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조씨 찬성공파의 파조(派祖)이신 좌찬성(左贊成) 휘 경수(諱 敬修)
선조 묘소(환,煥 자 학렬의 18대조)와 환(煥)자 항렬의 12대조 되시는
묵재공( 黙齋公) 휘 익(諱 瀷)의 묘소와 매계선생의 당숙되시며 영의정을
지낸 휘 석문(諱 錫文)의 묘소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에 있다.
1.장단 선영
이곳 장단면,진동면,진서면등은 민통선 안으로, 원래 장단군이었으나
1972년 행정구역개편으로 파주시에 편입시켜 선영은 진동면 지역이 되었다.
묵재공(黙齋公) 휘 익(諱 瀷) 묘소 (2008.10.18) - 진동면 동파리 을좌
이곳은 민통선 안으로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산 60번지와 그 일대 선영이다.
성묘를 하려면 1개월여전에 허가를 받아 장파리의 군부대에서 신원확인 후
임진강(민통선)을 건너야 선영에 가서 참배할 수 있는 곳이다.
2007.10.28 처음 참배 당시의 참나무가 우거진 현장
6.25전쟁 후 접근할 수도 없었고, 그동안 무관심으로 위치도 파악 못하다가
지금은 고인이 된 경환(景煥) 형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근 지인의 도움을 받아
2007.10.28 종친들과 처음 어렵게 참배했는데 당시에는 참나무로 우거져 있었다.
두번째 해(2008년) 성묘 시
2007년 첫해에는 벌초를 하고, 전기톱이 없어서 작은나무 일부만 베어내고
굵은 나무는 남겨 두었다가, 2008.10.18(토) 두번째 참배시에 나머지 나무를
베어내고 밧줄과 도르레를 이용하여 인력으로 힘겹게 문인석 등을 세웠다.
흙속에 뭍혀있던 문인석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하는중이다
이 후 코로나 이전까지 격년으로 참배하였는데, 민통선 안은 문의할곳도
이정표도 없으며 네비게이션도 운영되지 않는 지역으로 현지 지인의 안내를 받아 가고
있는데, 리비교를 건널때는 3km 정도 지나 중간에 충간공 산소(미군부대입구)를 지나고,
풍천임씨 묘소안내 표지판 있는 곳에서 좌회전하여 1키로미터 정도 가다가
다시 좌회전하여 작은 고개를 넘어 가야했다.
2008년 성묘시에 전년도에 다 베어내지 못한 나머지 나무를 모두 베어냈다
요즘은 리비교 하단의 두포교를 건너서 가야하기 때문에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다.
묵재공 약보
조경수(曺敬修,좌찬성) - 심(深,참의공) - 계문(繼門,울진공) - 위(偉,문장공) -
사우(士虞,별제공)-윤희(胤禧,영월공)-익(瀷,묵재공)-제창(悌昌,참판공)-유(逾,우졸당)
*참고로 파조이신 찬성공 휘 경수(敬修)의 묘소는
"장단군 진동면 서곡 신좌(辛坐)이며 표석이 있다"고 족보에 기록되어 있으나
민통선 최북단으로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라 참배도 못하고 있다.
조선조 초중기의 사대석(沙坮石) ~ 처사 창녕조공 익 지묘(處士 昌寧曺公 翼 之墓)
장비가 없어서 둘레석도 흙을 조금 파내는데 그쳤는데
오랜세월이 지나도 묘비명이 뚜렷이 남아있어 찾는데 도움이 되었었다
2008년 두번째 해의 묘소 정비 후 참배 장면(10명)
2012.10.25 다시 찾은 묵제공 묘소
2012년은 서울 등지에서도 참여하여 모두 22명이 참배
통일되어 자유로이 참배할 날을 그려본다
민통선내 충간공 휘 석문(諱 錫文)의 묘소
충간공은 매계선생의 당숙이며 동파리의 묵제공 산소 가는 길목에 있다
2012.10.25 휘 석문 선조 산소(역시 철조망안에는 못들어가고 밖에서 참배)
2,서울 고척동 선영
서울 구로구 고척동 산소는 고척고등학교 바로 뒷편에 있으며
토지 보상금 수령문제로 오랜기간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바로 그곳으로 현재는 묘소도 모두 공원구역에 속해있다.
