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스님이자 시인으로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다.
1904년 내설악의 오세암으로 출가하여, 1905년 백담사에서 득도하였다.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계명은 봉완(奉玩), 법호는 만해(萬海), 법명은 용운(龍雲)이다.
만해 한용운 생가지
3.1독립운동을 이끈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와 공약 삼장을 작성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26년 "님의침묵"을 출간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서고 민족혼을 깨우려고 노력하였다.
민족시비공원 석비와 생가지
만해 한용운은 1911년 이회광 일파의 친일매불 책동을 격파하였으며
1913~1914년 조선불교 유신론과 불교대전을 간행하였고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33인), 1922~23년 민립대학 기성회 중앙집행위원,
1923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 1927년 신간회 경성지회장, 1930년 만당 당수,
1931년 "불교" 속간, 이후 창씨개명과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운동 등을 펼쳤다.
한용운 생가지 입구
1926년 "님의 침묵" 을 발표하여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시인과 최고의 시민문인, 저항시인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후회", "철혈미인", "박명"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노년에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경제적 고난 속에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면서도
창씨개명 반대와 학병 출전 반대운동을 펼치며 꿋꿋한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았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손병희(1864~1922), 길선주(1869~1935),이필주(1869~1942),백용성(1864~1940),
김완규(1876~1949), 오세창(1864~1953),오화영(1880~1960), 정춘수(1873~1953),
최성모(1874~1937), 최 린(1878~1958), 김병조(!877~1948), 김창준(1889~1959),
권동진(1861~1947), 권병덕(!867~1944), 나용환(1864~1936), 한용운(1879~1944),
홍병기(1869~1949). 홍기조(1865~1938),박준승(1866~1927), 박희도(1889~1952),
백동완(1885~1941),신홍식(1872~1939),신석구(1875~1950), 이명룡(1872~1956),
이승훈(1864~1930), 이종훈(1856~1931), 이종일(1858~1925),임예환(1865~1949),
나인협(1872~1951), 양전백(1869~1933), 양한묵(1862~1919), 유여대(1878~1939),
이갑성(1889~1981),
조선 독립선언서 전문
공악삼장(公約三章)
어록비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라.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후 옥중에서 집필한 옥중 독립선언서인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첫머리에서
만해 한용운 동상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님의 침묵중에서)
한용운이 태어난 생가지
사당 출입문
만해사(卍海祠)
만해 한용운 초상(사당 안)
사당입구에서 보는 생가지
생가지
민족시비공원 표석
복종(服從) ~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1879~1944)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른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모닥불 ~ 백석(白石, 1912~1996)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 조각도 막대꼬치도 / 기왓장도 닭의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 슬픈역사가 있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필명은 백석(白石)이다.
조선일보 기자, 함흥 영생고보 교사,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 역임
시비공원 주변의 가시엉겅퀴
나비의 여행 ~ 정한모(鄭漢模, 1923~1991, 시인, 국문학자)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江)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絶壁)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火藥) 냄새 소용돌이
전쟁(戰爭)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邂逅)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焦燥)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게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칸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봏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李源綠) 또는 이원삼(李源三)으로
원삼은 주로 가정에서만 불렀다고 하며, 개명은 이활(李活), 자는 태경(台卿).
아호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이육사(二六四)"에서 취음한 것이다.
작품 발표 때 "육사"와 "이육사(二六四)" 또는 활(活)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이황(李滉)의 13대 손인 이가호(李家鎬)이다.
수많은 민족시비들을 뒤로하고
우물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자조(自嘲) ~ 나손 김동욱(羅孫 金東旭, 1922~1990, 국문학자)
하늘 위에 구름이 떠가면 잠시 기다리자
새소리가 들리면 잠깐 멈춰서자
그리고 구름 위에 아무소리 없이 태양이 가는 굉음을 들어보자
나루ㅅ배와 행인(行人) ~ 한용운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루ㅅ배 당신은 行人
만해 문학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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