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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송림속의 예천 초간정과 석송령

by 안천 조각환 2023. 2. 8.

예천 초간정(草澗亭)은 소나무사이로 보이는 깔끔한 겨울풍경이 더 아름답다.

이 정자는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 1534∼1591)선생이 1582년(선조 15)에

말년의 생활을 보내고자 금곡천 개울가 바위위에 원림을 조성하면서 함께 건립하였다.

명승 제51호로 지정된 초간정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원림(園林) 정자이다.

 

예천 초간정

 

당시에는 초간정사(草澗精舍)라고 하다가,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 15171586)

초간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그 뒤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1626(인조 4)권문해의 아들인 죽소(竹所권별(權鼈)이 다시 건립하였다.

이 역시 화재로 불타고 말았으며, 1739(영조 15)에 현손인 권봉의(權鳳儀)

옛 터에 집을 짓고는 바위 위에도 정자 3칸을 세워 원림과 함께 현재에 이른다.

 

초간정(초간정사) 정면

 

초간(草澗)이라는 뜻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읊은 시 "저주서간(滁州西澗)"의

“홀로 물가에 자라는 우거진 풀 사랑하노니(獨憐幽草澗邊生)”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초간정의 탁 터인  마루  

 

권문해(權文海,1534~1591)의 자는  호원(灝元), 호는 초간(草澗)이다.

명종조부터 선조에 걸쳐 우부승지, 좌부승지, 관찰사, 목사 등의 중앙관료와 지방수령을 역임했다.

그는 공주 목사직을 사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초당을 짓는다.

 

초간정 중수기

 

노구의 권문해는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잘 모르고 있어 이를 한탄하여, 우리나라 역사와 사적을 담고자 

초간정에서 집필에 몰두한 후, 56세 되던해인 1589년에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되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완성한다.

대동운부군옥은 20권 20책으로 단군에서 조선 선조까지의 사실을

지리, 역사, 문학, 철학, 인물, 예술, 풍속 등 다방면에 걸쳐 총망라한 방대한 저작이다

 

초간정 술회(草澗亭 述懷) 시(詩) 편액

 

청대 권상일(淸臺  權相一)

 

시냇가 풀잎 푸르디 푸르러 세속에 물들지 않았네

옛 성현들 남긴 향기 다시 사람을 가르치네.

숙세 떠난 마음 천종의 녹봉을 사양하였고

작은집 막 완성되어 길이 길이 봄이로구나.

 

성현의 춘추는 의리를 근본에 두었고

책상머리에 경전은  맑은 정신 지어 내누나.

공손히 손씻고 선조의 남긴 책을 펼치니

의기로운 마음은  정녕 시들지 않으리라.

 

*권상일(權相一,1679~1759)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태중(台仲), 호는 청대(淸臺)이다.

조선후기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이다.

 

정자 뒷편으로 마루를 내어 계곡의  시원한 바람과 원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정자의 방과 마루

 

초간정 정문

 

초간정(草澗亭) 

 

초간정 옆 개울가로 돌아 나오면 정자아래 바위에 초간정 세글자가 새겨져 있다

 

보기만해도 시원한 풍경

 

초간정 뒷편 개울

 

솔숲사이로 한폭의 그림이다

 

시원한 계곡이 휘감아 도는 그곳 바위위에 정자를 세웠다

 

신도비

 

초간정 건물 전체

 

출렁다리

 

초간정이 보이는 계곡

 

출렁다리가 보이는 곳

 

겨울이어서 여름에는 볼 수없는 풍경을 나목사이로 들여다 볼수 있어 좋다

 

예천 석송령

 

겨울은 독야청청이다.

600여년의 품격이 넘쳐 흐르는 석송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