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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동계 정온의 거창 모리재(某里齋)

by 안천 조각환 2024. 6. 7.

거창 모리재는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동계 정온(1569~1641)은

자결을 시도했으나 전의와 광주목사의 손에 구명된 후,

이곳에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으로, 유림에서

동계 정온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한 재실이다.

 

대문인 화엽루

 

거창 북상면에 있는 이 건물은 월성계곡인 위천가의  강선대에서

 모리산 정상쪽으로 산길을 1.9km정도 올라가야 만나 볼 수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본당인 모리재, 관리사인 서무,동무, 대문인 화엽루,

그리고 유적비가 있으며, 화엽루는 1806년에 건립하였고,

모리재 건물은 대들보 상량문에 1921년에 건립한것으로 쓰여있다.

 

누각형태의 화엽루(花葉樓)

 

정문인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으며,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는데, 2개는 유실되고 2개만 남아있다.

 

본당인 모리재(某里齋)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모리재 대청마루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의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이며, 조선 중기 문신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남명 조식의 학맥을 이었으며,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서편

 

1610년(광해군 2)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사서·정언 등을 역임,

1614년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 대정에서 10년간 위리안치 유배생활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복권되어 사간, 이조참의,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동편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이조참판으로서 청나라에 굴복하는

화의가 이루어지자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며 자결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자,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이곳 농상리(모리재)로 낙향하여

초가집을 짓고 산나물로 연명하며, 후학을 가르치고 은거하다가

장 통증으로 5년 만에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모리재 상량문

 

숭정기원후 5 신유7월26일 사시입주 8월초2일 유시 상량

(崇禎紀元後 五辛酉七月二十六日 巳時立柱 八月初二日 酉時 上樑)

 

즉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숭정 사후 다섯번째 되는 신유년(1921년)

7월 26일 10시경에  기둥을 세우고 8월 2일 오후 6시경 대들보를 올렸다"

※100년이 넘은 상량문인데도 대들보 글씨와 석가래가 너무도 깨끗하다

 

모리재와 중수기 등 편액

 

동계 정온 선생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쓴 시

 

 모리(某里)로 거처를 옮기다

 

두 해 남짓 경영하여 / 경영강이재(經營強二載)

오늘 아침 비로소 이사를 했네 / 장구시금조(杖屨始今朝)

초목은 새로운 자태를 보이고 / 초수정신태(草樹呈新態)

운하는 예전의 그것과 같더라 / 운하사구요(雲霞似舊要)

 

고사리가 살지니 굶주림을 면하겠고 / 궐비기가료(蕨肥饑可療)

샘이 차가우니 목마름이 가시겠네 / 천렬갈감요(泉冽渴堪澆)

칠십 년 간의 지난 일 / 칠십년전사(七十年前事)

생각해 보면 부끄러움이 많도다 / 추사괴의요(追思愧意饒)

 

사당 출입문

 

사당 출입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일주문이다

 

사당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이곳 사당은 현재는 사용하지 않으며,

동계 고택에 있는 사당을 이용하므로 이곳은 비어있다"

 

사당내부

 

위패 봉안하는 자리

 

사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사당앞에서 본 모리재

 

협문 ~  협문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 일주문이다.

 

서재 ~  유생들의 생활공간

 

동재 ~ 유생들의 생활공간, 지금은 관리사로 이용

 

안에서 보는 화엽루(대문 겸 누각)

 

화엽루 오르는 나무계단(튼튼하면서도 정교하다)

 

화엽루 누대

 

백세청풍루(百世淸風樓) 편액

 

화려한 단청의 화엽루(서편)

 

화려한 단청의 화엽루(동편)

 

화엽루 뒤 모리재 건물

 

황명조선 문간공 동계 정선생 유허비

(皇明朝鮮 文簡公  桐溪 鄭先生 遺墟碑)

 

유허비에서 보는 모리재

 

모리재 뒷산

 

모리재 길

 

탐방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 화려한 단청의 화엽루며 모리재 건물이

지금은 아무도 관리할 사람이 없다, 앞으로 어찌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