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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선산 송당정사(松堂精舍)

by 안천 조각환 2024. 3. 2.

송당정사(松堂精舍)는 조선전기에 강계부사, 동부승지, 내의원제조 등을

역임한 송당 박영(松堂 朴英,1471~1540)선생이 1496년(연산군 2년)

고향인 선산(善山)으로 낙향하여 낙동강가에 세운 강학지소(講學之所)이다.

현재 건물은 1860년대에 중건된 것이다.

 

송당정사(松堂精舍)

 

박영(朴英)은 무신으로 본관은 밀양, 자는 자실(子實), 호는 송당(松堂)이다.

할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박철손(朴哲孫)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박수종(朴壽宗)이며, 어머니는 양녕대군(讓寧大君) 이제(李禔)의 딸이다.

 

송당정사 입구에 새워진 명경당 시비

 

명경당(明鏡堂)  ~  송당 박영(松堂 朴英)

 

형상이 있다하여 있는게 아니요 / 유상비위유(有象非爲有)

형체가 없다하여 없는게 아니로다 / 무형부시공(無形不是空)

진실과 적중해야 진실을 알게될지니 / 실중지시실(實中知是實)

스스로 쌓은 공 외에 공은 찾지말라 / 공외막심공(功外莫尋功)

 

1537년(중종 32)에 송당의 제자 박운(1493~1562)이 선산 해평면 고리실

자신의 집에 "수지명경"에서 뜻을 취하여 명경당(明鏡堂) 건물을 지었다.

이를 기념하여 개최한 시회(詩會)에 박영과 이언적(1491~1553)이 함께

참석하여 공(空)과 공(功)을 운자로 한 도학시를 주고 받았을 때의 시다.

 

모과나무

 

이 모과나무는 송당(松堂) 박영(朴英)이 송당정사를 건립하고 

심은 나무로 수령이 500년이 넘었는데, 원목은 고사하였고

원목에서 여러 새순이 나와 자란 모과나무로 자목(子木,아들나무)이다

 

 

송당 박영은 어릴 때부터 무예에 뛰어나 담 너머 물건을 쏘아도

반드시 맞히므로 아버지가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영(英)이라 하였다.

1487년(성종 18) 이세필(李世弼) 막하(幕下)에 있을 때

종사관(從事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송당 박영의 신도비

 

1491년 원수(元帥) 이극균(李克均)을 따라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였다.

이듬해 돌아와서 겸사복(兼司僕 : 조선시대 정예 기병 중심의 친위병)이 되고,

9월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이 되었다.

 

 

송당은 문무와 의학이라는 기술까지 학문을 종합해서 습득하고

실천했을 뿐 아니라, 도학의 인맥을 종합하여 아우른 그의 학맥은

오늘날까지 영남(선산)지역에서 그를 기리고 시회를 잇도록 하고있다.

 

낙동강이 발아래로 보이는 송당정사

 

송당정사 마루와 방

 

송당정사 뒤편의 사당인 문목사(文穆祠)

 

사당에서 본 송당정사

 

낙동강변의 송당정사

 

조전(曺佺,1451~?)선생이 송당 박영에게 준 시(詩)

 

송당에게(제송당,題松堂)  ~ 신곡 조전(新谷 曺佺)

        

           어성정 아래 길은 험난하고  /  어성정하로기구(御聖亭下路崎嶇)          

           대개 세상의 영웅은 물가에 있어  /  개세영웅재수우(蓋世英雄在水隅)          

           백구가 호탕하게 물결치는 것을 한참 대하니  /  장대백구파호탕(長對白鷗波浩蕩)          

  세상의 영욕을 누구에게 물어보나  /  세간영욕문하수(世間榮辱問何誰) 

   

    *주(註) : 조전(曺佺)선생은 1451년 김천 봉계에서 태어났으며

자(字)는 子진(子眞), 호는 신곡(新谷)이며, 조위(曺偉)선생의 서형(庶兄)이다.

특히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의 아들 조위(曺偉,송무 9세) , 조전(曺佺),

조신(曺伸) 3형제를 조문 삼문장(曺門 三文章)으로 불렀다.

 

송당정사와 사당(문목사)

 

 

낙동강 강변나루길의 오색의자

 

송당정사와 오색의자

 

송당정사 입구와 주변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