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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부산.울산.경남권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으로 기록된 거제 칠천량 해전

by 안천 조각환 2022. 6. 17.

칠천량해전은 1597년(선조 30) 음력 7월 16일 거제 칠천도 부근에서

삼도 수군통제사 원균이 치른 정유재란 첫 해전이자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야간 기습 공격을 받아 궤멸당한 해전이다.

칠천량해전은 거북선과 판옥선 등 160여 척의 전함이 격침 또는 소실되는 손실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등 조선 장수들이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원균 또한 고성으로 퇴각하다 육지에서 전사하는 등,

1만여 명의 군졸이 숨진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으로 기록된 가슴 아픈 해전이다.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던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

 

칠천량은 거제도 동북지역인 칠천도와 거제도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동북으로는 가덕도(현 거가대교), 진해, 남으로는 한산도 등과 인접한 곳이다.

이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남해안의 제해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전라도까지 단숨에

함락되자 조선 조정은 권율 도원수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을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여 제해권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숨가빴던 그날의 역사를 되새겨 보면,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가

다시 조선으로 온다는 정보를 접한 선조 임금은 가토를 바다에서 공격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거짓정보라고 판단한 이순신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선조 임금은 이순신이

어명에 불복한 죄로 체포하여 서울로 압송했고, 그 후임으로 원균을 임명했다.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

 

조선 조정은 권율 도원수에게, 도원수는 삼도 수군통제사 원균에게

바다로 나가 싸워 일본군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계속되는 출전 독촉을 받은 원균은 1597년 6월, 100여 척의 전함을 이끌고

한산도를 출발해 안골포와 가덕도 앞바다로 가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회군했다.

 

 

조선수군 복장

 

일본 수군은 맞대응 보다는 조선 수군의 진을 빼는 전술과 기습공격으로 나왔으며,

조정에서는 조선 수군에게 부산으로 진격하라고 종용했다.

도원수 권율은 7월 11일 머뭇거리는 원균을 곤양으로 소환하여 곤장을 치고

출전할 것을 명하자, 곤장을 맞은 원균은 수군 함대 도합 160여 척을 이끌고,

7월 14일 부산포 근해에 이르렀으나, 7월 15일 바다의 파고가 높아진 가운데

조선 수군은 함대를 영등포(현 거제 구영)에서 칠천량 앞바다로 이동시켰다.

조선 수군은 7월 16일 새벽 칠천량에 정박했고

이를 보고 있던 일본군은 기습작전을 계획하여 전함 수백 척을 조용히 움직여

조선 수군 함대를 포위한 후, 이날 새벽에 먼저 5~6척으로 구성된 기습부대가

야습을 감행했고 뒤이어 도도 다카토라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지휘한

600여 척의 일본 함대 본진이 공격해 왔다. 

 

일본 수군은 조선 함대에 접근한 후 기습 공격을 실시 하였는데

원균은 기습공격을 당하자 모든 전함이 지휘선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대응태세를

갖추도록 명하고는 전함이 집결하기도 전에 자신은 도주했다.

조선 수군은 더더욱 전의를 상실하여 우왕좌왕하다가 궤멸상태에 빠졌다.

 

 

조선 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함 대부분이 격파되고 병사들은 피살되거나

바다에 빠져 죽었으며, 이 과정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은 원균에게 한산도 지휘부로

퇴각할것을 여러차례 건의하였으나  원균이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전세가 불리함을 직감하고  비밀리에 전함 12척을 이끌고 남쪽으로 퇴각하였다.

불과 5개월 전 이순신이 체포될 때 원균에게 넘겨준 한산 본영의 군량미 9,914석과

화약 4,000근, 총통 300자루 등 수많은 전함이 격침되거나 불더미 속에서 재로 변했다.

 

칠천도외 씨릉섬을 연결하는 칠천량의 구름다리(건설중)

 

원균과 그를 뒤따르던 일부 병사들은 칠천량을 탈출하여

고성땅 추원포에 상륙했다가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으며,

피로와 굶주림에 시달린 조선 수군은 물을 구하려고 가덕도에 상륙했으나

이미 가덕도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400여 명이 피살당했다. 

다시 거제도 북단의 영등포(현 거제 구영)로 이동한 조선군은

역시 이곳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에게 도륙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칠천량해전의 중심인 칠천도에

조선 수군이 패배를 당한 칠천량해전을 기억하고, 당시 희생된 군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칠천량해전 공원과 전시관 등이 세워졌다. 

 

칠천량 앞바다는 그날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안의 치자나무꽃

 

칠천량 해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