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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부산.울산.경남권

거창사건 추모공원에서 우크라이나를 떠올리다

by 안천 조각환 2022. 10. 4.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6.25전쟁 중 일부 국군에 의해 희생당한 

신원면 주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된 공간이다.

추모공원은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신원면 대현리의 162,423㎡(49,133평) 부지에 1998년 착공하여 2004년에 준공하였다.

이곳에는 천유문, 위패봉안각, 위령탑, 부조벽, 위령묘지, 역사교육관 등이 있다.

 

추모문(追慕門)

 

거창사건이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6.25전쟁 중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국방부에서 후방에 흩어져 있던 인민군 병력과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국군 제11사단을 창설했고 육군본부 작전명령에 따라

제9연대와 제13연대·제20연대를 예하부대로 두었다.

제11사단은 1950년 10월 4일부터 1951년 3월 30일까지 경상남도 일부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전역에서 작전을 벌였다.

 

천유문(天羑門) : "하늘로 인도하는 문" 이라는 뜻

 

거창사건은 토벌작전의 제4기에 해당하는 1951년 2월 1일부터 3월 31일 사이에 일어났다.

제11사단의 토벌작전 개념은 최덕신 사단장이 제시한 견벽청야(堅壁淸野)인데, 

이 작전은 군이 꼭 지켜야 할 전략거점을 점령한 후, 군 보급로를 확보하는데 역점을 두고

인민군이나 빨치산이 주민들로부터 식량을 확보하거나 인력과 물건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산간벽촌의 물자를 옮기고 가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추모묘역 앞

 

제9연대장 오익경(吳益慶)으로부터 사단의 작전개념을 구체화한 작전명령 제5호를 지시받은

3대대장 한동석(韓東錫)은 1951년 2월 5일 작전에 들어가 신원면 일대로 진격했다.

3대대는 별다른 저항없이 신원면을 수복한 후 인근 지역인 함양군과 산청군 경계로 전진했는데,

3일후인 2월 8일 신원지서가 빨치산의 공격을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3대대는 다시 신원면으로 들어와  2월 9일 청연마을 앞 논들에서 1차로 84명,

2월 10일 탄량골에서 2차로 100명, 2월 11일 과정리 박산골에서 3차로 517명,

그리고 연행도중 18명 등 총 719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게된 사건이다.

거창군 신원면은 국군의 서울 탈환 이후 1개월이 지나서야 행정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거창경찰서는 1950년 9월 27일 수복되었지만 

신원지서는 11월 5일이 되어서야 경찰이 복귀한 지역이다

 

위패봉안각

 

위패봉안각은 인민군과 빨치산 토발작전중인 1951년 2월 9일과  2월 10일,

 2월 11일에 희생된 719명(14세 이하 359명, 16~60세 294명,60세 이상 66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을 봉행하고 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판결문 비

 

인민군 병력과 빨치산 토벌작전중 희생자들을 발생케한

11사단 9연대장 외 지휘관들은 아래와같은 처벌을 받았다.

 

1951년 12월 16일 대구중앙고등군법회의 제1호법정에서 열린 판결내용

- 11사단 9연대장 대령 오익경(吳益慶) : 살인, 군무 불신임 초래죄로 피면, 전 급료 몰수, 무기징역

-11사단 3대대장 소령 한동석(韓東錫) : 살인, 군무 불신임 초래죄로 파면, 전 급료몰수, 징역 10년

-.경남계엄민사부장 대령 김종원(金宗元) : 공무집행방해,  개관범죄로 파면, 전 급료몰수, 징역 3년

-정보장교 소위 이종대(李鐘大) : 무죄

전쟁은 평온하던 가정과 사회, 국가는 물론 한 개인의 일상과 쌂자체를 파멸해 버린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을 찾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먼저 뇌리를 스쳐간다.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전쟁은 일어나고 있고, 오직 죽느냐 죽이느냐의 전장에선

수많은 병사가 죽어가고, 가정이 파괴되고, 기약도 없는 타국으로의 피난도 불사한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거창사건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를까?

세기가 바뀌어도 전쟁에 쓰이는 수단만 다를뿐 그 참혹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으리니!

 

국화밭

 

일찍 꽃을 피운 노란국화

 

연못

 

위령탑

 

위령탑은 "남자 여자 어린이의 무덤을 상징하는 삼단의 돔사이로

영혼이 부활하여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오름을 상징" 하였다고 한다

 

위령탑 옆 조형물

 

부조벽

 

거창 감악산이 보이는 곳

 

묘역

 

위령탑과 묘역

 

국화밭

 

추모공원 옆 탄량골 희생장소 보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