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이서면에 있는 용강서원(龍岡書院)은 고려 때 문신으로,
청도에 터전을 잡은 박익(朴翊, 1332∼1398)과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14의사의 충절을 기리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경내의 용강서원 충열사 및 14의사 묘정비(龍岡書院 忠烈祠, 14義士 廟庭碑)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1998.8.3)되었다.
용강서원 전경
박익(朴翊,1332~1398)의 본관은 밀양(密陽,밀성). 초명은 박천익(朴天翊),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이며,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고려왕조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郎)·중서령(中書令)·세자이사(世子貳師)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다.
용강서원 정문(중앙)과 14의사 묘정비각(오른쪽)
조선이 개국되자 두문동(杜門洞)의 귀은제(歸隱第)로 들어가 은거하였다.
1395년(태조 4) 공조판서(工曹判書)·형조판서(刑曹判書)·예조판서(禮曹判書)·
이조판서(吏曹判書)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고,
이듬해에 다시 좌의정(左議政)에 임명되었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서원정문인 숭절문(崇節門)
집 뒤의 산을 송악(松岳), 마을을 송계(松溪), 호를 송은(松隱),
집을 송암(松庵)이라 한 것은 모두 송경(松京)의 송(松)자의 뜻을 잊지 말자는 뜻이다
용강서원(龍岡書院) 강당(담너머로)
박익(朴翊, 1332∼1398)과 동시대에 살았던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그리고 변계량(卞季良)이 박익의 초상화를 보고 지은 화상시
정몽주 : 긴 수염 십 척 장신 잘도 그렸네 (畵出長髥十尺身)
볼수록 두 얼굴이 참으로 똑같네 (看來尤得兩容眞)
세상 이치가 자취 없다고 말하지 마소 (寞言公道無形跡)
죽어도 죽지 않은 사람 되겠네 (死後猶存不死人)
왼쪽 담너머로 본 용강서원 건물
길재 : 봉황의 눈, 범의 눈썹, 십 척 장신에 (鳳目虎眉十尺身)
담홍 반백의 두상이 참으로 똑같네 (淡紅半白兩相眞)
그림으로 선생 얼굴 살펴보니 (畵圖省識先生面)
그림 속에도 죽지 않을 정신 그려져 있네 (不死精神影裏人)
뒤쪽에서 본 서원정문과 동.서재
변계량 : 풍후한 얼굴 덕스러운 몸매 (豊厚形容德有身)
아무리 보아도 하늘이 내린 분이네 (看看優得出天眞)
눈 덮은 긴 눈썹, 무릎에 드리운 수염 (眉長過目髥垂膝)
그림과 사람 마주해도 분별하기 어렵겠네 (兩對難分影外人)
용강재(龍岡齋)
14의사를 제향하는 용강재(龍岡齋)는
1816년(순조16) 충열사(忠烈祠)로 개편되었다.
여충사와 내삼문
박익선생은 별세 후 좌의정에 추증되고 충숙(忠肅)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밀양의 덕남서원(德南書院)과 신계서원(新溪書院), 용강사(龍岡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은집(松隱集)"이 있다.
여충사(麗忠祠)
여충사란 이름도 고려를 향한 충절의 뜻을 나타낸 것이리라.
용강재(龍岡齋) 뒤
용강재(龍岡齋) 측면
14의사 묘정비각(14義士 廟庭碑閣)
14의사 묘정비(廟庭碑)는 1876년 건립한 것으로 비문은 동몽교관(童蒙敎官)
김시질(金是瓆)이 찬하고 서자(書者)는 천주교도(天主敎徒) 이가환(李家煥)이다.
임란 당시의 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비각의 구조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밀양박씨 일족의 위국충절(爲國忠節)과 그 전통을 400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온 후손들의 의지는 후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4의사 비각(十四義士 碑閣)
14의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밀양·청도·경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한
밀양 박씨 가문의 14인으로 모두 부자, 형제, 사촌 등의 친척들이다.
이들 가운데 11인은 선무원종공신 1·2·3등에 각각 봉해지고 1인은 병자호란 때
1등공신이 되었는데, 다른 가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용강서원 전경
14의사 명단
박익(朴翊, 1332~1398), 박경신(朴慶新, 1544~?), 박경인(朴慶因),
박경전(朴慶傳, 1553~1623), 박경윤(朴慶胤), 박경선(朴慶宣),
박선(朴瑄), 박찬(朴璨), 박지남(朴智男), 박린(朴璘), 박근(朴瑾),
박숙(朴琡), 박우(朴瑀), 박철남(朴哲南), 박구(朴球)
밀양 고법리 박익의 벽화묘(2024.2.11)
밀양 박익 벽화묘는 밀양 고법리에 있는 박익의 묘에 있는 채색 벽화이다.
1999년 9월 태풍으로 무너진 봉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석(誌石),유물과 함께
벽화가 발견되었으며, 문인석(文人石) 1쌍, 갑석(甲石), 호석(護石, 병풍석)을
갖춘 방형분(方形墳)으로 1420년(세종2)에 축조된 것이다.
조선시대 묘에서는 처음 발굴된 채색벽화묘로 사적 제459호(2005.2.5 지정)이다.
박익의 묘 근경(2024.2.11)
네모난 묘의 규모는 가로 605cm, 세로 482cm, 높이 230cm이다.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의 벽화
(위)밀양 박익 벽화묘 사적 제459호 표지판, 묘비, 재실앞 신도비
(아래)문인석 좌,우 1쌍
밀양 박익 벽화묘 입구 밀성박씨 재실과 신도비각(2024.2.11)
용강서원앞 용강지
용연정(龍淵亭)
겨울 연잎
겨울 용강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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