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정은 옥천 석호리 대청호반가에 있는 정자이다.
산수가 수려하여 고려시대 때부터 선비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조선말기 김옥균은 본인 주역의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자
이곳 청풍정으로 내려와 은둔생활을 하던 곳이다.
대청호반가의 청풍정
금강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 위에 정자 하나 우뚝 서있다.
이곳 청풍정에 김옥균과 명월이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김옥균은 박영효,
홍영식 등과 함께 사대당 거두들을 사살한 뒤 신정부를 조직하고
호조참판 겸 혜상공국당상이 되었으나 청나라가 군대를 보내
정변을 막는 바람에 삼일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옥천 청풍정
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은 명월이라는 기생과 함께
청풍정으로 내려와 울분을 달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월이는 "김옥균과 함께 소일하고 있던 세월이 일생에
영화를 누린 것 같이 행복했지만, 자기로 말미암아 선생이 품은 큰 뜻에
누를 끼칠까봐 몹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절벽 아래 물로 떨어져 죽었다.
아침에 일어난 김옥균은 이 사실을 알고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치룬 뒤
청풍정 아래 바위 절벽에 "명월암"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청풍정 위에서 보는 대청호
장자 뒤편
정자뒤 바위에서 보는 청풍정
청풍정 주변풍경
청풍정옆 절벽
김옥균이 새겼다는 명월암(明月岩)
김옥균(金玉均,1851∼1894)은 조선시대 말엽의 정치가로,
"양반과 상놈의 구별없는 평등한 사회, 열강의 지배를 받지않는 근대조선"을
꿈꾸었던 혁명가였으며, 위로 부터의 개혁을 외치며 급진개화사상을 주장,
고종 21년(1884)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만에 실패당한다.
1894년에는 한·중·일 삼국의 제휴라는 삼화주의를 주장하였으나,
청나라 원세개(이홍장 휘하 조선 조재 청국 공사)의 동양 평화 주장 의견이라는
서한 한 통을 읽고, 청나라의 실권자 이홍장을 만나러 상해를 방문하던 중
1894년 3월 28일 상해 동화양행(東和洋行) 2층의 한 객실에서 수구파 자객
홍종우(洪種宇)의 리볼버 권총 3발의 총탄을 맞아 44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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