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러나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 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정신중(鄭臣重), 정이오(鄭以吾), 정분(鄭苯) 3대의 묘
진주 정씨(晉州 鄭氏), 진양 정씨(晉陽 鄭氏)는 경남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동래 정씨, 경주 정씨 다음으로 많은(325천여명) 성씨이다.
진주 8정(晉州八鄭)으로 불렸던 진주 정씨는 세계(世系)를 달리하는
즉 시조를 달리하는 1)정예(鄭藝)의 예계, 2)정헌(鄭櫶)의 헌계,
3)정장(鄭莊)의 장계, 4)정자우(鄭子友)의 자우계 등
4계통, 8파로 계대(繼代)를 이어오고있다.
정신중(鄭臣重) 부부의 합폄(合窆)묘(정분의 조부모)
예계의 시조인 영절공(英節公)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고려 문종조 양관대제학인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1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정신중(鄭臣重) 묘의 문인석
충장공파(忠莊公派)의 시조인 예계의 영절공(英節公) 정예(鄭藝)는
고려 때 문하시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예계, 헌계, 장계의 큰집으로
파조(派祖)는 세종,문종,단종조 때 문신(文臣)인 14세손 정분(鄭苯)이다.
정이오(鄭以吾) 부인의 묘
대종손 우의정 정분(鄭苯)은 세종대왕의 고명대신 가운데
한 명이었으나 계유정난에 휘말려 사사(賜死,죽임)를 당하면서
진주 정씨 종문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상당수의 진주 정씨 후손들이 숙청당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짐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정이오(鄭以吾)의 묘(정분의 부)
이 후 일부 잔존하던 진주 정씨도 갑자사화에서 다시
화를 면치 못하게 되면서 제대로 몰락하게 되는데,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진주 정씨들은 정예(鄭藝)의 후손들이다.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 부부의 묘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훗날 출사하여 이름을 알리게 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외 계파 출신들 이었으며, 예계는 기껏해야 현감이나
호장을 지내면 다행인 정도의 몰락 양반 가문이 되었으며,
심지어 중인이나 양인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정신중(鄭臣重) ~ 합폄(1기),
정이오(鄭以吾) 부부 각각(2기), 정분(鄭苯) ~ 쌍분(2기), 3대의 묘소 5기가 있다
정분(鄭苯)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유(子㕀), 호는 애일당(愛日堂).
할아버지는 정신중(鄭臣重)이고, 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정이오(鄭以吾)이다.
정분(鄭苯)은 1416년(태종 16)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좌랑, 승문원교리 등을 거쳐, 1428년 함길도경차관,
1436년 충청도감사,1438년 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정신중(鄭臣重) 부부(합폄)묘와 정분(鄭苯) 부부의 묘 3기는 둘레석이 팔각형(왼쪽)이며
정이오(鄭以吾) 부부의 묘 2기는 둘레석이 사각형(오른쪽)이다.
이후 충청, 전라, 경상도 도체찰사를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
김종서(金宗瑞)의 천거로 우의정에 올랐으나 이듬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이 주살되자 그도 낙안(樂安)에 안치되었다가, 곧 고신(告身)을
추탈당한 뒤 낙안의 관노가 되었으며, 이후 1454년 사사(賜死)되었다.
묘역 전경
1746년(영조 22) 김종서, 황보 인과 함께 관작이 복원되었다.
1786년(정조 10) 장흥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고,
1791년 단종의 장릉(莊陵) 충신단에 배식(配食)되었다.
1804년(순조 4) 충신을 표창하기 위해 그 집 앞에 정문(旌門)을
세웠으며, 충장(忠莊)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묘역 아래는 정분의 제(동생) 정온(鄭蘊)의 재단이다
이조판서 진양정공 휘온(吏曹判書 晉陽鄭公 諱蘊)
정경부인 진양하씨(貞敬夫人 晉陽河氏) 재단비(祭壇碑)
묘역과 안내판(진주 상대동 고분군, 경상남도 기념물 제159호)
~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기에 조성된 묘역으로 당시 묘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 관리하고있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종가 사랑채(상주 외서면)
1)진주정씨의 주요 역사인물로는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 경상도관찰사,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1562~1622) 울산부사, 삼도통제사
용빈(用賓) 정택신(鄭宅臣,1717~?) ~ 영조 대의 이조판서,
권백(勸伯) 정중록(鄭重祿,1740~?) ~ 영조 대의 병조판서,
매헌(梅軒) 정기룡(鄭起龍) 장군 상주성 탈환 기념탑(상주 태평성대 공원)
2)근현대 인물로는
정상열(3대 국회의원),정준(3-5대 국회의원),
정상용(13-14대 국회의원),정균환(13-16대 국회의원),정대철(16대 국회인원),
정철기(16대 국회의원),정성호(21대 국회의원),정점식(21대 국회의원),
정일형(6대 외무장관),정헌주(10대 교통부장관),정상천(4대 해양수산부장관),
정원식(23대 국무총리),정홍원(42대 국무총리) 등이 있다.
진주정씨 시조(정예) 재실 정문인 봉무문(鳳舞門)
시조 정예(鄭藝) 외 상대 위패를 봉안한 경덕사(景德祠) ~ 청주 남이면 외천리(2024.10.10)
경덕사 경내의 진주정씨 상대 현조 합동봉사 유래비
(晉州鄭氏 上代 顯祖 合同奉祀 由來碑)
※충장공파 항렬자(行列字)
29세손 口식(植), 口규(奎), 口감(鑑), 30세손 헌(憲), 종(鍾), 일(一)
31세손 口희(喜), 口원(源), 口인(仁), 32세손 종(鐘), 삼(三), 휴(休)
33세손 口순(淳), 口헌(憲), 口수(壽), 34세손 근(根), 오(五), 길(吉)
35세손 口묵(默) ,口진(鎭), ~ ~ ~ 36세손 치(致), 호(浩) ~ ~ ~
37세손 口선(善), 口석(碩), 口주(柱), 38세손 해(海), 병(炳), 원(元)
39세손 口래(來), 口기(基), ~ ~ ~ 40세손 대(大), 석(錫) ~ ~ ~
41세손 口태(泰), ~ ~ ~ ~ 42세손 상(相)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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