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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김천 봉계마을 봉암서당과 영천이씨 정려각

by 안천 조각환 2024. 12. 5.

김천 봉암서당은 봉산면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전기의 서당이다.

1540년(중종 35) 영일(연일) 정씨 문중에서 만취당 정이교(鄭以僑)를

추모하고 자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도장서당(道藏書堂)으로 창건하였다.

 

봉암서당 정문

 

약 100년 뒤 인종 중엽에 각곡(角谷) 평전(坪田)으로 옮겼다가

1757년(영조 33)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고 봉암서당이라고 했으며,

1895년(고종 32)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천 봉암서당(鳳巖書堂) 

 

서당 건물은 1,652.9㎡(500평) 정도의 부지에,

66.12㎡(약 20평)의 3칸 겹집 건물이다.

 

봉암서당 편액

 

이곳 봉암서당에서는 조선시대에 생원 진사에서 대사성,

삼도통제사, 참의, 참판, 판서 등 문무(文武) 정 2품까지 75인의 

인재를 배출하였고, 근세에는 육군 참모총장 육군대장 정승화

철학박사 정주영, 시조 시인 정완영 등이 이곳에서 수학하였다.

 

봉암서당 대청마루(강당)

 

상량문에는 숭정 기원 후 3정축 2월초 2일 상량

(崇禎 紀元後 三丁丑 二月 初二日上樑) 인데,

명나라 마지막 연호인 숭정기원후 첫(1) 정축이 1697년이고,

두번째 정축년이 1757년, 세번째 정축년은 1917년이 된다.

 

 

1757년(영조 33)에 이건하였고, 1895년(고종 32)에 중수

하였다고 되어있어, 상량문과는 맞지 않은데, 안내판에 의하면 

"상량문은 이건 당시의 날자를 기록한 것이다" 라고 되어있다.

 

중수기, 화수정기, 시판 등 마루에 걸린 편액들  

 

툇마루

 

앞뜰의 향나무와 소나무

 

봉암서당 전경

 

봉암서당앞 소공원

 

소공원의 송덕비

 

영일정씨 제17세 천방재공(迎日鄭氏 第十七世 天放齋公)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 휘유성 송덕비

(贈 通政大夫  吏曹參議 諱維城 頌德碑)

 

영천이씨 정려비각 ~ 봉계 초등학교 바로 뒤

 

영천이씨(1570~1597)는 영천에서 태어나 봉계마을 정유한에게

시집왔는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정유한은 관군으로 나가고 

왜적이 이곳으로 처들어오자 시부모를 모시고 뒷산으로 피신하였는데

왜병이 강제로 붙잡아 희롱하고 후미진곳으로 끌려가게 되자 

이에 분연히 저항하다 품에 있던 은장도로 자결하였다.

 

정려문

 

통덕랑 정유한 처 절부공인 영천이씨지려

(通德郞 鄭維翰 妻 節婦恭人 永川李氏之閭)

 

영천이씨가 28세로 숨진 뒤 36년이 되는해인 1633년(인조 11)에 

나라에서 정려를 내리고 비를 세웠으며, 주민들은 이씨 부인의 

정신을 본 받도록 앞에 우물을 파고 "빗지거리샘"이라 불렀다.

 

 

통덕랑 정유한 처 절부공인 영천이씨지려 석비

(通德郞 鄭維翰 妻 節婦恭人 永川李氏之閭)

 

정려비각 출입문

 

빗지거리샘 ~ 사각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