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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세계문화유산.유적

세계유산 한국의 전통마을 ~ 안동 하회마을(1)

by 안천 조각환 2024. 6. 27.

하회마을은 2010년 07월 31일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 결의문에서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말 그대로이다.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표지석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지 올해로 14년째가 되는 해이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마을인데 그동안의 변화된

모습들이 있는지도 궁금 할 겸 전통마을을 한바퀴 돌아본다.

 

하회마을 주차장앞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며, 와가(瓦家:기와집)와 초가(草家)가 어울려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 된 곳으로, 특히 조선시대 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셔틀버스(무료) 타는곳

 

이 마을은 1999년 4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방문,

2005년 11월에는 미국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 방문,

 2009년 8월에는 조시 w 부시(아들 부시)가 방문 한바 있다.

 

풍산류씨 입향조 기적비(비각)

 

가선대부 공조전서 풍산류공 기적비

(嘉善大夫 工曹典書 豊山柳公 紀跡碑)

 

입향조인 전서공(典書公) 류종혜(柳從惠)는 풍산 상리에 살다가 

길지(吉地)를 찾아 하회마을에 터전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마을입구의 솟대와 세계유산위원회,하회인의 미소 장성

 

하회마을 입구

 

하회마을은 1984년 1월에 국가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는데,

이곳에는 국보가 2점(하회탈 및 병산탈 11점,징비록)이나 있고,

보물 5점,사적 1점,국가민속문화유산 10점,국가중요무형문화유산 1점,

천연기념물 1곳(만송정숲), 보호수 2점(600여년 된 삼신당 느티나무와

400여년 된 소나무)과 도 민속문화유산,기념물,문화유산자료 등이 있다.

 

마을입구의 전통가옥

 

하회마을 능소화

 

왼쪽방향부터 차례로 둘러본다

 

안동 하회 지산고택

 

하회마을 지산고택은 1841년 지산(志山) 류지영(柳芝榮,1828~1896)이

종가인 연행당에서 분가하여 살던 집으로,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고추밭과 초가 풍경

 

초가 마을

 

목화농장과 하회교회

 

목화(미영,무명)는 4월 ~ 5월 초순에 파종하며, 8월 ~ 9월에

흰색 또는 연홍색의 꽃이 피고, 10월에 목화 솜을 수확한다.

 

하회교회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하회교회

 

복음종(Gospel bell)

 

벽돌로 쌓아올린 특이한 종탑

 

목화밭과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 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

 

  안동 하회마을 염행당(念行堂) 고택은 조선 후기 문신인

류치목(柳致睦)이 1797년(정조 1) 에 지은 집이다.

류치목은 류성룡의 9대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의,

사간원 사간, 김해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문간채

 

건립할 당시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정침, 별당, 사당,

새사랑채,대문간채, 헛간채, 방앗간채, 장고방, 화장실 2동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었는데, 1953년 소실되어 사당과 별당, 대문간채만

남아있던 것을 2011년 정침과 방앗간채를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랑채의 염행당(念行堂) 편액

 

사랑채와 정침(안채)

 

별채와 사당사이의 흙돌담에도 기와편으로 무늬를 장식하였다.

 

별당채의 아랫벽에는 기와편으로 기쁨과 장수를 바라는 글자를 넣었다.

 

마을 안길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

 

하회마을 양오당(養吾堂) 고택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증손자

류만하(柳萬河, 1624~1711)가 충효당에서 분가하여 지은 살림집인데,

이후 그의 둘째 아들 주일재(主一齋) 류후장 (柳後章, 1650~1706)이

늘려 지었으며, 사랑채에는 양오당과 주일재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사당

 

이 집은 대문채를 두지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인 대문을 내었다. 사랑채, 문간채, 안채의 일각문이 마주하고

사당이 있는 전형적인 전통가옥이다.

 

하회구곡 중 제2곡인 남포

 

 

가을같은 단풍나무잎

 

 

메꽃(모메)

 

가경재(초가 한옥 숙소)

 

 

삼신당(三神堂)

 

삼신당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다.

류종혜가 입향할 때 심어 수령이 600년이 넘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삼신당을 찾은 외국인들

 

이곳은 하당으로 불리는데, 화산 중턱의 상당(서낭당),

중당(국신당)과 함께 마을 주민들의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룬다.

 

재단과 느티나무의 위용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내고,

다음날 아침 여기서 제를 올린 후,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시작된다.

 

삼신당 바깥 마을풍경

 

안동 하회마을 양진당(養眞堂) ~ 보물 제306호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큰 종가로 행랑채, 사랑채, 안채가

연속되어 건축되어 있으며, 사당만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류운용 가문이 사는 집이다.

 

양진당(養眞堂) 입암고택(立巖古宅) 

 

양진당은 류운용의 선조 류종혜(柳從惠)가 14세기 말 하회마을에 

처음 들어 왔을 때 터를 잡은 곳이며, 건물은 류운용(柳雲龍)의 아버지 

류중영(柳仲郢,1515~1573)이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다시 지었고, 여러 대에 걸쳐 중수하였다.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

 

사랑채 앞의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은 류중영(柳仲郢)의 호이며,

사랑 대청 북쪽 벽에 걸려있는 양진당(養眞堂)은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성룡의 6대손 류영(柳泳,1687~1761)의 아호에서 따왔다.

 

 

하회 마을 양진당은 정남향으로 99칸이었으나 현재 53칸이 남아 있다.(다음 2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