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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梅溪 曺偉 先生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28)한산 영모암을 참배하고

by 안천 조각환 2019. 12. 17.

조위선생은 충청도 관찰사 재임시인 1494~1495년 충남 서천을 순행하는 중

제수용 술을 들고 한산 기린산 아래 영모암을 찾아

고려말의 충신인 목은 이색(李穡)선생의 위패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참배를 하고

묘소에 올라 옛 비석을 어루 만지며 높은신 풍모를 추앙하는

520여년전 조선 선비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길을 찾아본다.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堂) 


-목은선생영당은 기린사 기슭

이색의 묘 바로 아래에 있으며 목은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조위선생이 참배할 당시의 영모암(永慕庵)은 사라지고 없으나

아마도 영당이 있는 바로 이곳이 아닐까 짐작되는 자리이다.   


한산 영모암을 참배하고(謁韓山永慕庵)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기린봉하쇄연람(麒麟峰下鎖烟嵐) 기린봉 아래에는 산안개에 잠겼는데

서주래심영모암(絮酒來尋永慕庵) 제수용 술을 들고 영모암을 찾았다.

만학송추금이공(滿壑松楸今已拱) 골짜기마다 나무들은 이미 한 아름 넘고

백년부노아능담(百年父老雅能談) 백 살 먹은 늙은이도 또박또박 말을 한다.

영영묘묘귀선부(英靈渺渺歸僊府) 영령은 아득히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유상당당조불감(遺像堂堂照佛龕) 유상은 당당히 불갑을 비춘다.

개세재명일구롱(盖世才名一丘壟) 한 시대를 풍미한 재주와 명승으로 무덤에 묻히어

초장존파의하감(椒醬尊罷意何堪) 제수를 차려놓고 절을 하고 나니 생각은 아득하구나.


목은 이색(李穡)의 묘


동한혁세출유종(東韓赫世出儒宗) 우리나라 빛나는 시대에 유종으로 태어나

사책천조독보웅(射策天朝獨步雄) 과거 급제하여 원나라에 독보적인 존재였지.

명아구왕고막의(名亞歐王高莫擬) 명성은 구양수와 왕안석에 버금가 맞설 자가 없고

재여반육호무궁(才如潘陸浩無窮) 재주는 반악과 육기같이 넓어서 끝이 없구나.

일시도리영대각(一時桃李盈臺閣) 한 시대의 뛰어난 문인들은 조정에서 벼슬하고

백세운잉수묘궁(百世雲仍守廟宮) 백세의 후손들이 묘궁을 지키고 있구나.

낙일공산무한의(落日空山無限意) 공산에 해지고 생각은 끝없는데

마사고갈앙고풍(摩挲碣仰高風) 옛 비석을 어루만지며 높으신 풍모를 추앙한다.

 

*영모암(永慕庵) :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우

*반악(潘岳,247~300) : 중국 서진시대의 시인 겸 문인, 철저한 기교주의자

*육기(陸機,260~303) : 중국 서진시대의 문인, 화려한 시풍의 선구자


효정사(孝靖祠)

이 효정사에는 이색· 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이자·이개·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아래 이 시는 조위선생이 다녀가고 90여년 뒤인

1583년인 선조16年(癸未) 가을에

한산군수 고경명(韓山郡守 高敬命,1533~1592)이

목은 묘역에 있는 영모암에서 목은의 사적을 들춰보고 남긴 시로써

당시 영모암이 목은 묘 아래에 있었음을 알수있다. 


 계미 초추숙영모암(癸未。抄秋宿永慕庵)  계미년 가을 영모암에 묵으며 문서를 베끼다.

     암재목은묘측서원지방(庵在牧隱墓側書院之傍)  

                                 암자는 목은 묘에 있고 옆으로 서원이 붙어 있네.                              


마읍성서일초암(馬邑城西一草庵마읍성 서쪽 초가 암자 하나

목옹사옥쇄연람(牧翁祠屋鎖煙嵐푸른빛 안개에 잠긴 목옹의 사당

매태회식침비전(莓苔晦蝕侵碑篆) 비갈 전자 이끼에 조금 씩 침식 되고

등화청형조불감(燈火靑熒照佛龕) 청동 등촉 불빛 감실 불상 비추네.

해외문장공자애(海外文章空自愛) 해외까지 아끼고 따르던 문장 막혔으나

세간심사유수탐(世間心事有誰探) 세간에선 섬긴 그 마음 더듬어 찾고 있네.

유인몽파추창서(幽人夢罷秋窓曙) 멀어진 사람 돌아가는 꿈 깨지고 창 밝아오는 가을

산목소소우만담(山木蕭蕭雨滿潭) 산에 나무 쓸쓸하게 흔들리고 비에 못물 넘치네.



