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고헌(慕古軒)과 옥간정(玉磵亭)은 영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조선후기의 누.정(樓.亭)으로 보현산 정남쪽 횡계천 벼랑에 세워져 있다.
모고헌은 1701년에 지수 정규양(篪叟 鄭葵陽,1667∼1732) 선생이 세웠으며,
옥간정은 1717년(숙종 43) 성리학자인 훈수 정만양(塤叟 鄭萬陽,1664~1730)과
지수 정규양(篪叟 鄭葵陽)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모고헌과 횡계서당
모고헌 안쪽에는 횡계서당(橫溪書堂) 현판을 단 강당 한 동과
동재(東齋)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횡계서당은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
1737년 경 서원으로 변모한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서원은 흥선대원군 때 훼철된 후 서당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모고헌(慕古軒)
모고헌은 횡계천 단애(斷崖,벼랑)위에 세워져 있는데,
이 건물은 계류에서 보면 층층누각형태이나 서당마당 안쪽에서 보면
단층건물로 되어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횡계서당 내에 자리잡고 있다.
향나무와 모고헌
모고헌은 문이 잠겨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으나, 자료에 의하면
건물은 별도의 기단 없이,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평면은 중앙에 1칸의 온돌방을 놓고, 방의 4면에는 두 짝 세살문을 달았다.
이 건물은 1701년에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1667∼1732) 선생이
영천 대전동에서 이 곳으로 이거하면서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하였으나, 1730년에 문인들이 개축하면서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모고헌(慕古軒) 이라 이름 하였다.
1998년 지붕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판문과 판창을 달아놓은 모고헌 3면
문 하부에는 머름을 구성하고, 문 상방 위는 심벽을 꾸몄으며,
3면은 판벽을 꾸미고 판문 또는 판창을 달았는데,
상부는 살대를 꾸며 창호를 모두 닫아도 위로 환기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면 마루 아래에는 난방을 위한 아궁이를 두었다.
문 상부의 판창을 통하여 본 내부 구조
이 건물은 가구수법 등에서 건립당시의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평면구성에서도 독특함을 엿볼 수 있는 정자이다.
판창을 통하여 본 모고헌(慕古軒)의 고헌 두 글자
상부 판창을 통하여 본 태고와(太古窩)의 태고 두 글자
모고헌 뒤쪽의 향나무와 안쪽의 횡계서당(橫溪書堂)
횡계서당 동재
횡계서당 측면
횡계서당 편액
횡계서당 정문
모고헌 뒤의 향나무(시나무)
이 향나무는 당시 정각사 스님이 준 어린향나무를 심은것으로
수령이 300여 년(1982.9.20지정) 되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향나무
담 너머로 본 횡계서당
모고헌 앞의 횡계천
비보림으로 보이는 모고헌앞의 소나무숲
옥간정(玉磵亭)
옥간정은 1717년(숙종 43) 성리학자인 훈수(塤叟) 정만양(鄭萬陽)과
지수(篪叟) 정규양(鄭葵陽)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횡계천 계곡에서 본 옥간정
옥간정도 문이 굳게 잠겨있어 계곡으로 내려가 한바퀴 돌아보았다.
역시 자료들을 참고하면, 일각문을 들어서면 우측쪽에 옥간정이 있고,
좌측에는 풍뢰당(豊雷堂)이 자리잡고 있다.
벼랑 암석위의 옥간정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4칸반인데, 전면의 어칸과 좌협칸은
2통칸의 마루이고, 우협칸에는 한칸 온돌방을 두었다.
좌협칸 후면쪽은 온돌방 2칸과 서고 1칸을 두어 전체적으로
ㄴ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깍아지른듯한 단애위의 옥간정
옥간정에서는 1720년 2월부터 삭강(朔講)을 시작하여 100여명에
이르는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매산 정중기, 풍원부원군 조현명(영의정),
명고 정간 등 당대의 명헌들을 길러냈다고 한다.
횡계천의 시원한 계류
정만양(鄭萬陽,1664~1730)은)은 영천 대전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영일. 자는 경순(景醇), 호는 훈수(塤叟)·기암(企菴)·정재(定齋)이다.
아버지는 생원 정석주(碩胄)이며, 종조부 정시연(鄭時衍)과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동생 정규양(鄭葵陽)과 함께 수학하였다.
