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송강로 523 에 위치한 정송강사는
송강 정철선생(1536∼1593)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지방기념물 9호이다.
선생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것을
현종 6년(1665)에 우암 송시열이 지금의 묘소로 자리를 정하고
그의 후손 정양이 이장하여 사우를 창건하였으나 규모가 작아 1979년에
전면 신축정화하였으며,경내에는 송강묘소와 신도비, 유물전시관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송강선생의 은배, 옥배 그리고 연행일기 65일분과
친필편지 등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은 조선시대의 문신. 문인으로,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서울 장의동(藏義洞: 현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이며, 막냇누이가 계림군 유의 부인으로,
왕실 인척으로서 어린 시절 경원대군(후일의 명종)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10세 때 을사사화로 매형 계림군이 역모로 처형당하고,
아버지가 유배길에 오르면서 고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6세가 되어서야 겨우 학문을 배울 수 있었으며 26세 때 진사시 급제,
27세 때 문과 별과 장원을 하고 성균관 전적 겸 지제교로 출사하였다.
이후 이조정랑, 홍문관 전한, 예조참판,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까지 역임하고,
서인의 영수로 명종 시대부터 선조 시대까지 붕당 정치의 한가운데 있었다.
수차례의 사화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여러 번 파직과 유배를 거듭한 끝에
만년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강화도 송정촌에서 칩거하다
선조 26년인 1593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철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질곡 많은 인생사를 겪으며
수많은 시조와 가사를 남겼는데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4편의 가사와 107수의 시조를 남겼다.
사후 편찬된 《송강가사》, 《송강별집추록유사》, 《송강집》 등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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