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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국보로 승격한 관동팔경 죽서루

by 안천 조각환 2024. 2. 2.

관동팔경 중 하나인 삼척 죽서루가 2023년 12월 28일

밀양 영남루와 함께 보물에서 국보(제343호)로 승격 되었다.

오십천이 휘감아 도는 적벽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아름답게 서 있는

죽서루(竹西樓)는 그 풍광이 아름다워 일찍이 관동팔경으로 꼽힌데다

명성 제28호로도 지정되어 있어 국보로서의 죽서루를 다시 음미해본다.

 

죽서루 설경

 

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1171∼1197)대에 활동하였던 김극기(金克己, 1148∼1209)가

죽서루의 풍경을 읊은 시 등을 통해 적어도 12C에는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C후반에 들어서 죽서루(竹西樓)라 불리기 시작했다.

 

 

1403년 부사 김효손(金孝孫,1373∼1429)이 옛터에 새로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이 1472년에 쓴 "죽서루단청기(竹西樓丹靑記)"와

허목(許穆, 1595∼1682)이 1662년에 쓴 죽서루기(竹西樓記) 등에서도 나온다.

 

흰눈속의 그림같은 죽서루

 

허목은 죽서루기(竹西樓記)에서 "동쪽에 죽장사(竹欌寺)라는 절이 있어서

그 서편에 위치한 누각이다" 라는 뜻으로 죽서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했다.

 

암반위의 죽서루

 

삼척 죽서루의 기둥은 절반 이상이 자연 암반 위에 올라서 있는데

22개의 기둥 중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기둥이 13개이고,

9개는 자연석 초석을 두고 받쳐세움으로써 그 길이가 각각 다르다.

 

죽서루 누대

 

삼척 죽서루에는 조선 숙종(肅宗)과 정조(正祖)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유명한 시인과 명신들의 한시가 새겨진 현판이 많았으나

1959년 태풍 사라호 때 많이 유실되고 현재는 28점이 남아 있다.

 

벗꽃속의 죽서루

 

이외에도 죽서루의 절경을 표현한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시인, 묵객 등 다양한 계층이

죽서루를 소재로 수많은 시문과 가사 등을 남겼다.

 

죽서루의 기둥들

 

삼척 죽서루를 표현한 그림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죽서루의 그림과

김홍도(金弘道, 1745∼?), 강세황(姜世晃, 1713∼1791) 등도 그림을 남겼다.

 

죽서루 편액

 

죽서루의 정면에 걸린 해서체로 쓴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 현판은 조선 숙종 36년(1710년)에

삼척부사를 지낸 이성조(李聖肇,1662~1739)의 글씨이다.

 

해선 유희 지소(海仙遊戱之所)란 정조임금의 어제시(御製詩)로써

"바다의 신선이 노닐던 장소" 라는 뜻으로,

 글은 삼척부사를 지낸 이규헌(李圭憲)의 글씨이다.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 적힌 현판은 "시냇가에 있는 첮째가는 정자"라는 뜻으로

남인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許穆)이 1662년(현종 22) 쓴 글씨이다.

 

정조어제 편액(상)

 

1789년(정조13) 정조대왕은 죽서루를 정말 보고싶어해서

김홍도에게 그림을 그려오라고 시켜 김홍도가 바친 죽서루 그림을 보고

"삼척 태수는 뉘집 아들이기에 매일 아름다운 곳에서 풍류를 즐기느냐" 하고

부러워하며 다음과 같은 어제(御製) 시 한편을 내렸다.

 

정조 어제(正祖 御製)

 

조석전애기일루(彫石鐫崖寄一樓)

돌을 쪼고 절벽 깎아 누각 하나 세웠구나

 

누변창해해변구(樓邊滄海海邊鷗)

누각 옆에는 푸른 바다, 해변에는 갈매기

 

죽서태수수가자(竹西太守誰家子)

삼척고을 태수는 어느집의 아드님이신가

 

만재홍장복야유(滿載紅粧卜夜遊)

기생을 가득히 싣고, 밤 뱃놀이 하겠구나.

 

죽서루 시판(詩板)

 

죽서루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명 시인묵객들이

죽서루에 올라 그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하고 시판을 누각에 걸었다.

 

위는 이승휴(李承休), 중간은 천곡 안성(泉谷 安省),

아래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시판이다.

 

등진주 죽서루 차판상운(登眞珠 竹西樓 次板上韻) 

죽서루에 올라  ~ 이승휴(李承休,1224~1300)

 

높은 하늘 고운 색채 높고 험준함을 더하는데 

햇빛 가린 구름조각 용마루와 기둥에서 춤추는구나 

푸른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날아가는 고니 바라보고

​붉은 난간 잡고 내려다보며 노니는 물고기 헤아려보네

산은 들판을 빙 둘러싸 둥그런 경계를 만들었는데

​이 고을은 높은 누각 때문에 매우 유명해졌구나

​모든 벼슬 버리고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 임금 현명해지기를 바라네

 

​반공금벽백가쟁영(半空金碧駕崢嶸)  /  엄영운단무동영(掩映雲端舞棟楹)  

사의취암간곡거(斜倚翠岩看鵠擧)  /  부림단함수어행(俯臨丹檻數魚行)  

 

 산위평야원성계(山圍平野圓成界)  /  편욕투잠료송로(便欲投簪聊送老)  

 현위고루별유명(縣爲高樓別有名)  / 서장형촉조군명(庶將螢燭助君明) 

 이승휴(李承休)

 

*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

경산부 가리현(京山府 加利縣) 사람으로 가리(加利) 이씨(李氏)의 시조이다.

