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실의 뿌리이자 곧 전주이씨의 뿌리이기도한 조경단은
전주 건지산(乾止山)기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숲으로 둘러 싸여있다.
전주 이씨는 신라시대에 사공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있다.
이한(李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며, 시조 이한에서 18대손인
목조까지 전주에 거주하였다고 하여 전주 이씨의 발상지가 되었다.
조경단(肇慶壇) 입구
이한(李翰,713~754추정)은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여 사공(司空)의
직급을 받았으며, 죽기 전에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당(唐)나라 천보(天寶, 742~756년)말 때 방관(房琯)의 벼슬을 했다.
제29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10세손 김은의(金殷義)의 딸과 결혼했다.
조경단 안내판
1771년(영조 47)에 칠도 유생들은 조선왕조 시조인 사공 이한(李翰)과
부인인 경주김씨의 위패를 봉안하는 시조묘(始祖廟)의 건립을 건의하였다.
태종대에 경기전 정전을 세웠고 영조대에는 조경묘(肇慶廟)를 세워
선원경봉지지로서 전주로 숙원을 굳혔는데, 동학혁명군으로 전주가 한때
점령되자 태조 영정과 함께 조경묘 위패도 위봉산성(威鳳山城)에
피난하는 사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의 묘역 사진 안내판
그래서 건지산(乾止山)에는 조경단을, 발산(鉢山)에는 목조의 유허비를,
오목대(梧木臺)에는 태조의 주필유지비를 세우게 되었다.
1899년 궁내부 특진관인 조경단봉심재신(肇慶壇奉審宰臣)으로
이재곤(李載崑)이 전주에 와서 건지산 묘소검분이 실시되었다.
조경단 단소와 제단 사진 안내판
검분결과 설단(設壇), 수비(竪碑), 건재(建齋)의 후보지는
따로 지관이 정하기로 하고, 동서 3,360척, 남북 3,520척의 경내 묘소는
모두 없애버리고 창경토지나 단의 좌우 계곡에 인접된 전답은
본단 수봉궁에 속하게 할 것을 제언하였다.
대한조경단의 고종 친필비와 비각 사진
고종은 1899년 5월 이곳에 단을 쌓아 당상관을 배치하고
고종 어필의 전제(篆題)와 찬문(撰文)으로 비석을 세워 전주 이씨
시조의 묘로 정하고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 명명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한 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경내 1만여평의 주변을
돌담으로 쌓고 동.서.남.북문을 두었다.
조경단(肇慶壇) 출입문
문이 잠겨있어 내부로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으나
자료에 의하면 비석은 거북등 위에 세워져 있으며, 너비 1.8m,
두께 0.3m, 높이 약 2m정도의 거대한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비각은 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3칸 8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담장 너머로 본 조경단 내부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어 들어갈 수가 없어서
담장 옆을 한바퀴 돌며 까치발로 담장너머를 살펴본다.
왼쪽부터 조경단 단소, 홍살문, 대한조경단 비각
편백나무숲
조경단 담장을 따라 한바퀴 돌아본다
담장옆 숲길
대한조경단 비각(한 변이 7.2m인 정사각형)
출입문과 조경단 안내판(안쪽에서)
조경단 단소와 제단
조경단 담장
왼쪽부터 : 대한조경단 비각, 출입문, 홍살문, 조경단 단소
이한의 묘(추정)
반대편 담장 너머에서 본 조경단 내부
출입문과 홍살문, 조경단 비각의 경사도
담장너머로 보는 조경단 이한(李翰)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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