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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그곳에 가고싶다/대구.경북권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의 나옹선사 이야기

by 안천 조각환 2022. 10. 26.

나옹선사의 선시(禪詩)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히네.

 

산견아무어거(靑山見我無語居)  /  창공시오무애생(蒼空視吾無埃生) 

탐욕이탈노포기(貪慾離脫怒抛棄)  /  수여풍거귀천명(水如風居歸天命) 

 

나그네도 물같이 바람같이 나옹선사가 태어난 영덕 장육사를 다시 찾아 길을 나선다

 

장육사앞의 나옹선사 상(儺翁禪師 像)

 

나옹화상이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설화의 주인공으로도 많이 나온다.

보우와 함께 고려말의 위대한 고승으로 일컬어지며, 조선 불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노래를 많이 지어 문집인 "나옹집"에 보존하고 있다.

장육사 가는 길목의 나옹왕사 선시 석비

 

니옹선사는 21세 때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문경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에게 출가했다.

그뒤 여러 사찰을 순력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회암사에서 4년간 좌선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1347년(충목왕 3) 원나라로 건너가 연경 법원사에서

인도 승려 지공에게 배우고, 다시 자선사로 가서 처림의 법을 받았다.

 

반송정(盤松亭)

 

귀국 후 평양·동해 등지로 다니며 설법하다가 오대산 상두암에 은거했으나,

공민왕의 간곡한 청으로 1361년 상경하여 내전에서 설법하고 신광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뒤 공부선을 관장했으며, 1361년부터 용문산·원적산·금강산 등지를 순력한 뒤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뒤 송광사에 있다가 다시 회암사 주지가 되어 절을 중수하고

교화활동을 펴자 사람들이 본업을 잊고 몰려들어 길이 메워질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1376년(우왕 2)에는 문수회를 열어 크게 법명을 떨쳤다.

 

반송에 얽혀있는 나옹왕사 이야기(줄거리)

 

나옹왕사는 영덕 창수면 가산리 불미골에서 태어났는데, 어느날 어머니 꿈에 금색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오색영롱한 알을 품속에 안겨주는 태몽을 꾼 다음 잉태하였다고 한다.

당시 세금을 내지 못하여 관가에 불려가는 도중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개울가에 두고 

갔다가 부사의 엄명으로 그 자리에 돌아와 보니 까치들이 아이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서 나옹왕사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곳을 까치소라 부른다고 한다.

 

반송정앞의 돌 장기판

 

운서산 장육사

 

영덕 창수면 갈천리 운서산 기슭에 있는 장육사는 고려 공민왕(1351~1374) 때

나옹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이곳 운서산 산세가 발이 여섯달린 거북이를

닮았다하여 장육사라 하였으며, 옹선사는 장육사 바로 아랫마을에서 태어나고 살았다.

 

장육사앞 풍경

나옹선사 입상

 

나옹선사 일대기 석판

 

나옹왕사 선사상

 

이야기 석판에는  나옹왕사 선사상, 나옹왕사 출생, 여주 신륵사, 장육사. 

연경 법원사, 회암사, 공덕산 묘적암, "청산은 나를보고" 시판 등이 있다.

 

운서산 장육사 일주문

 

석문리의 가을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