손소는 처가를 따라 양동마을에 정착하여 세거하였고, 세조5(1459)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주부·병조좌랑을 역임했으며, 이시애의 난 때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안동부사·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경주 안강에 있는 양동마을은

500여년전 당시 손소가 지은 손소고택을 비롯해 마을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영천에 있는 조양각은 명원루 혹은 서세루라고도 불리었고.

영남루,촉석루와 함께 영남 3루의 하나였다

원래는 명원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청량당과 쌍청당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37년(인조 15) 군수 한덕급(韓德及)이 중창하면서 이름을 ‘조양각’이라 고쳤다.

그 뒤 1742년(영조 18) 군수 윤봉오 3중창하였으나 1920년대에 모두 철거되고 조양각 1동만 남아 있으나,

조양각에는 시인 묵개들이 남긴 67여개의 시와 중수기등 편액들이 걸려있다.


영천 조양각(명원루, 서세루)


제영천청량당(題永川淸凉堂) 영천 청량당에서 짓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신구화당압수미(新構華堂壓水湄)    새로 엮은 화당이 물가에 우뚝 솟아있어

아래등조입다시(我來登眺立多時)    올라가서 오랜 시간을 조망하였네.

훈풍방초청천원(薰風芳草晴川遠)    훈풍에 풀들은 피어나고 맑은 시내는 아득히 흐르고

낙일고운독조지(落日孤雲獨鳥遲)    석양의 구름 속으로 한 마리 새가 뒤 늦게 돌아온다.

남기공몽염외적(嵐氣空濛簾外滴)    파란 안개가 피어올라 주렴 밖에 맺히고

양화요란모변취(楊花撓亂帽邊吹)    버들가지는 어지럽게 모자 곁으로 날아온다.

야심월상란간곡(夜深月上瀾干曲)     밤이 깊어 난간 모퉁이로 달 떠 오르니

일미청량독자지(一味淸凉獨自知)    이곳의 청량한 맛은 나 혼자만 알리라.


영천 명원루를 지나 목적지인  안강 양동마을로가서 

양민공 손소(孫昭)의 빈소를 찾아 치전관(致奠官)자격으로 조문을 하게된다


양민공 손소(孫昭)고택


고택의 대문채와 사랑채


왼쪽이 서백당


서백당 마루


손소고택 안채

-조문을 마치고 경주 금장대로 향한다-


경주 금장대

-금장대는 경주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수 있는 형산강변 절벽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자비왕때에는 연회 도중 을화라는 기생이 실수로 물에 빠져 죽었다는 설화도 깃들어 있는곳이다.




금장대에서 조망


금장대 (金藏臺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파타단안부강고(坡陀斷岸俯江皐)     깎아지른 언덕 위에서 강 너머를 굽어보고

승흥등임망안요(乘興登臨望眼遙)    흥에 겨워 올라와 아득히 멀리 바라본다.

고총누누의석수(古塚累累欹石獸)     옛 무덤은 층층이 겹쳐있고 석수는 기울고

청산은은용금오(靑山隱隱聳金鰲)    청산 속에 금오산만 높이 솟아있다.

상심폐원연화료(傷心廢院烟花鬧)     안개속의 무너진 금장대는 마음 아픈데

만목공성탑묘고(滿目空城塔廟高)     텅 빈 성엔 묘탑만 높다랗게 서있네.

천지무정여작일(天地無情如昨日)    천지는 옛날같이 무정하고

인간멸몽등추호(人間蠛蠓等秋毫)    인간은 눈에놀이처럼 작아 보인다.

 

대상창망연경지(臺上蒼茫烟景遲)    누대는 아늑히 푸른 하늘로 솟아 안개 속에 그림자 지는데

나감조고갱빙위(那堪弔古更憑危)    어찌 옛일을 조상하느라 위태로움을 감내하겠는가.

구원제맥쟁춘색(丘園薺麥爭春色)     언덕의 냉이와 보리는 봄빛을 다투고

성곽인민이석시(城郭人民異昔時)    성안의 사람들은 옛날의 사람들이 아니라네.

완적묘여광무탄(阮籍聊與廣武歎)    에오라지 완적은 광무성에서 탄식하고

추담공작현산비(鄒湛空作峴山悲)    부질없이 추담은 현산에서 슬픔을 지었다.

흥망만고장여차(興亡萬古長呂此)    흥망은 만고에 길이 이와 같으리니

불용애가영서리(不用哀歌詠黍離)    슬픈 노래로 서리가를 읊지 않아야 하리.

