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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신라 제4대 탈해왕릉(사적 제174호)

by 안천 조각환 2021. 12. 15.

신라 제4대 탈해왕릉(탈해이사금, 재위 57∼80)은 경주시 동천동

소금강산의 남록 낮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으며, 사적 제174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에서 포항방향 산업도로를 따라 가다 보문단지 입구를 조금 지나면 오른쪽에 있다.

신라는 기원전(BC) 57년부터 서기 935년(DC)까지 992년간, 제1대 빅혁거세 부터

56대 경순왕에 이르기까지, 박씨 10명, 석씨 8명, 김씨 38명 등 56명의 왕이 재위했었다.

 

숭신전

 

탈해왕의 성은 석씨(昔氏), 이름은 탈해(脫解, 혹은 吐解)라고도 하며,

제3대 유리왕(유리이사금)의 유언으로 서기 57년인  62세에 왕위에 올라

23년간 재위한 후, 서기 80년에 승하하였다.

국호를 계림(鷄林)이라 하였으며. 왕비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죽은 뒤 경주에 있는 양정(壤井)의 언덕에 장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숭신전 앞 홍살문

 

숭신전은 광무 2년(1898년)에 군수 권상문이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세웠다.

1906년부터는 신라의 3성 시조 임금(박, 석, 김)을 같이 모셨고

이때부터 ‘숭신전’이라고 불렀으며, 처음 지을 때는 월성 안에 있던 것을

1980년 월성 안의 민가 철거와 함께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담 너머로본 숭신전 내부

 

숭신전(崇信殿)은 탈해왕릉입구에 있는 건축물로 본전 3칸·전사청 2칸·

상의재 4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5호이다.

 

숭신전

 

신라 3대 왕의 성 가운데 최초의 석씨 왕인 탈해왕(57∼80년)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전한다. 왜국 동북쪽 멀리 떨어져 있는 타파나국 왕비가 잉태한지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는데, 알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짝에 넣어

바다로 띄어 보냈고 이 궤짝이 신라 땅에 가서 닿았다.

한 노인이 궤를 발견하고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키웠는데,

건질 때 까치들이 울며 따라 왔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조(鳥)"자를 떼어내고

"석(昔)"으로 성을 삼았다. 이름은 궤를 풀고 나와 탈해라 지었다고 한다.

 

숭신전 앞 뜰의 모우각(慕虞閣)

 

모우각 안의 석비는 신라 석탈해왕 비명(新羅 昔脫解王 碑銘)으로

숭신전 건립과 탈해왕의 출생등에 관한 내용을 기록해 놓았으며,

1864년(신유년) 4월 15일 세웠다

 

숭신전과 탈해왕릉사이

 

숭신전 전경

 

탈해왕릉(사적 제174호)

 

탈해왕릉 왼쪽은 경주이씨 시조 알평이 탄생한 표암(박바위)과 표암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