서울 고척동(고척고등학교 뒷편)에는 매계선생의 아드님이신
별제공(別提公) 휘 사우(諱 士虞, 14대조) 선조와
손자되시는 영월공(寧越公) 휘 윤희(諱 胤禧,13대조부)의 묘소가 있다.
별제공 바로 뒤의 묘소는 별제공의 장인(평산 신씨)과 장모 묘소이고
구청에서 공원을 조성하면서 정자가 세워졌다
성묘 장면(2012.10.25)
서쪽 하늘엔 해가 뉘엿뉘엿
영월공 산소의 부러진 석물들
영월공 산소 측면
오랜세월이 흐르면서 상석의 비문도 비바람에 모두 훼손되어 보이지 않는다
장단(長湍)
장단(長湍)은 곧 내가 서울에 살고 있을 때, 조상의 산소를 모신 고향이었다.
생각건대 나의 13대조(代祖) 휘(諱 ) 경수(敬修) 밀직부사(密直副使)
증 좌찬성(贈 左贊成)의 묘소가 본부(本府,고을) 서곡(瑞谷) 구봉산(九峰山)
을향(乙向)의 평원에 있고, 부인 증 정경부인(贈 貞敬夫人) 평산김씨(平山金氏)의
묘소는 이와 광혈(壙穴)을 함께 하였다.
아들은 감사(監司)로 휘(諱)가 항(沆)인데 묘소는 부친의 묘소와 함께 있다(고묘동,考墓同).
좌랑(佐郞) 휘(諱) 효창(孝昌)의 묘소는 국지(局地,국내,局內,영역)내의 병좌(丙坐)
평원에 있다. 충간공(忠簡公) 휘(諱) 석문(錫文)의 묘소는 임진(臨陳) 동촌(東村)인
서하구곡(西河邱谷)의 자좌(子坐)에 있고, 동쪽언덕의 신좌(辛坐)를 향한 평원
(동파 향 신지원, 東坡向辛之原)은 곧 나의 7대조 휘(諱) 익(瀷)으로 숭정(崇禎) 때의
처사이신 증 이조참의(贈 吏曹參議)부군의 무덤이다.
숙부인 평산신씨와 합장하였고, 묘 앞의 사대석(沙坮石)에 성(姓)과 휘(諱)를
특별히 기록하였다. 오호라! 밀직공(密直公)의 자손들이 고관대작(高官大爵)을 지내어
세상을 빛내고 이어 온 것은, 마땅히 위전(位田)의 풍후(豊厚)함이 있었을 것인데,
전래(傳來)한 것은 겨우 수일지경(數日之耕,작은농토)만이 있어서, 옛일은 진실로 알수가 없다.
처사공(處士公)의 위전(位田)은 우리 부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수일지경(數日之耕)인
두 처사(處士)의 위토(位土)를 마련하여 한해에 한번 제수(祭需)를 올리게 되었으나,
자손들은 멀리살고 있어 한번도 가서 참배하지 않고
묘직배(墓直輩, 墓道輩?, 묘소를 관리 하는 사람)에게 미루고 맡기었으니,
제대로 제사하는지 안 하는지를, 또한 알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위전(位田)을 추가로 마련하여 유사(有司)애게 보내어 성대한 제사를 베풀어,
우리의 조상님 묘소에 자손들이 있음을 알게 할 수 있겠는가?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부모의 상(喪)을 신중히 모시고 선조를 추모하면
백성의 덕성이 돈후하게 되리라.” 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아! 우리 후손들이 어찌 이를 유념하지 않을 손가?
휘(諱) 서규(瑞奎)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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