 

*금오산(金鰲山) : 경주 남산의 한 봉우리              *멸몽(蠛蠓) : 눈에 놀이 작은 곤충

*완적(阮籍)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문학가           *현산(峴山) : 중국 호북성의 산

*서리가(黍離歌) : 주나라 평왕이 나라가 망하고 궁전이 없어진 것을 탄식한 것


경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보고, 다시 무열왕릉으로



신라 무열왕릉


무열왕릉 뒤의 서악동 고분군으로 무열왕의 선조 묘소로 추증



늦가을의 무열왕릉



비각


 비석

-비석 몸통은  없어지고 새로 만든 좌대 위에 비두만 남아있다.


24.무열왕릉(武烈王陵)

도방허락간(道傍墟落間) 길 옆 무너진 궁궐터에는

청청맥이수(靑靑麥已秀) 푸른 보리가 이미 이삭이 패었네.

두기수인봉(斗起數仞峰) 작은 봉우리가 서너 개 솟아있고

궁융여복수(穹窿如伏獸) 둥근 봉분은 짐승이 엎드려 있는 듯

단갈와황초(短碣臥黃草) 작은 비석은 누런 풀속에 누워있고

앙연견귀수(昻然見龜首) 높다랗게 귀수만 보인다.

망창원육장(莽蒼原陸長) 가시덤불만 언덕 위에 자라고

이리천원주(迤邐川源走) 냇물은 내달리듯 길게 이어져 있다.

운시무열릉(云是武烈陵) 이것을 무열왕릉이라 하는데

인산제비루(因山制非陋) 인산의 제도가 비루하지 않도다.

하마발소삼(下馬髮蕭森) 말에서 내리니 머리털이 쭈뼛하여

공립렴쌍수(拱立斂雙袖) 공손히 서서 양 소매를 여민다.

마사독비문(摩挲讀碑文) 비석을 만지며 비문을 읽으니

결락난실구(缺落難悉究) 결락하여 다 읽어 보기가 어렵다.

망망세월황(茫茫歲月荒) 아득한 세월에 거칠어지고.

위기무인수(委棄無人守) 내버려진 채 지키는 사람도 없구나.

억석음위양(憶昔陰爲陽) 생각건대, 옛날 음이 양이 되었으니

이만비진후(二曼非眞后) 덕만과 승만은 참 임금이 아니었네.

강인사침일(强隣肆侵軼) 강한 이웃나라가 제 멋대로 침범하고

사경다병투(四境多兵鬪) 국경마다 싸움도 많았다.

유왕입계통(惟王入繼統) 오직 무열왕이 들어가 왕통을 잇자

탁언공덕무(卓焉功德茂) 탁월하게 공덕이 무성하였네.

과아위유신(瓜牙委庾信) 병권은 김유신에게 맡기었고

무략태천수(武略殆天授) 무략은 거의 하늘이 내려주신 것

병제개패도(幷濟開覇圖) 백제를 병합하여 패도를 열었고

각소백년구(刻掃百年寇) 백 년의 도둑을 다 쓸어내었네.

황당가내훈(皇唐嘉乃勳) 당나라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궐비퇴금수(闕篚堆錦繡) 비단을 산더미 같이 내려주었네.

주용석홍명(疇庸錫鴻命) 제후로 봉하는 큰 명 내리니

개토금광무(闢土錦廣袤) 개척한 땅 널리 이어졌네.

준예공등용(俊乂共登庸) 뛰어난 인재는 다 등용되었고

창름일은부(倉廩日隱富) 창고는 날로 풍부해졌네.

정수홀위혈(井水忽爲血) 우물물 갑자기 피로 변하고

대운차막구(大運嗟莫救) 대운은 슬프게도 구할 수 없었네.

검이취둔석(劒履就窀穸) 육신은 지하로 들고

영상귀앙숙(英爽歸昻宿) 영령은 하늘로 돌아 가셨네.

구사조가징(舊史粗可徵) 옛 기록을 대략 참조해 보나

기재한소누(記載恨疎漏) 엉성한 기록이 원망스럽구나.

인사여부운(人事如浮雲) 인사란 마치 뜬 구름과 같아

수능요우주(誰能了宇宙) 누가 능히 우주를 헤아리겠는가?

가성만고폐(佳聲萬古閉) 아름다운 노래 소리 만고에 끊어지고

일모소생유(日暮嘯鼪鼬) 날 저무니 족제비 울음소리만 들린다.

