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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쉬어 가는곳/이야기 마당

율곡 이이와 황주기생 유지와의 사랑이야기

by 안천 조각환 2016. 12. 29.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7~1584)는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이며,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관직은 황해도 관찰사, 호조좌랑, 예조좌랑, 이조좌랑을 거쳐 이조판서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이언적,이황,송시열,박세채,김집과 함께 문묘종사와 종묘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중 하나이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강릉 죽헌동에 있는 외가인 오죽헌에서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오죽헌 별채에서 태어났는데, 신사임당이 태기를 느낄떄 흑룡이 바다에서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었다하여, 나중에 그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이라 일렀고,

아이 때의 이름은 현룡(見龍)이라 지었다가 뒤에 이(珥)로 바꾸었다.

이후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 본가로 와서 생활하였으며 저서로는 천도책,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만언봉사, 기자실기, 격몽요결, 성학집요 등이 있다.

 

오죽헌 전경

율곡 이이가 황해도 관찰사(감사)로 있을때 황주기생 유지와의 사랑이야기를

친필시로 남겼는데, 유지가 이 시를 모아 유지사(柳枝詞)라는 첩(帖)으로 남겼다.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 편액 건물과 몽룡실

1.율곡 이이가 황주기생 유지에게 써준 시

 

아! 황해도에 사람 하나 있어, 맑은 기운 모아 선녀자질 타고났네.

마음이며 자태 곱기도 해라, 얼굴이랑 말소리도 맑구나

새벽하늘 이슬같이 맑은 것이, 어쩌다 길가에 버려졌던가

봄도 한창 청춘의 꽃 피어날 때, 황금집에서 살지 못하는가 슬프다 그 아름다움이여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안 피어, 정만 맥맥이 서로 통했고

중매 서는 이 가고 없어, 먼 계획 어긋나 허공에 떨어졌네.

좋은 기약 다 놓지고서, 허리띠 풀 날은 언제일꼬

황혼에 와서야 만나니, 모습은 옛날 그대로구나.

 

지난세월 그 얼마였던가, 슬프다 인생의 무성한 푸르름이여

나는 몸이 늙어 여색을 멀리 해야겠네, 세상 욕정 대해도 마음은 식은 재 같으니

저 곱디곱고 어여쁜 여인, 사랑의 눈길 돌리며 나를 못있네

황주 땅에 수레 달릴 때, 길은 굽이굽이 멀고 더디더구나.

 

절간에서 수레 멈추고, 강둑에서 말을 먹일 때

어찌 알았으랴 어여쁜이 멀리까지 따라와. 밤중에 내 방문 두드릴 줄을,

아득한 들판에 달은 어둡고, 빈 숲에는 범 우는 소리 들리네

나를 뒤 따라 온 뜻 무엇인가 물으니, 예전의 어진 말씀 그리워서라 하네.

 

문을 닫는 건 인정 없는 일, 같이 눕는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 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

사랑의 정 다 못하고 일이 어긋나, 촛불 밝히고 밤을 세우네.

하느님이야 어찌 속이겠는가, 깊숙한 방 속까지 내려 보시니,

 

혼인할 좋은 기약 잃어버렸다고, 차마 몰래 하는 짓이야 하겠는가

동창이 밝도록 잠 못 이루다, 갈라서자니 가슴엔 한만 가득

하늘엔 바람불고 바다엔 물결치는데, 노래 한 곡조 슬프기만 하구나

아! 본래 마음 밝고도 깨끗해, 가을 강물위의 차가운 달이로구나

 

마음에 선악 싸움 구름같이 일 때, 그중에도 더러운 것 색욕이거니

선비의 탐욕이야 진실로 그른 것이고, 계집의 탐욕이야 말해 무엇하나.

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맑히고, 밝은 근본으로 돌아가리라

내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 죽어 저 부용성(저승의 신선나라)에서 너를 만나리.

