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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남명 조식선생의 김해 산해정

by 안천 조각환 2022. 1. 13.

김해 산해정(金海 山海亭)김해시 대동면 주박동에 있는 조선후기의 건축물로

조선시대의 거유(巨儒)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선생이 처가인 이곳

신산(新山)의 경치를 사랑하여 정각을 세워 산해정이라 이름 짓고

30세부터 45세까지 살면서 강학하던 곳으로, 경남 문화재자료 제125호이다.

 

*참고로 산해(山海)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생각과 마음이 바다같이 넓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산해정(신산서원)

 

조식선생이 별세한 뒤 1539년(선조 21)에 향인들과 제자들이 정자 동쪽 기슭에

서원을 착공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중지되었다가, 광해군 원년(1609)에

안희, 허경윤에 의해 준공되어 신산서원(新山書院)이라고 사액되었다.

그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순조 20년(1820)에 중건하였다.

당시의 양산군수 김유헌(金裕憲)이 산해정기(山海亭記)를 지었다.

 

진덕문(進德門, 서원 출입문)

 

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은 합천군 삼가면 토동(兎洞)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30세되던 1530년(중종 25)에 처향(妻鄕)이던 당시 김해군 대저면 주박동으로 옮겨

산해정(山海亭)을 지어 경의(敬義) 공부에 몰두(沒頭)하였으며,

48세때인 1548년(명종 3)에 다시 향리인 토동(兎洞))로 돌아와 학복당(鶴伏堂)과

뢰용정(雷龍亭)을 지어 찾아드는 많은 학자와 문인을 가르쳤고,

61세 되던 1561년(명종16년)에 산청 사리, 당시의 진주목(晋州牧) 덕천동으로

옮겨 산천재(山川齋)를 지어 많은 제자들에게 강학(講學)하던 중,

11년 후인 1572년에 향년 72세로 별세하였다.

 

신산서원(新山書院) 강학당

 

앞의 건물이 강학당 뒤는 사당

 

사당

 

문이 잠겨있어 담너머와 뒷산에서 둘러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