 

*무열왕릉(武烈王陵) : 신라 태종인 무열왕의 릉

*인산(因山) : 태상왕, , 태자, 빈 등의 장례를 일컫는 말

*이만(二曼) : 신라 여왕이 된 덕만(선덕여왕)과 승만(진덕여왕)을 말함


눈내리는 겨울 첨성대


목련 꽃 피는 봄


여름 첨성대


첨성대(瞻星臺)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이이화서암천맥(離離禾黍暗阡陌)    나란히 자란 벼들로 둑길은 보이지 않는데

중유숭대고백척(中有崇臺高百尺)    한가운데에 백 척 높이의 대가 솟아있네

근연황온지중심(根連黃媼地中深)    뿌리를 황토 땅 깊숙이 내리고는

영대청산운외촉(影對靑山雲外矗)     청산을 마주하며 구름 밖으로 솟아있네

치병당년민물순(齒餅當年民物醇)     떡 깨물던 그 시절엔 백성과 만물이 순박하였고

희화역상차제진(羲和曆象次第陳)    희화가 역상의 차례대로 펼쳐졌다네.

입규측영관일월(立圭測影觀日月)    규를 세어 그림자 재어 일월을 관측하고

등대망운점성신(登臺望雲占星辰)    대에 올라 구름보고 별들을 점치었네

건문순도태계평(乾文順度泰階平)    건문이 도에 맞아 삼태성이 태평하고

낭렵불현천우청(狼鬣不現天宇淸)    낭성이 나타나지 않으니 하늘도 맑네.

우양불건민불차(雨暘不愆民不瘥)    비와 햇볕이 적절하여 백성이 탈이 없고

풍등사야구요성(豊登四野謳謠聲)    사방천지가 풍년들어 격앙가 소리 요란하네.

건곤만고주장학(乾坤萬古舟藏壑)    인간의 역사는 골짜기 속에 배 감추기

불견금구종타첨(不見金甌終妥帖)    금구라도 끝내 온전하게 들어날 수 없는 것

분분인세기번진(紛紛人世幾番塵)    어지러운 인간세상 몇 번이나 풍진이 일었던고

금벽고능진형극(金碧觚稜盡荊棘)    금벽과 둘레는 가시덤불로 덮여있건만

겁화불소거독재(劫火不燒渠獨在)    전란에도 불타지 않고 너만 홀로 남아있어

누석외연풍우외(累石嵬然風雨外)    쌓은 돌탑은 비바람 속에 우뚝하게 서있네.

노중관대금유무(魯中觀臺今有無)    노나라의 관대는 지금은 있기나 한지

라시제작감일의(羅時制作堪一噫)    신라 때 만들어진 것 참으로 감탄할 만하구나.

 

*치병당년((齒餅當年) : 떡 깨물던 시기로 신라 2대왕인 남해왕 사후

태자 유리가 왕위를 사양하자 이가 많은 사람이 되어야하니 떡을 깨물어보라하여

이가 많은 유리가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희화(羲和) : 요전에 천문을 담당하는 관리         *건문(乾文) : 하늘에 있는 해,,

*낭성(狼星) : 밤하늘에 가장 빛나는 천랑성


가을  첨성대

 

반월성 벗꽃

-아마도 4월이면 벗꽃이 피어있을 계절에 반월성과 첨성대를 둘러보고 포석장으로 말머리를 돌렸으리라- 


반월성(半月城)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만만반월문천곡(彎彎半月蚊川曲)     둥그런 반월성은 문천의 굽이에

폐성정대남산록(廢城正對南山麓)    무너진 성은 남산 기슭을 마주하고 있다

라왕궁전진위진(羅王宮殿盡爲塵)    신라왕들의 궁전은 모두 먼지가 되고

벽초간간주미록(碧草竿竿走麋鹿)     짙푸른 풀밭엔 노루와 사슴 내달린다.

임아제산석양홍(林鴉啼散夕陽紅)    숲 까마귀는 붉은 저녁노을 속에 울며 흩어지고.

양양계류열한옥(瀁瀁溪流咽寒玉)     넓고 넓은 시냇물은 물방울 퉁기며 소리 내어 흐른다.

아래방황쌍체수(我來彷徨雙涕垂)     찾아와 서성이니 두 눈엔 눈물이 흐르는데

독립동풍응원목(獨立東風凝遠目)    홀로 동풍을 맞으며 저 멀리 응시한다.

양산백마거무족(陽山白馬去無蹤)    양산의 백마는 사라지고 자취마저 없으며

알정신룡불재욕(閼井神龍不再浴)    알정의 신룡은 다시는 목욕하지 않는다.

십칠만호수비연(十七萬戶隨飛烟)    십칠만 서라벌의 민가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육조운잉불가록(六朝雲仍不可錄)    육조의 구름처럼 많은 일들은 기록조차 없구나.

