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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한국 성씨의 뿌리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

by 안천 조각환 2024. 12. 27.

재(齋)와 재실(齋室)과 재사(齋舍)는 거의 같은 의미와 용도로 쓰인다.

먼저 재(齋)의 사전적 의미는 "재계하다, 공경하다" 라는 의미인데

주로 조상이나 성현 등을 모시고 섬길 때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하고

정갈히  하는것을 이르며, 재실이나 재사를 줄여서 재(齋) 라고도 한다.

 

 1.여주 세종대왕 영릉 재실(2024.1.16)

 

좀더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재실(齋室)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집" 이라고 하며, 재사(齋舍)란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건축물로 정의하고 있다.

 

여주 세종대왕 영릉(2024.1.16)

 

세종대왕릉(영릉)의 이장은 세조 때부터 논의되다가

1469년(예종 1년)에 와서 현재 자리로 천장(옮김)하여 오늘에 이른다.

예종은 이장할 묘소를 지금의 서울 땅에서 100리(40킬로미터) 이내에서

찾도록 했는데, 이때 지관이 천거해 천장한 곳은 하늘의 신선이 하강하는

천선강탄(天仙降誕)형, 또는 신선이 앉아 있는 선인단좌(仙人單坐)형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여주 영릉(英陵, 세종대왕릉)이다.

 

2.담양 죽림 조수문의 죽림재(2024.3.17)

 

담양 분향리 죽림재는 죽림(竹林) 조수문(曺秀文,1426∼?)이

건립한 정사(精舍)로서 창녕조씨 문중의 강학장소로 이용되었으며,

처음 건물은 임진왜란시 귀중한 문서와 함께 소실되었고,

1623년(인조1)에 죽림의 6대손인 조부(曺簿)에 의해서 중건되었다.

 

죽림재 취사루

 

3.진주정씨 충장공(忠莊公) 파조 정분(鄭苯) 부부의 묘(2024.5.14)

 

진주 정씨(晉州 鄭氏), 진양 정씨(晉陽 鄭氏)는 경남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동래 정씨, 경주 정씨 다음으로 많은(325천여명) 성씨이다.

진주 8정(晉州八鄭)으로 불렸던 진주 정씨는 세계(世系)를 달리하는

즉 시조를 달리하는 1)정예(鄭藝)의 예계, 2)정헌(鄭櫶)의 헌계,

3)정장(鄭莊)의 장계, 4)정자우(鄭子友)의 자우계 등 

4계통, 8파로 계대(繼代)를 이어왔다.

 

진주정씨 시조(정예) 재실 정문인 봉무문(鳳舞門, 2024.10.10 청주)

 

4.거창 모리재 화엽루(花葉樓, 2024.6.7)

 

거창 모리재는 1637년 인조가 청나라 태종 앞에 나가 항복하는

치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척화파인 동계 정온(1569~1641)

이곳에 낙향하여 죽을 때까지 은거했던 곳으로, 유림에서

동계 정온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선후기에 건립한 재실이다.

 

본당인 모리재(某里齋)

 

5.창녕성씨 시조 재실 맥산재(麥山齋,2024.6.14)

 

창녕성씨의 시조인 성인보(成仁輔) 창녕지방(昌寧地方)의

중윤호장(中允戶長)으로 신년하례(新年賀禮)차 송경(현 개성)으로

가다가 병사(病死)하였는데 이때 조정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던

그의 아들 송국(松國)이 아버지의 시체(屍體)를 지고 천리길 고향으로

내려와서 이곳에 모셨는데 이를 “천리부시(千里負屍)”라 한다.

 

창녕성씨 시조 성인보(成仁輔)의 묘

 

6.영일(연일)정씨 시조 재실 남성재(南城齋,2024.7.6)

 

포항 대송면 남성리에 위치한 남성재(南城齋)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영일 정씨의 시조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1094~1150)

추모하기 위한 재실로, 1722년 후손들이 묘소에 묘단을 짓고

제사를 지냈으며, 1742년 현 위치에 묘단과 석상(문인석)을 세웠다.

