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계 조위선생은 1498년(연산군 4년) 2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되고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4월에 연경으로 출발하는데, 동생인 신(伸)이 수행하였다.
‘연행록(燕行錄)’에 조위선생의 "의주 취승정" 시가 실린 것으로 보아
압록강을 건너기 전 의주 취승정에 들러 이 시를 남긴것으로 보인다.
의주 들판
의주 남문
의주 취승정(義州 取勝亭)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웅장한 군진은 예로부터 장엄한 변경 雄藩自昔壯邊陲(웅번자석장변수)
새로 지은 취승정은 푸른 산기운을 마주하고 있네. 新搆華亭對翠微(신구화정대취미)
외딴 변경에 피어나는 연기가 취한 눈에 엉기고 絶域雲煙來醉眼(절역운연래취안)
성에 핀 꽃과 버들은 맑게 빛나 아름답구나. 層城花柳媚晴暉(층성화류미청휘)
광야를 에워싼 산은 그림처럼 푸르고 山圍廣野靑如畫(산위광야청여화)
비 개인 긴 강에는 푸르름이 점점 진해져 간다. 雨過長江綠漸肥(우과장강록점비)
정자에 올라 멀리 바라보며 견디기 어려운 것은 叵耐登臨還望遠(파내등림환망원)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밤낮없이 남으로 날아간다. 歸心日夜正南飛(귀심일야정남비)
의주 취승정
취승정은 조선 성종(成宗) 때
평안도 의주(義州)의 객관(客館) 동쪽에 건립된 누정으로.
1494년(성종 25)에 의주 목사(義州牧使) 구겸(具謙)이 세우고,
홍귀달(洪貴達)이 기문(記文)을 썼다
압록강 위화도
5월에 압록강을 건너서 6월 8일 북경에 도착하였는데.
7월에 유자광(柳子光)이, 점필재가 지은 조의제문 (弔義帝文)이
반역을 꾀할 뜻이 있다하여 연산군을 부추켜 사옥(史獄)을 일으켰다.
이때 점필재를 대역죄인으로 논죄하여 즉시 부관참시하고,
김일손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명령하니, 한 시대의 명사들이 모두 화를 입었다.
선생은 8월 26일 성절사 임무를 마치고 다시 압록강에 도착하였는데,
김종직의 시고(詩稿)를 수찬(修撰)한 장본인이라하여
9월 9일 서울에 들어와 하옥되었고, 같은 달 17일에 죄가 판결이 났으며,
같은 달 20일 평안도 의주로 귀양을 가게된다
조위선생이 유배지인 의주로 떠나면서(1498년) 형제들에게 남긴시와
의주에 있을 때 삭풍이 몰아치는 한 겨울에 찾아온 두 형들과의 애틋한 만남과
눈물로 작별하는 안타까움을 읊은 시, 또 "의주 통군정" 등의 시를 음미해본다.
의주 가는 길에 형제를 생각하며(義州途中憶昆季)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두 형님은 모두 영남 땅에 계시고 兩兄俱嶺外(양형구령외)
한 아우는 한양 땅에 있다. 一弟在京師(일제재경사)
만남과 헤어짐이 꿈만 같은데 聚散渾如夢(취산혼여몽)
다시 우리 만남은 어느 때려나? 團圓復幾時(단원복기시)
재회의 기쁨을 길이 점지하고자 長占鳥鵲喜(장점조작희)
부질없이 척령장만 읊조린다. 空咏鶺鴒詩(공영척영시)
가도 가도 고향 땅은 멀기만 해 去去關山遠(거거관산원)
머리를 돌려도 이렇게 슬프기만 하구나. 回頭祗自悲(회두지자비)
두 형님은 조윤(曺倫,자는 백이伯彝,1448년생)과 조전(曺佺,자는 자진子眞,1451년생)이며
한 아우란 조신(曺伸,자는 숙분叔奮,호는 적암適庵,1454.8.15일생)을 말하는데
세분 모두 서형과 서아우이다. 참고로 조위(曺偉)선생은 1454.7.10일생으로
조신과는 불과 25일 차이밖에 없어 항상 붙어 다니다시피 친하게 지냈다.
조신은 시문은 물론 중국어,일본어까지 능통하여 통역관으로 일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드물게 서출 출신으로서 당상관 벼슬까지 올랐다.
*척령장(鶺鴒章) : 시경 소아에 “할미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한
일이 있는가?“ 라고 하여 형제간의 우애를 읊은 것이다.
