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향교는 나주시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 향교로 1407년(태종 7)에 창건되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특히 나주목 관아와 향교는 사적 제483호(2997.7.31)로 지정되어 있다.
나주 향교에는 1701년(숙종 27)에 창건한 계성사(啓聖祠)가 있었는데,
계성사는 공자 아버지의 위패를 봉안하는 사당으로 계성사가 있는 향교는
일반 향교와는 달리 대성전이 앞에 있고 뒤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다.
나주향교는 강릉향교, 장수향교와 함께 우리나라 3대향교로 일컫기도 한다.
대성전은 앞면 5칸, 옆면 4칸,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우리나라 향교에 남아있는 건물중 규모나 격식면에서 가장 크며
계단석과 연꽃무늬가 새겨진 주춧돌등은 조선초기 숭유억불정책으로
사찰이 헐리면서 그 석재를 옮겨와 사용한 흔적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또한 대성전 벽의 흙은 공자의 고향 곡부에서 가져와 혼합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11칸의 온돌방으로 크게 지어졌는데
이러한 규모로 보아 당시 유생들이 많았음을 짐작케 한다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은행나무밑에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고 하여
향교에는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 비림 제일 오른쪽에는 노비였던 김애남의 충복사유허비가 있다.
사연인즉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시 대성전의 수복(首僕)이었던 김애남이
성현들의 위패를 금성산으로 안전하게 옮겼다가 세상이 조용해지자 다시
대성전으로 모시는 공을 세웠는데, 그 후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자손들을 복호시켜주고 그가 죽자 충복사(忠僕祠)란 사우를 짖고
제사를 지내주었는데 사우가 오래되어 폐허가 되자,
1922년 나주 유림들이 뜻을 모아 그 자리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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