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는 진주 남강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높이 솟은
영남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고려 고종 28년(1241)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 되 었다.
6.25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1960년에 복원하였다.
진주 촉석루
촉석루 야경
진주 촉석루에서 희롱삼아 허헌지의 시에 차운하다
(晉州 矗石樓 戱次許(獻之)韻)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몽참난학과진구(夢驂鸞鶴過塵區) 꿈속에 난학타고 속세를 지나
비도청천십이루(飛到菁川十二樓) 날아서 청천의 십이루에 이르렀다.
화압조란홍영투(花壓雕欄紅影透) 꽃은 난간을 뒤덮어 빨간 그림자가 투영되고
죽요청랑취문유(竹搖晴浪翠紋流) 흔들리는 댓 그림자는 물결따라 흐른다.
세렴풍훈패성원(細簾風勳珮聲遠) 비단 주렴은 밤에 딸랑거리는 소리가 멀리 퍼지고
보축연소향무부(寶篆烟消香霧浮) 구불구불 타오르는 향 내음이 안개처럼 떠다닌다.
추억사화춘수처(追憶使華春睡處) 옛 기억 더듬어 화려한 봄날에 잠잘 곳을 찾으니
환여두목재양주(還如杜牧在楊州) 마치 두목이 다시 양주에 돌아온 듯
*허침(許琛, 1444~1505) : 조선시대 문신, 자는 헌지(獻之), 호는 이헌(頤軒).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청천(菁川) : 고려 혜공왕때 부르던 진주의 옛 명칭
*두목(杜牧) : 당나라 때의 시인으로, 두보에 대하여 소두라 일컬음
진주 남강(촉석강) 노을
진주 남강 의암(義巖)
31.촉석강(矗石江)
누하장강백장청(樓下長江百丈淸) 누각아래 긴 강은 백 길 물속까지 맑고
채주사예경중행(綵舟斜曳鏡中行) 채색 배는 비스듬히 거울 속을 지난다.
일요염막천가영(日搖簾幕千家影) 태양은 발을 친 수많은 집들의 그림자를 흔들고
풍송소가십리성(風送簫笳十里聲) 바람은 피리소리를 십 리 밖으로 보낸다.
노기비미생초벽(爐氣霏微生峭壁) 저녁노을은 아른아른 절벽에서 빛나고
파광렴염동고성(波光瀲灩動高城) 물빛은 일렁거려 드높은 성을 움직인다.
회두지척홍진도(回頭咫尺紅塵道) 지척 세속의 길에 머리 돌리니
선살사구일점경(羨殺沙鷗一點輕) 부러워라! 갈매기 한 마리가 사뿐히 떠오르는 것이
*촉석강(矗石江) : 진주 남강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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