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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영천 만취당(晩翠堂)과 금산당

by 안천 조각환 2023. 5. 21.

영천 금호읍 오계리 만취당 건물은 1781년(정조 5)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이 젊은시절 살림집을 건축하고 주위에 송림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집은  앞쪽의 길을 향하여 나앉은 광명헌(光明軒)과 행랑채의 솟을대문 지붕 사이로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마루가 조금씩 보이는 평면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75호로 지정(1984년)되어있다.

 

행랑채와 대문

 

이 집은 조선시대 후기의 주택으로 정침(正寢, 안채)을 비롯하여

사랑채와 새사랑채인 광명헌, 오른편에는 사당이, 그 후방에는 체천위(遞遷位)를 모신 

별묘재사(別廟齋舍: 報本齋)이르기까지 사대부 주택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어서

당시의 건축양식과 주생활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는 건축물이다.

 

사랑채인 만취당(晩翠堂)

 

행랑채를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사랑채 만취당은 독립군에 군자금을 헌납한 사건으로

일제관헌에 의하여 재해를 당한 것을 현 소유자(조익현)의 할아버지가 1915년에 중수하였다.

"만취당(晩翠堂)"이라는 현판이 붙은 사랑채는 정면 5칸으로 왼쪽 2칸은 사랑방이고

오른쪽 2칸에는 앞이 트인 대청과 오른쪽 끝 1칸은 재방(齋房)으로 꾸몄다.

재방의 뒷벽에는 두짝 여닫이 살문을 달아 뒤쪽의 사당과 바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만취당 대청

 

만취당은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지산 조호익(芝山 曺好益) 선생의 7세손인

조학신(曺學臣, 1732~1800) 선생이 그가 살던 집의 사랑채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주택에도 영향을 미쳐 한 집안 내에서도 남녀의 처소를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하였으며 조상에 대한 제례를 중시하여 사당을 갖추도록 하였다.

 집 뒤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선생이 손수 심은것으로 전한다.

 

만취당 대청 오른쪽 1칸은 재사(영모재)로 사용 

 

"만취(晩翠)"란 늙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만취당 대청 뒷문으로 보이는 사당과 출입문

 

조학신(曺學臣, 1732~1800)은 치재 조선적(曺善迪)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기우 (器宇)가 크고 체력이 따를자가 없었다.

1759년에 영조의 부름에 나아가 칼 쓰는 시합을 보였더니

임금님이 장하다고 크게 칭찬하여 사복(司僕) 내승(內乘)으로 임명하였다.

안으로는 현요(顯要)를 역임하고, 밖으로는 여러 주목(州牧)을 맡아 백성을 다스림에

정성을 다하니 정조께서도 높이 칭찬하여 규장각지(奎章閣誌)와 대전통편(大典通偏)

각각 1부, 그리고 말 한필을 하사하였으며, 계급을 건너 뛰어 별군직을 제수하였다.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죽음에 이르러 임금으로부터 부조와 제문이 내려졌다.

 

마구간채

 

사랑채와 안채사이의 중사랑채

 

안채(정침)

 

안채 대청

 

안채 부엌과 고방쪽

 

안채에서 보는 사랑채(좌)와 중사랑채(우)

 

안채에서 사당으로 가는  출입문

 

사당앞 작은 정원의 작약

 

사당(祠堂, 4대까지의 위패를 모심)

 

안채 뒷뜰과 장독대

 

안채 뒷뜰에서 체천위 별묘로 가는 문

 

별묘 재사인 보본재(報本齋)

 

보본재 마루

 

재사인 보본재와 곳간 건물

 

별묘 출입문

 

체천위 별묘(遞遷位 別廟)

 

체천위 별묘란 고조부까지 4대만 신위를 모시고 봉사손의 대수가 끝난

신주(위패)를 최장방(最長房)의 집이나 별묘를 지어 옮겨 제사를 받드는 것을 말하는데.

최장이란 자손 중 서열이 가장 어른이거나 같은 항렬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자이다.

체천위 별묘는 최장자손이 죽고나면 대부분 헐어버리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곳은 이곳 영천 만취당과  영덕 영양남씨 만취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체천위 별묘와 향나무

 

광명헌(光明軒)

 

새사랑채인 광명헌(光明軒)은 행랑채 옆쪽에 있는 건물로

앞쪽의 길을 향하여 있으며, 조익현(曺翊鉉)의 증조부가 1909년에 중수하였다.

 

광명헌(光明軒)의 편액은 대한제국의 재상을 지낸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의 글씨이다.

 

광명헌 건물의 퇴암(退庵) 편액은 서울 개운사의 편액을 쓴 주원영(朱原榮)의 글씨이다

 

만취당 행랑채 안쪽

 

영천 만취당 건물배치도

 

만취당 바로옆의 금산당 사랑채

 

금산당(琴山堂)은 조학신 선생의 후손인 장릉참봉 병문이

1900년에 차자인 명환의 살림집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사랑채의 평면은 "ㄱ"자형이며, 안채는 6칸 "'ㅡ"자 평면형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3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산당(琴山堂)

 

금산당 안채

 

금산당 사랑채 안쪽

 

금산당 앞의 고가

 

안채 대청

 

잘 지어진 고가인데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어 몇년전

남아있던 흙담장마져 무너지고 건물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