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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문화유산산책/누.정.서원.향교

대구 도동 백원서원

by 안천 조각환 2018. 12. 18.

동구 도동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호) 앞에 위치한 도동서원은

지방유림들이 서시립선생을 봉안 추모하기위해 1692년(숙종18)에 창건하였었는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2년 복원하고 1928년 현위치인 전귀당 부지로 이건하였다

서시립은 한강 정 구선생과, 현광 장여헌선생의 문인으로 인조 24년과 27년에

각각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전귀당은 오봉 이호민, 백헌 이경석등이 서시립의 효행을 칭송하여 지어준 당명이다


서원 외삼뮨인 유인문(由仁門)


백원서원(百原書院)


서원 강당에 걸려있는 서시립의 호인 전귀당(全歸堂) 당호 편액


-서시립(徐時立 1578∼1665)의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입지(立支), 호는 전귀당(全歸堂)으로.

어려서부터 조부모 및 부모 섬기기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으니,

어떠한 음식이라도 반드시 맛을 보고 드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을 지키기 위하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집을 떠나자

15살 어린 나이로 홀로 집에 남아서 조상의 사당을 지켰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공산(公山)의 삼성암(三省菴)에 피난하였다.

정유재란 때는 산속에 피신시키고 걸어서 동래까지 왕래하면서 쌀을 구하여 부모를 공양하였다.

부사가 이를 가련하게 여겨 이웃 고을의 세미(稅米)를 바꾸어주었다.

당시 이호민(李好閔)이 그 지역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 효행의 지극함에 감동하여 진상할 밀과(蜜果)·어육(魚肉) 등을 내려 할머니를 봉양하게 하고, ‘

全歸(전귀)’의 두자로써 당호(堂號)하게 하였다.

벼슬은 참봉에 이르렀다. 좌랑에 증직되고 대구 백원서원(百源書院)에 제향되었다


★오봉 이호민은 조선 선조시대 문인으로 연릉군과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올랐으며

죽은뒤에는 청백리에 올랐다



서시립의 모부인 강(康)씨의 효행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