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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주실마을의 월록서당,만곡정사,지훈시공원

by 안천 조각환 2024. 12. 3.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영양군 주실마을을 다시 찾았다.

주실마을은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로 인해 전국에 흩어진

한양 조씨 집안 중 일부가 1629년(인조 7년) 태백준령의 오지인

이곳 영양으로 들어와서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월록서당(月麓書堂)

 

지난번 왔을 때 오후 늦은시간이라 둘러보지 못한

월록서당과 만곡정사, 지훈시공원 등을 천천히 둘러본다.

월록서당은 월하 조술도(趙述道,1729∼1803)가 만곡 조술도(趙述道)와

함께 1764년에 착공하여 1773년에 완성하였으며, 한양조씨(漢陽趙氏),

함양오씨(咸陽吳氏), 야성정씨(野性鄭氏)가 함께 건축하였다.

 

 

영산서당이 서원으로 승격된 후 영양군에서 처음 지어진 서당이다.

당시 서당의 설립은 관변측(官邊側)의 지원없이 순수 민자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운영 또한 조씨일문(趙氏一門)에서 이루어졌다.

 

월록서당(月麓書堂) 편액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으로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월록서당 전경

 

월록서당의 천년초(天年蕉)

 

주실마을앞 숲

 

지훈문학관

 

조지훈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 조선 중기(1623∼1649)에 조정형이 지음

 

만곡정사(晩谷精舍)

 

만곡정사(晩谷精舍)는 조선  정조(正祖) 때의 유학자(儒學者)

조술도(趙述道,1729∼1803)가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1790년 영양 원당리(元塘里) 선유굴(仙遊窟) 위에 강정(江亭)으로

건립하였던 것을, 문하생들이 주곡동으로 이건하여 미운정(媚雲亭)이라

하였다가 현 위치로 다시 옮긴후 만곡정사라 하였다.

 

만곡정사 측면

 

만곡정사(晩谷精舍) 편액

 

만곡정사옆에 알알이 소복히 쌓인 은행

 

침천정(枕泉亭)

 

문패가 조동운(趙東運)인 고택

 

고택전경

 

안채

 

그 옛날 화려하고 분주했을 고택들이 쓸쓸하게 겨우 관리되고 있다

 

고택 측면

 

옥천종택(玉川宗宅)과 창주정사(滄州精舍) 

 

옥천종택(玉川宗宅) ~ 옥천 조덕린(玉川 趙德鄰,1658~1737) 선생의 옛집

 

창주정사(滄州精舍)  ~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정사

 

지훈 시 공원(芝薰 詩 公園)

 

시비(1)

 

영상(影像) ~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이 어둔 밤을 나의 창가에 가만히 붙어서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

 

아무말이 없이 다만 가슴을 찌르는 두 눈초리만으로

나를 지키는 사람은 누군가.

 

만상(萬像)이 깨어 있는 칠흑(漆黑)의 밤 감출 수 없는

나의 비(秘)들이 파란 인광(燐光)으로 깜박이는데

 

불안(不安)에 질리워 땀 흘리는 수많은 밤을

종시 창가에 붙어서서 지켜보고만 있는 사람

 

아 누군가 이렇게 밤마다 나를 지키다가도

내 스스로 사념(思念)을 모조리 살육(殺戮)하는 새벽에 

 

가슴 열어 제치듯 창문을 열면 그때사 저

박(薄)명의 어둠 속을 쓸쓸히 사라지는 그 사람은 누군가.

 

봉황수(鳳凰愁)

 

조지훈(趙芝薰, 1920∼1968)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들기도 둥주리를 마구 첬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시비(2)

 

민들레꽃  ~  조지훈(趙芝薰, 1920∼1968)

 

까닭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럽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慰勞)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시인 조동탁(趙東卓, 조지훈의 본명) 동상

 

화체개현(花體開顯)  ~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실눈을 뜨고 벽에 기대인다. 아무것도 생각할수가 없다

 
짧은 여름밤은 촛불 한자루도 못다녹인 채 살아지기 때문에

섬돌 우에 문득 자류(柘榴)꽃이 터진다
 
꽃망울 속에 새로운 우주(宇宙) 열리는 파동(波動)!

아 여기 태고(太古)쩍 바다의 소리없는 물보래가 꽃잎을 적신다
 
방안 하나 가득 자류(柘榴)꽃이 물들어 온다

내가 자류(柘榴)꽃 속으로 들어가 앉는다 아무것도 생각할수가 없다

 

낙화(落花)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우름 뒤에  /  머언 산이 닥아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  저허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파초우(琶蕉雨)

 

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  파초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  마조 앉어라.
 
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츰 나의 꿈을 스쳐 간 구름  /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