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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수비 약천정과 금경연화백 예술기념관

by 안천 조각환 2020. 7. 28.

약천정(藥泉亭)은 영양 수비면 발리리에 있는 금희성(琴熙星)의 정자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8호이다.

이 정자는 금희성이 1824년(순조4년)에 건립하고 1899년에 중건하였다.

약천 금희성(藥泉 琴熙星,1778~1849)은 영양군 수비면 발리리에서 태어났으며

경학과 문장이 뛰어나 옥산서원에서 오랬동안 후학을 지도하였다.

"약천정"과 "반곡정사"의 현판은 초대 부통령을 역임한 이시영의 친필이다.

약천정 바로 옆 솔숲에는 금희성의 6세손인 금경연 화백 추모비가 있으며

맞은편에는 금경연 화백(琴經淵 畵伯) 예술기념관이 자리하고있다.

 

약천정 전경
소나무와 약천정

약천정(藥泉亭)의 유래(由來)

조선 정조때의 유명한 학자인 금희성(琴熙星)선생은 오랜 속병이 있었는데

아무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많은 고생을 하다가, 어느날 우연하게

지금의 정자가 있는 자리에 흐르는 샘물을 마시고 병이 씼은듯 다 나았다.

선생은 그 자리에 정자를 건립하여 약천정이라 편액하고,

자신의 호(號)도 약천(藥泉)이라 하였으며, 공부도 하고 풍류를 즐기며 지냈는데,

그 소문을 듣고 여러 명사들이 찾아와 시부(詩賦)를 읊으며 함께 즐겼다고 한다.

 

영양 수비 약천정 (건물 앞은 약천정, 왼쪽은 반곡정사 편액이 걸려 있다)
수비 약천정
반곡정사(盤谷精舍) 편액
무늬 비비추
참나리
약천정과 발리천
금경연화백 추모비

산하와 겨레의 이름을 앗긴

어둡고 설운 시대

 

교육으로 민족혼을 일깨우고

예술로 강산을 사랑했던

아 ......................

몸과 마을을 살라버린

서른세 해

 

온 겨레가 환희에 찾던 광복

그 몇 해 끝에

 

고향의 봄볕을 안고

평생토록 간직하던 화첩과 함께

울련산이 바라보이는

고향 동산에 잠들다

 

"양파와 능금" "붉은 건물"의 작품은

영원의 광휘로 오늘에 살아 있나니

못다 지핀 예술혼을 기리어

이 자리에 예술비를 세우다

 

1993년 9월 일

이 비(碑)는 영양문화원이 주관하고 미술 평론가

권원순교수가 글을 지어 서예가 정보인이 써서

금경연 화백 추모비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삼가 세우다

 

발리리 금경연화백 에술기념관 입구
금경연(琴經淵)화백 예술기념관

*참고로 금경연 화백(琴經淵 畵伯) 예술기념관은

차남인 금태남(琴泰男)씨가  관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금경연화백 예술기념관 건립 기념비

금경연(琴經淵,1915~1948)화백은 금희성(琴熙星)의 6세손으로 이곳 발리에서 태어나

대구사범학교 심상과에 입학하여 2학년때(17세)인 1934년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양파와 능금"으로, 14회에는 "대구 시가지"로 입선하는 등 17회,19회에 연이어 입선하였고,

특히 18회 때는 안동 성소병원을 모델로한 "붉은 벽돌의 건물"로 특선을 하였다.

졸업 후 안동, 경산, 경주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40년 고향인 영양으로 돌아와

입암, 수비공립보통학교의 교장으로 재직 중 33세를 일기로 작고하였다.

그는 한국 서양화 화단의 선각자요, 거성이었으며, 천재화가였다.

 

예술기념관앞 정자
용수폭포
발리천 용수지입구의 박주가리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