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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백촌 김문기의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by 안천 조각환 2024. 7. 14.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은 백촌 김문기(1399~145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25년(인조 3)에 세운 서원으로 춘산면 대사리에 있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원하였다.

 

의성 덕양서원(德陽書院)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는 상충사와

학생들이 공부하는 경의당(강당), 공부하고 숙식하는 동재와 서재,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덕양서원 전경

 

백촌 김문기(金文起,1399~1456)선생은 김알지의 후손으로

김녕김씨였으나 김녕의 지명이 김해로 바뀌자 졸지에 김해 김씨가

되어버려 김문기도 당대에는 본관을 김해(金海)로 사용하였다.

후대에서 김수로왕의 후손인  가야계통 김해김씨와 구별하기 위하여 

신라계통은 김해의 옛 지명인 김녕(金寧)과 경주로 분파되었는데

김문기 후손들은 김녕으로, 경순왕의 후손들은 경주로 본관을 삼았다.

 

충의공 김문기선생 사육신 현창 기념비

(忠毅公 金文起先生 死六臣 顯彰 紀念碑)

 

김문기의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이다.

1426년 문과에 급제한 후, 병조 참의, 형조 참판 등을 지냈으며

1455년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로 있을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은밀히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였다.

 

서원 정문인 유의문(由義門)

 

다음 해인 1456년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 계획이 김질, 정창손의 밀고로 발각되어 모두 주살당할 때,

김문기도 이 사건에 관련되어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덕양서원 편액

 

단종 복위에 가담한 사람들 중에 6인의 절의(節義)를

"사육신(死六臣)"이라 했으며, 사육신의 사실은 남효온(南孝溫)이 쓴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에 실려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강당인 경의당(景義堂)

 

1691년(숙종 17) 조정에서는 육신(六臣)을 공인하여 복관시켰고,

1731년에는 김문기도 복관시키고, 1757년 충의(忠毅)란 시호를 내렸다.

또한 1791년(정조 15)에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編定)할 때,

 

강당 천정

 

김문기(金文起), 민신(閔伸), 조극관(趙克寬)은 삼중신(三重臣)으로,

성삼문(成三問), 박팽년(朴彭年), 이개(李塏), 유성원(柳誠源),

유응부(兪應孚), 하위지(河緯地) 등  6인은 "추강집(秋江集)"의

육신전(六臣傳)대로 "사육신(死六臣)"에 선정되었다.

 

강당 동편으로

 

"어정배식록"은 정조가 내각과 홍문관에 명령하여

세조실록(世祖實錄)을 비롯한 국내의 공사 문적을 널리 고증해

신중히 결정한 국가적인 의전(儀典)이다.

이 때 김문기에게는 앞서 1453년 계유옥사 때 사절(死節)한

이조판서 민신과 병조판서 조극관과 같은 판서급의

중신이므로 "삼중신(三重臣)"이란 칭호를 내렸다.

 

강당 서편으로

 

기둥과 마루

 

동재(東齋)인 진수재(進修齋)

 

서재(西齋)인 긍척재(兢惕齋)

 

강당앞에서 본 정문(외삼문)

 

강당인 경의당 측면

 

사당 오르는길

 

협문

 

상충사(尙忠祠, 사당)

 

사당과 내삼문 측면

내삼문(안쪽)

 

사당앞에서 본 경의당

 

서재 등

 

옛 사당건물인듯

 

엣 사당으로 통하는 협문

 

덕양서원 우물

 

김문기 사육신 현창비 뒷면

 

덕양서원이 자리한 대사1리 마을앞 느티나무

 

인근 대사2리의 만은정(晩隱亭) 

 

만은정(晩隱亭)은 김녕김씨 입향조인 김일상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만은정 측면

 

오른쪽 앞 건물이 만은정, 중간은 추원재, 왼쪽 건물은 이은재

 

이은재(二隱齋)

 

이은재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김낙호를 기리기 위해 1930년에 건립하였다

 

이은재 마루

 

 

이은재 전경

 

추원재(追遠齋)

 

추원재는 이은재와 만은정 사이의 건물로

소덕과 성룡의 제사를 모시던 곳이라 하는데 더이상 자료도 보이지 않고,

건물의 출입구도 안보이며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