 

1751년에 세운 영일정씨 시조 정습명 묘단비

 

7.전주이씨 시조 이한(李翰)의 조경단(肇慶壇, 2024.7.29)

 

조선왕실의 뿌리이자 곧 전주이씨의 뿌리이기도한 조경단은 

전주 건지산(乾止山)기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숲으로 둘러 싸여있다.

전주 이씨는 신라시대에 사공벼슬을 지낸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있다.

이한(李翰)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21대조이며, 시조 이한에서 18대손인

목조까지 전주에 거주하였다고 하여 전주 이씨의 발상지가 되었다.

 

조경단 단소와 제단

 

8.인동장씨 시조 장금용(張金用)의 재실 모현재(2024.8.21)

 

인동장씨(仁同張氏) 시조는 고려 초 삼중대광(三重大匡) 

신호위 상장군(神虎衛 上將軍)을 역임한 장금용(張金用)이다.

 

인동장씨 시조 재실 모현재(慕賢齋)

 

인동장씨는 시조 이래 후손들이 옥산(인동)에 세거하면서

지명에 따라 본관을 옥산(玉山)으로 하였으며, 옥산의 행정구역 명칭이

인동으로 변경됨에 따라 지금은 본관을 인동(仁同)으로 쓰고 있다.

일부 후손은 역사적인 이름을 연유로 옥산을 본관으로 쓰기도 한다.

 

9.함양박씨 시조 재실 영명재(永明齋, 2024.9.5)

 

함양박씨의 원시조는 신라 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비조는 25대손인 신라 54대 경명왕 박승영(景明王,朴昇英)이며,

경명왕은 아홉왕자를 두었는데, 그 중 여덟왕자에게 각 고을을 분봉하였다.

 

함양박씨 시조묘

 

첫째는 밀성대군 박언침(밀양,반남,진원박씨), 둘째는 고양대군 박언성(고령박씨), 

셋째는 속함대군 박언신(朴彦信, 速咸~속함은 함양의 옛 지명, 삼척박씨), 

넷째는 죽성대군 박언립(죽산,음성,고성박씨), 다섯째는 사벌대군 박언장(상주,충주박씨), 

여섯째는 완산대군 박언화(전주,무안박씨), 일곱째는 강남대군 박언지(순천,춘천박씨), 

여덟째는 월성대군 박언의(경주박씨의 8대군파)로 봉하여 그 후손들이 각각 분파하였으며,

아홉째 아들인 박교순의 후손들은 다시 경주박씨의 국상공파와 울산 박씨로 분파되었다.

함양박씨의 시조는 셋째인 속함대군(速咸大君) 박언신(朴彦信)이다. 

 

10.능성구씨(綾城具氏) 시조 구존유(具存裕) 묘역(2024.9.9)

 

능성구씨(綾城具氏)는 화순 능성(능주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고려 왕조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

(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낸

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능성구씨 시조 재실 영모재(永慕齋)

 

11.안동김씨 태장재사(台庄齋舍) 이상루(履霜樓, 2024.9.19)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는 안동 서후면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건물로 (신)안동김씨 시조인 태사 김선평(金宣平)

단소(壇所)를 지키고 봉향(奉享)을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신)안동김씨 시조 김선평의 단소

 

12.안동장씨(安東張氏) 성곡재사(城谷齋舍) 추원재(2024.9.19)

 

안동 서후면에 있는안동 장태사공 성곡재사(張太師公 城谷齋舍)

안동장씨(安東張氏)의 시조 장정필(張貞弼)의 제단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806년(순조 6)에 세워진 건물이다.

 

안동장씨 시조 딘소

 

장정필의 묘는 그 위치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는데,

1842년(현종 8) 재사 인근의 무덤들을 조사한 끝에 장정(張貞)

이라는 두 글자가 쓰인 지석 조각을 찾아 그 위치를 알게 되었다.

