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서원(金烏書院)은 구미시 선산읍 원리에 있는 서원으로
1572년(선조 5)에 최응룡(崔應龍)·김취문(金就文) 등이 부사 송기충(宋期忠)에게 청하여,
길재(吉再)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금오산 아래에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575년에 ‘금오’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지방유림이 부사 김용(金涌)에게 청하여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으며, 1609년(광해군 원년)에 다시 사액을 받았다.
*2020년 12월 29일 금오서원의 정학당은 보물 제2102호로,
상현모는 보물 제2103호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북도 기념물 제60호이다.
서원 출입문인 읍청루(挹淸樓)
그 뒤 김종직(金宗直)·정붕(鄭鵬)·박영(朴英)·장현광(張顯光)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경내의 주요건물로는 상현묘(尙賢廟)· 재실· 정학당(正學堂)· 누문(樓門) 등이 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소장전적은 6종 23책이 있다.
안에서 본 읍청루
읍청루 건물 내부
금오서원 강당인 정학당(正學堂, 보물제 2102호, 2020.12.29)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은 길재를 포함하여 선산부와 연고가 있는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이 배향된 금오서원의 강당으로,
임진왜란 직후 현재 위치에 새로 건립하여 변형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를 증명하는 기록과 현판들이 남아 있어서 서원의 역사와 변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 양식적으로는 영쌍창(靈雙窓)이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직후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건축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고
임진왜란 직후 창건된 건물로 조선중기 강당 건축의 모범을 보인다.
강당내부와 정학당 편액
강당 내부(1)
강당 내부(2)
강당에서 본 읍청루와 동재,서재
동재인 시민재(時敏齋)
서재인 일건재(日乾齋)
강당 뒤쪽의 사당(상현묘) 출입문인 내삼문
상현묘(尙賢廟, 보물 제 2103호, 2020.12.29)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는 선산부와 연관이 있는
길재(吉再), 김종직(金宗直)·정붕(鄭鵬)·박영(朴英)·장현광(張顯光)을 배향하고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없어지지 않고 사액된 47개 서원 중 하나인
금오서원의 사당으로, 상현묘는 건립과정의 기록이 명확하고
임진왜란 이후 중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창호의 치목(治木)기법, 살미의 형태나 대공의 모습 등을 볼 때 조선중기의
건축구조와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는 품격 있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서원의 사당이다.
사당 뜨락에서 본 내삼문과 강당
장경각
남산실(藍山室)
청아재(菁莪齋)
금오정(金烏亭)
서원 외부
야은 吉再(1353 ~ 1419)선생은 고려말과 조선초기의 인물로.
자는 재부(再夫). 호는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이고.
해평김씨의 중시조이기도 하다.
야은 길재의 회고가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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