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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휘 우희(諱 遇禧)의 부인 성산이씨 묘소를 찾아서

by 안천 조각환 2021. 11. 23.

휘 우희(諱 遇禧) 선조는 김천 입향조 참의공 휘 심(諱 深)의 조부되시며,

매계 조위(梅溪 曺偉)선생의 고조부 이시고, 환자 항렬의 19대조가 되신다.

묘소는 창녕 남지읍 성사리에 있으며,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녕 남지읍의 19대조 휘 우희(諱 遇禧)의 묘소

 

그런데 부인(19대조모)인 성산이씨는 휘 우희(諱 遇禧) 선조의 묘 상석과

족보상에 창녕 용장사 서자좌(西子坐)라고 되어 있으나 그동안 실전(잃어 버림)되어

성묘도 못하는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참의공 조운현 종회장의

숭조하는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묘소를 찾게(미확정) 된것이다. 

 이 묘소는 조선조 초기 병조판서를 지낸 이장곤(李長坤,1474~1519)의 묘역안에 있어

아직은 벽진이씨 종중과의 이해관계 등 정리해야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19대조 바로 아래에 있는 둘째 아들 익수(益修)의 묘

 

이 묘는 자헌대부 경상도 병마절제사 초토안무사를 역임하였던

휘 우희와 성산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인 휘 익수(諱 益修) 선조의 묘로써

19대조 묘소와 함께 상.하 2기는 고려말, 조선조 초기의 묘제양식이어서 

경상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참고로 원계(元桂,20대조)-우희(遇禧,19대조)-경수(敬修,18대조, 찬성공파 파조)되시며

(우희 선조의 첮째가 민수, 둘째 익수, 셋째가 경수)

-심(深,17대조,김천 입향조)-계문(繼門,16대조,울진공)-위(偉,15대조, 매계선생)이시다.

 

우희 선조 묘비(상석) 우측

 

려조 정순대부 판전의사사 증좌시중부원군 창녕조공휘우희지묘

(麗朝 正順大夫 判典儀寺事 贈左時中府院君 昌寧曺公諱遇禧之墓)

 

우희 선조 묘비(상석) 좌측

 

배증정경부인 성산이씨묘 재창녕용장사 서자좌

(配贈貞敬夫人 星山李氏墓 在昌寧龍藏寺 西子坐)

*부인 정경부인 성산이씨묘는 창녕 용장사 서쪽 자좌(子坐) 즉 자향에 있다

 

족보 기록

 

자 우희(子 遇禧)

정순대부판전의사사(正順大夫判典儀寺事)요,

증직(贈職)은 좌시중부원군(左時中府院君)이다.

묘(墓)는 영산도사촌(靈山道沙村) 이자(二子) 익수묘상(益修墓上)에 있다

배(配)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며, 부(父)는 시중공 만년(侍中公 萬年)이요,

조(祖)는 농서공 장경(隴西公 長庚)이고, 증조(曾祖)는 호장 득희(戶長 得禧)이며,

외조(外祖)는 의성군 의성 김현(義城君 義城 金賢)이고, 

묘(墓)는 창녕 용장사(昌寧 龍藏寺) 서자좌(西子坐)이다.

 

*참고로 고려 충렬왕 34년 (1308)에 성주목으로 승격된 지명을 따라

성산이씨이던 이장경은 이때부터 관향을 성주이씨로 불렀으며 성주이씨의 중시조가 된다

그리고 이장경(李長庚)의 다섯 아들인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게 되며

이중 셋째 아들인 이만년의 따님이 우희(遇禧) 선조와 혼인한 성산이씨이다.

 

이장곤의 묘 바로 위에 있는 19대 우희(遇禧) 선조의 부인이신 성산이씨 묘(미 확정) -2021년 2월

 

이번에 찾게 된 19대 우희 선조의 부인이신 성산이씨 묘(2021년 11월)

(위도 : 북위 35' 36, 동경 128' 27, 고도 129m)

 

이 묘소는 창녕 대합면 대동리 산6 이장곤의 묘 바로 위에 있다.

  이 묘소와 바로 위의 익수(益修) 선조 묘소의 석물을 자세히 비교하면 거의 동일하다.

그렇게 오랜세월 돌보는이 없이 묵혀 있었는데도 신기하게도 석물이 이렇게 완전하다.

 

위는 19대조비(祖妣)인 성산이씨(미확정)의 묘, 아래는 18대조 휘 익수의 묘, 

 

이 묘를 실전되었던 성산이씨의 묘로 확신하는 이유는

첮째 위와 아래의 묘소는 묘제방식이나 크기, 석재 등이 거의 동일한 바

이는 모자(母子) 지간의 묘가 거의 동시대에 조성된것으로 볼 수 있는 반증이라 할것이다.

 

중화양씨묘 석비와 이장곤묘역 골짜기

 

둘째 19대조이신 휘 우희 선조의 묘비나 족보에 기록된 성산이씨의 묘가

용장사 서자좌 즉 용장사의 서쪽에 자향으로 있다함은 똑 같은 좌향인

이장곤의 묘아래에 있는 후처 중화양씨의 묘비에서도 자좌(子坐)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장곤묘역 동쪽 어디엔가 있을 용장사지를 아직 확인하지못해 아쉬울 뿐이다.

 

벽진이씨 세계도(발췌)인데, 위에 있는 휘 익수 선조의 족보와 연계하여 보면 됨 

 

셋째 창녕조문과 벽진이씨 양 가문간의 당시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이장곤은 벽진이씨 시조 이총언(李悤言)의 18세손으로

그의 증조부가 15세손 이신지(李愼之)이며,

○이신지는 조우희(부인 성산이씨)의 손녀사위(손서)이고 조익수의 사위인바

곧 증조부의 처조모(조우희 부인)인 성산이씨의 묘 바로 아래에 묻혀있다..

○당시 고조까지 한집에서 살았던것을 감안하면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또한 조익수의 증손자인 매계 조위와 벽진이씨 15세손인 이약동(李約東)

김산(현 김천) 경렴서원에 함께 배향되었던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것이다.

 

19대 성산이씨의 묘(추정)와 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