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암서원은 상주시 연원동에 위치한 서원으로
1702년(숙종 28)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1705년 ‘흥암(興巖)’이라 사액되었으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흥암사(興巖祠)· 진수당(進修堂) ·집의재(集義齋)· 의인재(依仁齋)·
어필비각(御筆碑閣) 등이 있으며, 송준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어필비각은 1716년에 숙종이 하사한 어서(御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문집과 서적이 여러 권 소장되어 있다.
송준길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된 뒤 학행으로 천거받아 1630년 세마(洗馬)에 제수되었다.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시직(侍直)·
대군사부·예안현감·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가지 않았고, 단지 1633년에만 잠깐 동몽교관직에 나갔다가
장인 정경세(鄭經世)의 죽음을 이유로 사퇴하였다.
1649년 김장생의 아들로 산당(山堂)의 우두머리인 김집(金集)이 이조판서로 기용되면서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발탁되어 부사직(副司直)·진선(進善)·사헌부장령 등을 거쳐,
사헌부집의에 올랐고 통정대부로 품계가 올랐다.
그 뒤 집의·이조참의 겸 찬선 등으로 여러 번 임명되었으나 계속 사퇴하였으며,
1658년(효종 9) 대사헌·이조참판 겸 좨주를 거쳤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1681년 숭현서원(崇賢書院)에 제향되고 문정(文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같은 해 김장생과 함께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할 것이 건의된 이래,
여러 차례 상소가 있은 다음 1756년(영조 32) 문묘에 제향되었다.
충현서원(忠賢書院)· 봉암서원(鳳巖書院)· 돈암서원(遯巖書院)· 용강서원(龍岡書院)·
창주서원(滄洲書院)·흥암서원(興巖書院)·성천서원(星川書院) 등에도 제향되었다.
저서로 『어록해(語錄解)』·『동춘당집(同春堂集)』이 있으며,
글씨로는 부산의 충렬사비문(忠烈祠碑文), 남양의 윤계순절비문(尹啓殉節碑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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