 

13.안동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2024.9.19)

 

안동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는 고려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며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의 재사(齋舍)이다.

조선 중기의 건물로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83호(1984년 지정)이다.

 

안동권씨 시조 권행(權幸)의 묘(2024.9.22)

 

고려 태조 왕건은 김행(金幸,뒤에 권행)과 장길(張吉=장정필)을

대상(大相)으로 삼았는데, 김행이 귀부(歸附)하여 고려에 항복하니

고려왕이 기뻐하며 "행(幸)은 능히 기미(幾微)에 밝고

권도(權道)에 통달하였다." 하고 권(權)씨로 성을 하사하였다.“

김행(金幸)은 이때부터 권행(權幸)이 되어 안동권씨의 시조가 되었다.

 

14.구 안동김씨 중시조 김방경의 음수재(飮水齋, 2024.9.19)

 

(구)안동김씨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손자 김숙승(金叔承)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로, 일반적으로 안동 김씨로 칭하는데,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후 안동 김씨)와의 구별을 위해

구 안동 김씨(선 안동 김씨, 또는 상락 김씨)라고도 한다.

 

안동김씨 중시조 상락공 김방경의 묘

 

15.풍산류씨 금계재사(豊山柳氏 金溪齋舍, 2024.9.22)

 

안동 풍산류씨 금계재사(安東 豊山柳氏 金溪齋舍)는

 풍산부원군 류중영(柳仲郢 1515∼1573)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서후면 성곡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88호(2016.7.1 지정)이다.

 

입암 류중영선생 묘

 

류중영(柳仲郢,1515~157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이다.

묘는 안동권씨 시조 권행의 묘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6.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 재실 세일재(歲一齋, 2024.10.10)

 

청주한씨(淸州韓氏)는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은 충북 영동 황간면

난곡리에서 한지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40세 무렵에 청주

방서동(方西洞)으로 이주하여 마을 언덕에 무농정(務農亭)을 짓고

방정리(方井里) 무농평(務農坪)의 농토를 개척한 호족이었다.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 한란(韓蘭)의 묘

 

17.창녕조씨 시조 조계룡의 종덕재(種德齋, 2024.11.9)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 조계룡(曺繼龍, 571~651)은 창녕에서

태어났으며, 용모가 특출하여 신라 진평왕(眞平王)에게 아뢰었는데,

왕이 아이를 접견하고 보니 풍모가 특이하고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의 글 무늬가 있음을 보고 성(姓)을 조(曺)라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지어 주었다.

 

안강 창녕조씨 시조 조계룡의 묘

 

성장하여 진평왕(眞平王)의 사위(駙馬)가 되고 벼슬이 태사(太師)에 올라

왕실의 스승이 되었으며,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封)해졌다.

 

18.포은 정몽주선생의 재실인 영모재(永慕齋,2024.11.19)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는 용인시 모현읍에 있다.

 포은 정몽주선생은 1392년 이성계의 5남이자 훗날 조선 태종에 오른

이방원과 술자리를 가지고 난 이후 귀가 하던 중 이방원이 보낸 수하가

휘두른 철퇴에 맞아 개성 선죽교에서 피살되면서 개성 근교 풍덕군

안장되었다가 용인으로 이장하여 오늘에 이르런 묘소이다.

 

영일정씨 포은공파 파조인 포은 정몽주의 묘

 

19.영양남씨(英陽南氏)  시조 남민(南敏)의 묘(2024.12.3)

 

영양남씨(英陽南氏)는 경북 영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인데, 신라 경덕왕 14년(서기 755년),

즉 당나라 현종(玄宗) 천보(天寶) 14년에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귀로에 태풍을 만나 영덕(盈德)의 죽도(竹島)에

표착하여 신라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이에 신라 경덕왕은 여남에서 왔다고 하여

성(姓) 남씨(南氏)로, 이름은 민(敏)으로,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렸다. 

 

영양남씨 시조 남민의 신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