 

2.짧은 시 3수

 

天姿綽約一仙娥(천자작약일선아) 예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十載相知意態多(십재상지의태다) 10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

不是吾兒腸木石(불시오아장목석) 이 몸인들 목석 같기야 하겠나마는

只綠衰病謝芬華(지록쇠병사분화) 다만 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한다네

 

含悽遠送似情人(함처원송사정인) 서로 만나 얼굴이나 친햇을 따름이네

更作尹那從爾念(갱작윤나종이염) 다시 태어나면 네 뜻대로 따라 가련만

病夫心事已灰塵(병부심사이회진) 병든 이라 세상 정욕은 이미 재 같구나.

 

每惜天香葉路傍(매석천향엽로방) 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 말고

雲英何日遇裵航(운영하일우배항) 운영처럼 배항을 언제 만날까?

瓊漿玉杵非吾事( 경장옥저비오사) 둘이 같이 신선이 될 수 없는 일이라

臨別還慙贈短章(임별환참증단장) 떠나며 시나 써주니 미안하구나!

 

癸未九秋念八日 栗谷病夫書于 栗串江村

(1583년 9월 28일 병든 늙은이 율곡이 밤고지 강마을에서 쓰다)

 

율곡 이이는 그 동안에 일어난 유지와의 일들을 시로써 상세하게 적고 있으나

마지막에 글을 보는 이들이 오해할 것으로 염려해

두사람의 관계는 순수하고 깨끗하며 "예"로써 끝난 관계였음을 강조한다.

이이가 병약하여 3개월뒤 별세한 후,

유지는 이이의 친필 유지사를 첩(帖)으로 만들었으며.

유지사(柳枝詞)는 현재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다음은 그 내용이다.

 


"유지는 선비의 딸이다. 몰락해 황강(黃岡·현재의 황주) 관아의 기생으로 있었다.

1574년 내가 황해도 감사(관찰사)로 갔을 적에 동기(童妓)로 내 시중을 들었다.

섬세하고 용모가 빼어난 데다 총명해서 내가 쓰다듬고 어여삐 여기긴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욕의 뜻은 품지 않았다.
그 뒤에 내가 원접사가 되어 평안도로 오고 갈 적에 유지는 매양 마을에 있었지만,

하루도 서로 가까이 보지는 않았다. 계미년(1583년) 가을,

내가 해주에서 황주로 누님을 뵈러 갔을 때 유지를 데리고 여러 날 동안 술잔을 같이 들었다.

해주로 돌아올 적에는 절(蕭寺)까지 나를 따라와 전송해 주었다.

 

그러곤 이별한 뒤 내가 밤고지(栗串)라는 강마을에서 묵고 있는데,

밤중에 어떤 이가 문을 두드리기에 보니 유지였다.

방긋 웃고 방으로 들어오므로 나는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대감의 명성이야 온 국민이 모두 다 흠모하는 바인데,

하물며 명색이 기생인 계집이 어떠하겠습니까?

게다가 여색을 보고도 무심하오니 더욱 탄복하는 바이옵니다.

이제 떠나면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기 어렵기에 이렇게 감히 멀리까지 온 것이옵니다.”
그래서 마침내 불을 밝히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 기생이란 다만 뜬 사내들의 다정이나 사랑하는 것이거늘,

누가 도의(道義)를 사모하는 자가 있는 줄을 알았으랴.

더욱이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감복했다고 하니 더욱더 보기 어려운 일이로다.

안타까워라! 이런 여자로서 천한 몸이 되어 고달프게 살아가다니.

더구나 지나는 이들이 내가 혹시 잠자리를 같이 하지나 않았나 의심하며

저를 돌아보아 주지 않는다면 국중일색(國中一色)이 더욱 애석하겠구나.

그래서 노래로 읊고 사실을 적어 정에서 출발하여 예의에 그친 뜻을 알리는 것이다.

보는 이들은 자세히 알도록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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