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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야은 길재의 금산 청풍사(淸風祠)와 청풍서원

by 안천 조각환 2021. 1. 3.

2021년 첫 발걸음은 고려 삼은 중 하나요, 충절과 절개의 상징인

야은 길재선생의 혼이 베어있는 비단고을, 금산 청풍서원으로 향했다.

청풍서원(淸風書院)과 청풍사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있다.

청풍사(淸風祠)는 고려말 충절공 야은 길재(吉再,1353~1419)선생의 청절(淸節)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사당으로 야은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사당은 1671년(현종 12년) 길재가 부친의 시묘살이를 하였던 이곳에

후손과 고을 선비들이 불이사(不二祠)를 처음지어 1678년(숙종 4) 위패를 모셨는데,

1741년(영조 17) 서원 남설금령(濫設禁令)에 위배된다 하여 훼철되었다.

 

청풍사(淸風祠) 사당건물

이후 1761년(영조 37) 금산군수 민백홍과 지방유림이 "백세청풍(百世淸風)"

네글자의 큰 비(碑)를 청풍사가 있던 자리에 세웠다.

1804년 다시 사당을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8년 청풍비각, 청풍사, 청풍서원을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청풍서원" 편액은 1977년에 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 신문(神門), 강당,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 비각(碑閣),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길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6변(籩) 6두(豆)이고, 재산은 밭 2,500여 평과 논 1,500여 평 등이 있다.

 

백세청풍과 고려문하주서 야은길재선생 유허비와 비각
야은 길재선생 유허비

이 비는 "고려문하주서 야은 길재선생 유허비(高麗門下注書 冶隱 吉再先生 遺墟碑)"이다.

 

백세청풍(百世淸風) 비

"백세청풍"은 은나라 백이숙제의 "청풍정신은 백세토록 영원하라"는 뜻으로

중국 백이숙제 사당앞에 세워진것을 모사하여 1761년 금산군수와 유림들이 세운것이다.

 

지주중류(砥柱中流)

‘지주중류’라 함은 중국의 황하(黃河) 중류에 있는 기둥처럼 생긴 석산(石山)으로,

탁류 가운데 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산을 말하는 것으로,

지주산처럼 세욕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절개를 지킨다는 뜻이다.

 ‘砥柱中流’ 4글자는 중국의 명필 양청천(楊晴川)의 글씨이다.

 

청풍서원 대문과 앞에있는 야은 길재의 회고가(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석비
청풍서원 대문
청풍성원 편액

이 편액은 청풍서원(淸風書院), 정사국추 박정희(丁巳菊秋 朴正熙)라 되어있다.

정사년은 1977년이므로, "청풍서원 1977년 가을에 박정희"가 쓴 친필이다.

 

편액글씨를 모사하여 세운 청풍서원 석비
불이서회(不二書會)

서당 출입문에 "불이서회(不二書會)"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될 때 함께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후인들이 그의 절의를 사모하여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문구를 따서

처음 사당의 이름도 불이사, 지명도 불이리(不二里)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청풍당(淸風堂, 서원강당)
아담한 규모의 서원강당
사당 신문(神門)인 내삼문
청풍사((淸風祠)

이 사당에는 야은 길재(1353~1419)선생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길재(吉再)의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이다.

고려말, 조선 초기의 학자로.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이라 한다.

대표작으로 야은집, 야은속집이 있다. 

길재는 고려 공민왕 2년(1353)에 경상도 선산의 봉계리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으며, 죽은 후에도 그곳 선산에 묻혀있다.

금산(錦山)은 야은 선생 부인의 고향이기도 하며, 부친이 순직하여 

금산에 묻히게 되자 시묘살이를 했던 곳으로, 연을 맺었으며, 

지금도 부리면에는 야은 선생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사당과 서원앞 마당 전경
청풍사 인근의 적벽강(금강상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