1724년(경종 4)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려
의병 수백 명을 모아 동생 정규양을 의병장으로 삼고 규율을
모두 갖추었으나, 관군이 난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이후 이남산(尼南山) 밑에 옥간정(玉磵亭), 육유재(六有齋),
태고와(太古窩: 후에 모고헌(慕古軒)으로 개칭), 진수재(進修齋) 등을 지어
향단(香檀)과 청죽(靑竹)을 심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또한 향음주례(鄕飮酒禮: 온 고을의 유생이 모여 향약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예절)와 투호(投壺)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정만양은 동생 정규양과 함께 경사(經史)에서부터 성리학,
예학,천문,지리,역학,경제,정치,율려(律呂),과제(科制)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정통하였다.
옥간정앞 횡계천
동생 정규양과 함께 곤지록(困知錄), 이기집설(理氣輯說),
가례차의(家禮箚疑),개장비요(改葬備要),의례통고(疑禮通攷),상지록(尙知錄),
심경질의보유(心經質疑補遺),계몽해의(啓蒙解疑),외국지(外國誌),
산거일기(山居日記) 등을 저술하였으며, 또한 훈지악보(塤篪樂譜)도 지었다.
저서로는 훈지문집(塤篪文集)이 있다.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으며, 영천의 횡계서원(橫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정규양(鄭葵陽,1667~1732)의 본관은 오천(烏川, 영일,迎日).
자는 숙향(叔向), 호는 지수(篪叟)이며, 영천 출신으로,
아버지는 생원 정석주(鄭碩胄)이며, 종조부 정시연(鄭時衍)과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형 정만양(鄭萬陽)과 함께 수학하였다.
횡계천 하류쪽
경사(經史)는 물론 성리학,예학,천문,지리,역학,정치,경제,율려(律呂),
과제(科制) 등에 두루 정통하였으며, 1714년(숙종 40) 학행으로 천거되어
현릉참봉(顯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형 정만양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 격문을 돌려 향병 수백 명을 모아 의병장에 추대되었다.
규율을 모두 갖추었는데, 관군이 난을 평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그 뒤 이남산(尼南山) 밑에 육유재(六有齋),진수재(進修齋),옥간정(玉磵亭),
태고와(太古窩, 慕古軒) 등을 짓고 향단(香檀)과 청죽(靑竹)을 심어
선경 속에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옥간정 마루 하부
학설은 이황(李滉)의 이기이원론을 사상적 핵심으로 삼아
이(理)는 주(主)요, 기(氣)는 자(資)라 정의해 형 정만양의 논리와 일치하였다.
형제 간의 우애를 기리기 위해 형 만양과 함께 훈지악보(塤篪樂譜)를 지었다.
옥간정 뒷문(개울쪽)
모든 저술을 대부분 형제가 같이 해 심경질의(心經質疑),치도의설(治道擬說),
의례통고(疑禮通攷),개장비요(改葬備要),경학연원도(敬學淵源圖),
상의치심단(上醫治心丹),선천심법도(先天心法圖),대학차록(大學箚錄) 등
외에도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저서로는 훈지문집(塤篪文集) 62권이 있다.
영천의 횡계서원(橫溪書院)에 제향되었다.
담너머로 본 옥간정
※ 연일정씨,영일정씨,오천정씨는 모두 연일정씨의 다른 이름이며
오천정씨의 오천은 포항 오천(烏川)으로, 신라의 근오지현인데
고려초에 연일(延日)로 고쳐서 경주에 속하게 하였다.
이 후 1914년 일제강점기에 이웃한 흥해군, 청하군, 장기군을 병합하여
영일군(迎日郡)으로 개칭하면서 오천,연일,영일로 불리게 되었다.
시조는 신라 때 간관 정종은(鄭宗殷)이며, 주요 종파로는
1)정습명(鄭襲明)을 중조(中祖)로 하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2)정극유(鄭克儒)를 중조로 하는 감무공파(監務公派),
3)정자피(鄭子皮)를 중조로 하는 양숙공파(良肅公派)가 있다.
주요 인물로는 지주사공파에서는 포은 정몽주(鄭夢周),
감무공파에서는 송강 정철(鄭澈)이 잘 알려져 있다.
인구는 연일정씨 284천, 영일정씨 66천, 오천정씨 43천 여명이다.
옥간정 전경
정문앞의 작약
옥간정 뒷편 은행나무(보호수)와 횡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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