 고려후기 우정언, 우사간, 전중시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으로

1252년(고종 39) 4월 과거에 급제하였고 다음해에 홀어머니를 뵈러

삼척현(三陟縣)으로 갔다가 마침 몽고의 침략으로 길이 막히자

그 곳 두타산 구동(頭陀山 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석양의 죽서루 벗꽃

 

죽서루차운(竹西樓次韻)  ~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

 

누가 하늘 도와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수장천오창화루 / 誰將天奧敞華樓)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석로성이불기추 / 石老星移不記秋)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 검푸른 빛 서려있고 (야외천환부원수 / 野外千鬟浮遠岫)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사변일대잠한류 / 沙邊一帶湛寒流0

 

시인은 본래 남 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소인자시다유한 / 騷人自是多幽恨)

청경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청경하수야객수 / 淸境何須惹客愁)

온갖 인연 떨쳐버리고 긴 낚싯대 들고 (회발만연휴적적 / 會撥萬緣携籊籊)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벽애서반롱면구 / 碧崖西畔弄眠鷗)

 

송강 정철 가사의 터(담양 식영정의 석비와 같은 형태로 세움)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6~1593)은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그는 내금강과 외금강, 관동팔경을 유람한 뒤,

조선 가사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지었다.

 

竹西樓(죽서루)   ~  송강 정철(松江 鄭澈,1537~1594)

 

 관동에서 경치 좋기로 소문난 척주의 누각  /  關東仙界陟州樓(관동선계척주루)

빈 난간에 위태로이 기대니 여름 또한 가을 같구나  /  虛檻憑危夏亦秋(허함빙위하역추) 

 하늘 위 옥황상제 궁전이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고  /  天上玉京隣北左(천상옥경인북좌)

꿈속에서 은하수 서쪽으로 흐르는 소리 들리네  /  夢中銀潢聽西流(몽중은황청서류) 

 

성긴 주렴 걷으려 하니 영롱한 이슬에 젖어있고  /  疏簾欲捲露華濕(소렴욕권로화습) 

새 한 마리 날지 않으니 강물 빛은 수심에 잠겼네  /  一鳥不飛江色愁(일조불비강색수) 

 난간 아래 외로이 떠있는 배 바다로 들려 하는데  /  欄下孤舟將入海(난하고주장입해)

 낚싯대 던지니 놀란 갈매기 울릉도로 날아가네  /  釣竿應拂鬱陵鷗(조간응불울릉구)

 

*정철(鄭澈,1536~1593)의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조선시대 우의정, 좌의정, 전라도 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인이다.

 

*천곡 안성(泉谷 安省,1344~1421)의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소목(少目). 자는 일삼(日三), 호는 설천(雪泉)·천곡(泉谷)이다.

조선전기 참지의정부사, 강원도관찰사, 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죽서루 동쪽의 오죽(烏竹,검은 대나무)

 

차 죽서루판상운(次 竹西樓板上韻)  ~  삼척부사 심영경(沈英慶)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관동제일죽서루 / 關東第一竹西樓)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히 흐르는구나 (누하용용벽옥류 / 樓下溶溶碧玉流)

산은 고요한데 계수나무 숲속에서 새 소리 들리고 (산정조제총계수 / 山靜鳥啼叢桂樹)

달은 밝은데 목란 배에서는 이야기 소리 들리네 (월명인어목란주 / 月明人語木蘭舟)

 

오랜 세월 물과 돌이 어우러진 이 경치  (백년천석여상대 / 百年泉石如相待) 

천고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도다 (천고문장부진유 / 千古文章不盡遊)

풍성한 아름다운 꽃들 옛 추억 생각나게 하는데 (채채경화생원사 / 采采瓊華生遠思)

떠가던 흰 구름 도리어 오래 머무르네  (백운귀가고엄류 / 白雲歸駕故掩留)

 

죽서루와 관아

 

삼척 도호부 관아 진주관(객사)

 

객사는 2010~2016년 죽서루 주변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옛 삼척도호부 관아지가 2021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됨에 따라,

삼척시에서는 관아를 2023년에 복원하였다.

 

 

죽서루와 오십천

 

죽서루 옆 기암들

 

용문(龍門)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며, 그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

 

오십천과 죽서루

 

회화나무(보호수, 수령 350년 이상)

 

 

오십천 절벽위의 죽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