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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종택,고택,생가

홍성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by 안천 조각환 2023. 5. 15.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1889~1930) 장군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백야(白冶)이며, 충남 홍성에서 김형규(金衡圭)의

둘째 아들로 태어 났으나 3세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김좌진장군은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하고 토지를 소작인에게 분배하였다.

이듬해에는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설립하여 근대화에 앞장섰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 이후 대한협회(大韓協會), 기호학회(畿湖學會),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 등의 간부를 지냈다.

1913년에는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가담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후, 1917년 만주로 망명하여 이 후 13년간인 평생을

항일전투에 몸바쳤으며,  3ㆍ1운동 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총사령관이 되어 1,600여 명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생가지 입구 광장

 

1920년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있었던 청산리전투에서 이범석 등과 함께

일본군 제19ㆍ21사단을 상대로 격전을 벌여 3,300여 명의 일군을 섬멸시키는

독립군 사상 최대의 전과를 올렸으며, 그 뒤 부대를 흑룡강 부근으로 이동,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여 부총재를 지냈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안내판

 

1925년에는 영안(寧安)에서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하여 군사부위원장이 되었다.

또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세워 부교장을 지내면서 정예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1929년에는 한족연합회(韓族聯合會)를 조직하여 주석이 되어 황무지개간과

문화계몽사업은 물론 독립운동에 힘쓰던 중 공산청년당원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이 수여되었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광이 따로 있고 밖에는 마구간이 있다.

안채는 앞면 8칸, 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2칸 부엌이 있고 아랫방과 윗방 각 한 칸씩 있으며, 통칸의 대청이 있다.

김좌진장군 생가지 성역화사업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인 1998년 1월 생가지와 기념관이 완공되었으며, 

매년 10월에는 추모제와 청산리전투 전승기념축제를 열고 있다한다.

 

백야 기념관(白冶 記念館)

 

김좌진 장군 시(詩)

 

산 위의 병영 달빛 아래 칼 가는 나그네
철책성벽 바람 부는 앞에 말 먹이는 병사
깃발은 해를 가려 천리에 뻗어있고
고각소리 하늘을 들먹이고 사방 이웃을 뒤흔들도다.
십 년 동안 섶에 누워 쓴 쓸개를 맛본 뜻은
동쪽으로 동해를 타고넘어 비린내 나는 티끌을 쓸어버리고자 함이니라.

 

산영월하마도객 / 山營月下磨刀客
철채풍전말마인 / 鐵寨風前秣馬人
정기폐일연천리 / 旌旗蔽日連千里
고각흔천동사린 / 鼓角掀天動四隣
십재와신상담지 / 十載臥薪嘗膽志
동부현해소성진 / 東浮玄海掃腥塵


단장지통 석비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 끝에 찬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刀頭風動關山月(도두풍동관산월) 
劍末霜寒故國心(검말상한고국심)
三千槿域倭何事(삼천근역왜하사)
不斷腥塵一掃尋(부단성진일소심)

 

사랑채

 

사랑채의 호명정사(湖明精舍)

 

안채

 

안채 전경

 

우물과 장독대

 

부엌

 

대청 ~ 청백전가팔백년(淸白傳家八百年)

 

사랑채 안쪽

 

마구간(헛간)

 

백야 김좌진장군 사적비

 

김좌진장군 사당 가는길

 

김좌진장군 일대기  

 

유년의 꿈 ~ 해방의 실천~일깨움~진격~광복의 아침

 

백야사(사당) 입구의 홍살문

 

와룡재(臥龍齋) 

 

백야사(白冶祠)

 

김좌진 장군 영정

 

백야공원

 

백야사정비(白冶祠庭碑)

 

할일이 ...... 할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 그게 한 스러워서"

 

~중국 북만주 산시역 부근 정미소에서 공산당원이 쏜 흉탄을 맞고

운명하시기 직전 장군의 말씀 중에서 ~

 

백야공원

 

행산리사(杏山里史)

 

행산리사는 김좌진장군 생가지가 있는 이곳 행산리의 연혁을 기록한 석비이다

 

김좌진 장군 비(金佐鎭 將軍 碑)

 

김좌진장군비는 항일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김좌진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1949년 대한청년단 홍성군 단원들의 성금으로 

홍성 홍주읍성내에 세웠는데, 2007년 12월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비에는 김좌진장군의 생애와 나라 안팍에서 했던

항일독립운동의 실적과 자취가 기록되어있다.

 

백야 김좌진 기념관과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