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페위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한 뒤, 읽던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수년간 전국의 명산대찰을 떠돌다가, 29살 되던 해에 머리를 깍고 승려가 되어
설잠(雪岑)이란 이름으로 찾은곳이 경주 용장사와 은적암이 있는 용장골이다.
용장사지의 삼층석탑
용장골 은적암에서만 7년간 머물면서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하였다.
이후 은적암과 용장사에서 잡다한 세속의 번뇌를 씻어낸 그는 말년에 부여에 있는
만수산 기슭의 무량사에 머물며 후학을 지도하다가 1493년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김시습이 머물며 금오신화를 쓰고, 보물도 즐비한 경주 남산의 용장사지를 찾아 나선다.
경주 남산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김시습을 두고 이르기를 방랑한 천재시인, 또는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
선비 출신이면서 승려가 되어 기행을 벌인 기인, 최초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작가라고 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농민의 고통을
대변한 저항의 시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창한 성리학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전경
경주 남산의 용장사터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석조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4.56m, 불상 높이가 1.41m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187호이다.
대좌는 기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탑(塔) 모양을 하고 있으며, 총 삼층의 중첩된
원형 대좌를 구성하고 있는데, 각 원형의 대좌에는 아름다운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불상의 목부분이 부러지고 불두는 없어졌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慶州 南山 茸長寺址 磨崖如來坐像)은 남북국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의 마애불 좌상으로, 석조여래좌상 바로 뒤에 있는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마애여래좌상 주변에는 아직 판독이 되지 않은 10개의 글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석조여래좌상(왼쪽)과 마애여래좌상(오른쪽 바위면)
바위틈의 소나무
석조여래좌상을 뒤로하고 다시 금오산 정상으로 오른다
아슬아슬한 바위사이를 지나고
삼층석탑이 있는 곳으로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慶州 南山 茸長寺谷 三層石塔)은
높이 4.42m로 용장사가 자리하였던 용장골 골짜기 정상 부근에 있다.
2층 받침돌의 아래층 받침으로 자연암석을 사용한것이 특이하다.
바위틈에서 자란 천년송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을 뒤로 하고 다시 정상쪽으로 오른다
경주 남산 용장계 탑상곡 제1사지 (용장사지) 탑부재
용장사지 삼충석탑 북쪽에 있는 탑부재로 탑의 받침돌로 추정한다
굼오산 정상을 향하여 또 오른다
바위를 캐냈던 흔적들
드디어 금오산 정상이다
국립공원 금오산(金鰲山) 정상(해발 468m) 표지석
약수계곡으로 가는길
하산길 바위틈의 소나무
석조여래좌상과 뒤에 보이는 산정의 삼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계 탑상곡 제1사지(용장사지) 탑부재
김시습이 이곳 어딘가에 앉아 참선도 하고
돌확에 담긴 물로 먹을 갈아 붓을 적시며 금오신화를 집필하지 않았을까?
가히 신선이 앉아 놀았을법한 선경이다
경주 남산 용장계 탑상곡 제1사지(용장사지,茸長寺址)
용장사는 신라초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경덕왕 시기에 법상종(法相宗)을 열었던
고승 대현(大賢)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이 절에 있는 장륙상(丈六像)의 주위를 돌며
예배를 드리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훗날 조선 초에는 승려가 된 김시습이 이 절에 기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썼다고 하니
이 때까지만 해도 용장사가 존재하였으나 이후 완전히 없어지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용장사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이 용장사지임이 확인되었다.
용장사지 뒤는 바위 절벽이며 그 위 능선으로 삼층석탑과 불상들이 세워져 있다.
용장계곡(용장골)
금오신화(金鰲神話)란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로 쓴 다섯 편의 기묘한 이야기(소설)이다
1)만복사 저포기
만복사에서 부처님과 내기를 하여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한 양생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보니 그 여인은 왜구의 난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명문가의 여인이었다. 이 사실을 안 양생은
여인을 위한 재를 올리고 지리산에 들어가 혼자 약초를 캐며 살다가 죽는다.
2)이생 규장전
준수한 외모와 학식을 가진 이생이 명문가의 최씨 처자를 우연히 만나 시를 주고
받으며 사랑의 마음을 키운다. 천생의 연분으로 결혼을 해서 꿈같은 날들을 보내던 중,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최씨가 도적에게 잡혀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어느날 밤 최 씨가 찾아와서 남은 인연을 함께 다하기 위해 이승으로 돌아오고,
서너 해 동안 이생과 정분을 나누다가 최 씨는 다시 구천으로 돌아간다.
이생은 최씨를 그리워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
3)취유 부벽정기
홍생이 부벽정에 놀러가서 기자의 후예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우연히 만나 밤새도록 함께 놀다가 새벽이 되자 여인이 사라진다.
홍생은 여인을 그리워하며 몸져눕게 되며, 꿈에서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죽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설잠교(雪岑橋) ~ 설잠은 김시습이 승려가 되어 이곳에 오면서부터 사용한 법호이다.
4)남염부주지
박생이 꿈에 남염부주에 가서 염라대왕을 만나 염라대왕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부터 현실 정치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답을 주고받는다.
박생은 염라대왕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왕위를 물려받는다.
경주 남산 용장계 돌확 ~ 돌학이란 돌을 오목하게 파서 절구모양으로 만든 물건을 말한다
5)용궁부연록
글을 잘 짓는 한생이 용왕의 초대를 받아 잔치를 즐기고 글을 써준다.
좋은 구경과 유쾌한 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와
그곳에서 받은 선물을 간직한 채 산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춘다.
용장계곡 숲길
용장사지 입구의 대나무숲길
수량이 줄어든 용장계곡
용장골에서 ~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용장골 깊으니 / 오는 사람 볼 수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기 저기 피어나고 / 비낀 바람은 들매화 곱게 흔드네.
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 / 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줄을 모르는 구나 억새 처마 밑에서 /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용장산동요(茸長山洞窈) / 불견유인래(不見有人來)
세우이계죽(細雨移溪竹) / 사풍호야매(斜風護野梅)
소창면공록(小窓眠共鹿) / 고의좌동회(枯椅坐同灰)
불각모첨반(不覺茅簷畔) / 정화락우개(庭花落又開)
부여 만수산 무량사(2020.7.15)
무량사는 부여 만수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때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
조선조 초기에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말년을 보내다가 입적한 곳으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각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이다.
학자이면서 문인이며 법호는 설잠(雪岑). 한양 출생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무량사 영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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