천년왕기막연소(千年王氣漠然消)    천년의 왕의 기운은 아득히 사라지고

지노천황단릉곡(地老天荒但陵谷)   하늘과 땅은 황량해지고 다만 능곡만 남아 있을 뿐

욕조강산거주배(欲弔江山擧酒盃)    술잔 들고 강과 들에 조문 하려니

격렬비가진임목(激烈悲歌振林木)    끓어오르는 슬픈 노래가 숲 속을 진동한다.

명명제창후정화(鳴鳴齊唱後庭花)    오 오 하며 후정화를 제창하는데

단판요쟁잡호죽(檀板瑤箏雜豪竹)    단판과 요쟁은 왕대속에 뒤 썩여 있다.

귀래환과오릉로(歸來還過五陵路)    돌아오는 길에 다시 오릉의 길을 지나는데

사청소소귀야곡(似聽簫簫鬼夜哭)    마치 우우 응하고 밤에 귀신이 곡을 하는 듯

*후정화(後庭花) : 중국 후주가 지은 악곡의 이름.

*단판(檀板) : 중국 타악기 이름



포석정


포석정의 가을


포석정(鮑石亭)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청계일파유소영회(淸溪一派流縈回)    맑은 시내 한 줄기 굽어 돌아가는 곳

황량동학이이간(荒凉洞壑迤邐開)    황량한 골짜기 안이 비스듬히 열려있네

포어산락계수측(鮑魚散落溪水側)    포어는 시냇가에 어지러이 늘려있고

춘잔석노생창태(春殘石老生蒼苔)    늦봄 묵은 바위엔 푸른 이끼가 돋아났네.

라왕석일염만기(羅王昔日厭萬機)    옛날 신라의 왕들이 정사에 염증을 느껴

금여옥연장배회(金與玉輦長徘徊)    금옥연을 타고 오래도록 배회했다네.

유연차지농청차(流連此地弄淸泚)    이 땅에 와서 노닐며 맑은 물을 희롱하니

우상범범수파래(羽觴泛泛隨波來)    술잔은 넘실넘실 물결 따라 흘러오네.

군신감가입취향(君臣酣歌入醉鄕)    군신은 술에 취해 노래 부르며 취향에 들고

소고동지여춘뢰(簫鼓動地如春雷)    천지에 진동하는 악기소리는 봄날의 천둥소리 같네.

부오적병입심복(不悟敵兵入心腹)    적병이 깊숙이 들어와도 깨닫지 못하니

백일섬기잠함매(白日鐵騎潛銜枚)    대낮에 철마 탄 병사들이 잠입하였네.

접혈궁정나인설(蹀血宮庭那忍說)    궁궐마당에 밟히는 피를 어찌 차마 말 하리

창황조시비진애(蒼皇朝市飛塵埃)     창황히 조정과 저자거리는 먼지로 뒤덮였네.

궁아완전제군전(宮娥宛轉啼軍前)    궁녀들은 굴러 넘어져 적군 앞에서 울부짖고

보세영락위초채(寶細零落委草菜)    비녀가 땅에 뜰어져 잡초 속에 나뒹구네.

해목령상수운응(蟹目嶺上愁雲凝)    해목령 위에는 음섭한 구름이 엉기어 있고

송성상대천년애(松聲尙對千年哀)    솔바람 소리는 아직도 천년의 한을 머금고 있네.

군불견임춘각중취훈훈(君不見臨春閣中醉醺鑂)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임춘각 속에서 금술에 취하여

부지문외한장군(不知門外韓將軍)    문 밖의 한 장군을 알아보지 못하였음을

옥수벽월가미결(玉樹璧月歌未闋)    옥수 벽월의 노래가 끝나기 전에

강남왕업수연멸(江南王業隨煙滅)    강남의 왕업이 연기처럼 사라졌네.

전차가위후차계(前車可爲後車戒)    앞 수레는 뒷 수레의 경계가 되지만

후차상심미복철(後車相尋迷覆轍)    뒷 수레도 바퀴가 뒤집어져 허둥대고 있네.

아원천공영귀수(我願天公令鬼守)    원하노니 천공이 귀신 시켜 지키게 하여

유여후인감차석(留與後人鑑此石)    뒤 사람들에게 이 돌을 거울삼게 하소서.



*포어(鮑魚) : 전복의 다른 이름      *해목령(蟹目嶺) : 경주 남산의 고개이름

*임춘각(臨春閣) : 중국 후주가 세운 화려했던 누각 이름

*한장군(韓將軍) : 수 나라 장군인 한금호를 말함       *옥수(玉樹) : 중국 악곡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