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리정(臨履亭)은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1548~1631)선생이
후진을 교육하던 장소로 논산 강경읍(江景邑) 황산리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임리정 바로 아래에는 김장생이 건립한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팔괘정(八卦亭)이 있는 강경의 명소이다.
강경 임리정(臨履亭)
임리정은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1626년(인조 4)에 이곳으로 내려와
황산서원(黃山書院, 지금의 竹林書院)과 임리정(臨履亭)을 세워 선현(先賢)을
추존하며 후진을 교육하던곳으로, 이후 김장생의 학맥을 이은 송시열(宋時烈)이
1663년(현종 4)에 팔괘정(八卦亭)을 지어 금강(錦江)의 수려한 경관을 즐겼다고 한다.
언덕위의 임리정
이곳은 원래 황산정(黃山亭)이라 하였으나
시경(詩經)의 전전긍긍(戰戰兢兢) 여림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이라는
문장의 글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이는 "두려워 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여 엷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는 뜻으로
즉 항상 자기의 처신과 행동거지에 신중을 기하여 몸가짐을 두려워 하고 조심하라는 말이다.
임리정과 임리정기 비각건물(왼쪽)
임리정기(臨履亭記) 비각
임리정기 석비
정자가 자리한 언덕의 동쪽 아래에는 김장생이 창건한 죽림서원(竹林書院)이고 멀리 금강이 보인다.
임리정 동남쪽의 보호수 느티나무와 강경읍 풍경
죽림서원 입구와 홍살문
서원 정문의 죽림서원(竹林書院)과 유도문(由道門) 고어(古語) 편액
죽림서원은 1626년(인조 4)에 김장생이 이이(李珥), 성혼(成渾)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당시 지명에 따라 황산사(黃山祠)를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이후 김장생(金長生)을 배향하고, 1665년(현종 6)에 죽림(竹林)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조광조(趙光祖)와 이이(李珥)을 추가배향하였다.
1695년(숙종 21) 다시 송시열(宋時烈)을 추가배향하였으며,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6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림서원 내부
경내의 건물로는 6위(位)의 제단, 유도문(由道門), 홍문(紅門),
4칸의 족리정(足履亭), 4칸의 팔괘정(八卦亭), 정기비각(亭記碑閣) 등이 있다.
족리정과 팔괘정은 유림의 회합 및 제관(祭官)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강학당으로 사용된 동재형태의 헌장당(憲章堂)
이곳은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유계, 윤선거 등 충청 오현이
사계 김장생선생을 모시고 공부한 곳으로 유명하다.
강학당으로 사용된 헌장당과 편액
숙소로 사용된 서재
사당 신문
죽림사(竹林祠,사당)
제단의 위치는 좌측으로부터 조광조·이황·이이·성혼·김장생·송시열의 순으로 설치되어 있다.
사당 건물
사당앞의 중건비와 공적비 등
팔괘정(八卦亭)
팔괘정(八卦亭)은 조선 인조년간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금강에 면하여 건립한 정자로써 이퇴계와 율곡선생을 추모하며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강학하였던 장소로 전해진다.
송시열의 스승인 김장생선생이 임리정을 건립하고 강학을 시작하자
스승과 가까운 곳에 있고 싶어하는 제자의 마음이 팔괘정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하며,
임리정과 팔괘정은 150m 거리안에 있다.
팔괘정 정면(서향)
건물은 금강을 전면에 두고, 서향으로 세워졌으며,
스승인 김장생이 임리정을 세우자 팔계정을 건립하였다고는 하나
건물 규모나 크기, 방향등이 너무 똑같아 거의 동시에 세우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다.
송시열은 이 정자를 지으면서 창살무늬를 팔괘(八卦)로 꾸몄고,
그로 인하여 정자 이름을 팔괘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누정 안에는 송시열이 시를 쓴 현판이 걸려 있고,
누정 뒤의 바위에는 송시열이 새긴 글자가 있다.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禮學)을 전수받고,
뒤에 성리학(性理學)을 배웠으며,
서인(西人)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루어놓은 인물이다.
이중환(1690-1756)은 1751년 말년의 환갑 무렵에 2년 정도
이곳 팔괘정에 머물면서 유명한 택리지(擇里志)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또한 1913년 2월에는 앨리스 샤프(Allice H. Sharp) 사에리시 여선교사가 이곳에서
20명의 학생들로 만동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교육을 최초로 시작한 곳이기도하다.
한편 1921년 5월에는 김장생 강학소인 임리정에서 이화여전 출신 김복희 선생이
30명의 원아들로 처음 유아교육을 시작하기도 했다.
팔괘정 뒤 바위
정자 뒤 바위에 송시열이 새겼다는 청초암(靑草岩)과 몽계벽
몽계벽(夢桂壁)
정자뒤 바위절벽위의 황산 전망대
바위 전망대
금강 상류방향
이곳 금강의 강경포구는 화물과 사람을 실은 돛단배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곳으로 이름도 풍광에 걸맞게 강경(江景)이다.
금강 하류(서천방향)
바위절벽
금강 둔치의 바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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