문헌서원 홍살문


문헌서원은 충남 서천 기산면 영모리

기린산 기슭 이색의 묘 바로 아래에 있는 서원으로

1594년(선조 27)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곡(李穀)과 이색(李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한산 고촌으로 이건, 복원하여

1611년 ‘文獻(문헌)’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이종학(李鍾學)·이개(李塏)·이자(李耔)를 추가 배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어

그 자리에 설단(設壇)하고 분향하여왔다.


그 뒤 1969년 지방유림이 복원하여 이종덕(李種德)을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2층 누각으로 된 6칸의 강당,

4칸의 진수당(進修堂), 3칸의 목은영당(牧隱影堂), 5칸의 재실(齋室),

3칸의 전사청(典祀廳), 3칸의 수호사(守護舍),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이색 신도비·이종덕 효행비각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색·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이자·이개·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인 진수당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다.

매년 3월 중정(中丁)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8변(籩) 8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 임야 6,000여 평과 목은영당 대지 1,500여 평 등이 있다.


문헌서원 외삼문인 진수문(進修門)


문헌서원 강학당과 동.서재


강학당인 진수당(進修堂)


문헌서원(文獻書院)편액과 진수당 강학당 마루


사당 내삼문인 경현문(景賢門)


사당인 효정사(孝靖祠)

-이색·이곡을 주벽(主壁)으로 이종학·이자·이개·이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륜당(講倫堂)


영모재(永慕齋) 


목은 이색선생 신도비


목은 이색선생 영당 출입문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堂)

-목은선생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곳-


목은 이색(李穡,1328년∼ 1396년)선생의 묘

-목은 선생은 1328년 경북 영덕군 영해읍 괴시리에서 태어나

1396년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 사망했으며,

묘는 충남 서천 기산면 기린산 아래에 있다


목은이색선조상(牧隱李穡先祖像)

이색선생은 고려후기의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성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서 고려의 멸망과 함께 은둔하였다.

저서로 “목은문고(牧隱文藁)”, “목은시고(牧隱詩藁)”

 대표작으로 <부벽루>, <독두시> 등이 있다.
이색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으로 일컬어진다.

과거에 급제한 후 원나라에 가서 성리학을 연구하다가,

귀국해서 고려의 대신이 되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년) 때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아들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 하였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유배되었다.

조선 개국 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1395년 그를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으나

이를 사양하고 이듬해 여강(驪江)으로 가던 중 죽었다.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 뛰어난 제자들을 배출하여

학문과 정치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색의 묘 바로 아래는 이종선(1368~1438)의 묘로

이종선(李種善)의 자는 경부(慶夫). 할아버지는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 이곡(李穀)이고,

아버지는 이색(李穡)이며, 어머니는 명위장군(明威將軍) 권중달(權仲達)의 딸이다.

권근(權近)의 사위이며 벼슬은 좌랑, 정랑, 수령, 호조참의, 인수부윤,

한성부윤, 함길도관찰사, 판한성부사, 중추원사등을 지냈다


문헌서원 전경, 왼쪽 기린산 기슭에 이색의 묘가 있다.


가목관(稼牧館) -교육관-


장판각


비림


서원 앞의 연못


서천 신성리 철새 


서천 신성리 갈대밭

서천 금강하구언 일몰


서천에서 이목은 시에 차운하다(舒川次李牧隱韻)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은귀하일반조단(恩歸何日返朝端) 어느 날에 다시 조정에 돌아갈까 생각하니

두각소소양빈한(斗覺蕭蕭兩鬂寒) 갑자기 소소하게 양쪽 귀밑머리가 싸늘함을 느낀다.

풍설개하미원몽(風雪開河迷遠夢) 눈보라 걷힌 강은 꿈속같이 아득히 멀고

연운도서입하관(烟雲島嶼入遐觀) 구름 안개에 쌓인 섬들은 까마득히 보인다.


성임대야금회활(城臨大野襟懷豁) 성 밖 큰 들에 이르니 가슴속이 탁 트이고

지근창명비예관(地近滄溟睥睨寬) 가까운 창해에 이르니 시야가 넓어진다.

욕화목옹시사군(欲和牧翁詩思窘) 목은의 시에 화운하고자 하나 시상이 궁색하여

고소화촉의난간(高燒畵燭倚欄干) 높이 화촉을 돋우고 난간에 기댄다.


*이목은(李牧隱) : 이색(李穡,1328~1396)의 호


서천 금강하구언 가창오리 군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