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남씨(英陽南氏)는 경북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인데, 신라 경덕왕 14년(서기 755년),
즉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에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귀로에 태풍을 만나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에 신라 경덕왕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성(姓)을 남씨(南氏)로, 이름은 민(敏)으로,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영양남씨 시조묘역 입구
증보문헌비고에는 남민의 7세손이며 고려 때 대장군을 지낸
남진용(南鎭勇)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 남홍보(南洪甫)는
고려 충렬왕 때 도첨의찬성사를 지냈으며, 영양남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차남 남군보(南君甫)는 의령남씨의 시조가 되었고,
삼남 남광보(南匡甫,군용)는 고성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영양남씨 시조묘
영양남씨(英陽南氏)는 크게 영양파(英陽派)인 대광공파(大匡公派)와
안동파(安東派)인 밀직공파(密直公派)로 나뉘며, 인구는 8만 2천여명이다.
영양남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6명, 무과 급제자 13명을 배출하였다.
좀더 앞에서
남군보(南君甫)는 영양남씨 밀직공파의 파조인 동시에,
의령남씨의 시조이기도 한데, 후손들(남석규 옹)에 의하면,
남군보공의 장자는 밀직부사를 지낸 밀직공파의 파조로 삼았고,
차자는 고려시대에 의령군(宜寧君)에 봉해짐에 따라 자손들이
의령을 본관으로 삼으면서 의령남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영양남씨 시조묘와 묘비
시조 남민(南敏)의 첫째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남씨 성을 받기 전에
태어났으므로 성을 그대로 "김(金)"으로 하여 영양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영양남씨와 의령남씨, 고성남씨는 물론 영양김씨는
모두 남민(南敏) = 김충(金忠)의 후손으로 한 핏줄이 된다.
당 이부상서 신라 남영의공 지묘(唐 吏部尙書 新羅 南英䝘公 之墓)
석물(동)
석물(서)
동쪽에서
서쪽에서
시조 영의공 묘역 정화기념비와 헌성금 비(내역)
영양남씨 시조 묘역
묘역 입구의 당 이부상서 신라 남영의공(唐 吏部尙書 新羅 南英䝘公) 신도비명
묘역입구의 정자와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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