동파의 운을 써서 백이(윤), 자진(전) 두 서형을 전송하며
-用東坡韻送伯彛(倫)子眞(佺)兩庶兄-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살을 에는 광풍이 갓과 외투를 파고들고 剪剪狂風徹冕裘(전전광풍철면구)
한없이 내리는 섣달의 눈은 숲 언덕을 뒤 덮는다. 崩騰臘雪滿林丘(붕등납설만림구)
기구한 이내 신세 끝없이 산길 따라 걷는데 崎嶇款殷山中路(기구관은산중로)
아득히 먼 영원은 바닷가 마을이라네. 超遞鴒原海上州(초체영원해상주)
두 형은 *조윤(曺倫,자는 백이,伯彝,1448년생)과
조전(曺佺,자는 자진, 子眞,1451년생)
천리 머나 먼 길 어찌 차마 헤어지기 어려워 千里團欒那忍別(천리단란나인별)
한 통 술로 해우하며 머문다. 一樽邂逅且相留(일준해후차상유)
영빈의 파노가 되자던 당시의 약속 潁濱坡老當時約(영빈파노당시약)
늙은 몸 조만간 청산에서 쉬리라. 黃髮靑山早晩休(황발청산조만휴)
*동파(東坡) : 송나라 때 시인 소식의 자(소동파)
*영원(鴒原) : 시경 소아에서 고향을 비유함.
*파노(坡老) : 송나라의 문장가인 소동파를 이르는 말, 또는 파선
상고대
의주 통군정
-통군정은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으로 관서팔경의 하나인데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와 함께 북한의 3대 정자로 꼽힌다.
1000여 년 전에 세워졌으며 고구려 당시는 주요한 군사지휘처로 사용되었으며
북한은 준국보(보물) 11호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매계 조위선생은 이 통군정에서 4수나 되는 장문의 시를 남겼는데
언제 지은 시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의주에서 1년 8개월정도 있다가 1500년 5월에 순천으로 이배 되었으므로
아마도 의주로 유배되었을 초기에 읊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왜냐하면 시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그렇게 경쾌하지가 않을 뿐더러
첮 구절에서 "붉게 칠한 난간에 온 종일 기대어 있다"는 것과
"우주 끝까지 일편단심"이라는 임금을 향한 지극한 마음 표현,
그리고 조조를 도와 여포를 죽이는데 공을 세워 북파장군이 된 진등(陳登)을 언급하고,
또 말미에서는 중국 고사를 인용하여 "책략과 문치에 젖은 사람들을 믿지말라"는
은근한 내용 등을 살펴볼 때, 그냥 정자를 유유자적하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쓴 내용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청계 정종요작 통군정(1957)
의주 통군정(義州 統軍亭 ) 4首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백길 높은 성은 하늘 위로 솟아 있고 百雉層城逈(백치층성향)
붉게 칠한 난간에 온종일 기대어 있다. 朱欄盡日憑(주난진일빙)
변방의 성은 호표처럼 삼엄하고 塞垣嚴虎豹(색원엄호표)
저 멀리 바다로 곤붕이 펼치는구나. 溟海轉鵾鵬(명해전곤붕)
지세는 서남쪽으로 트여있고 地勢西南坼(지세서남탁)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天容上下澄(천용상하징)
배회하여 끝없이 생기는 의기 徘徊無限意(배회무한의)
호기는 진등보다 배가 되는구나. 豪氣倍陳登(호기배진등)
*진등(陳登) : 후한 말 때 조조의 부장으로 여포를 죽이는데
공로가 커서 북파장군이 되었다.
중국쪽에서 본 통군정(펌)
마자령 분기점은 멀기만 하고 馬訾分壃遠(마자분강원)
용만 땅 옛 변경은 쓸쓸하구나. 龍灣古塞空(용만고색공)
강물은 금대처럼 굳게 하였고 江爲襟帶固(강위금대고)
지세는 한병처럼 웅장하구나. 地作翰屛雄(지작한병웅)
삼도는 논밭 너머에 있고 三島耕犁外(삼도경리외)
고성은 마을 한가운데 펼쳐 있다. 孤城聚落中(고성취락중)
저물녘에 오래도록 휘파람 불며 서 있는데 晩來長嘯立(만래장소립)
석양은 강물을 붉게 물들인다. 斜日滿江紅(사일만강홍)
*마자령(馬訾嶺) : 압록강의 별칭. *금대(襟翰) : 산천에 둘린 요해지
*한병(屛帶) : 지세가 높고 깎은 듯이 험준한 모양
*삼도(三島) : 압록강 서쪽과 적강 동쪽에 있는 섬으로
장자도, 원직도, 위화도를 말함
통군정봐도 한 막힘이
사방을 돌아봐도 한 점 막힘이 없고 四顧都無擬(사고도무의)
끝없이 만상만 분주하고나. 茫茫萬象奔(망망만상분)
일편단심은 우주 끝까지 다하여 丹心窮宇宙(단심궁우주)
두 눈엔 하늘땅이 좁아 보인다. 兩眼隘乾坤(양안애건곤)
저녁노을에 강 빛이 출렁이고 日落江光動(일락강광동)
안개 걷힌 바다는 해기가 짙구나. 烟消海氣昏(연소해기혼)
장군은 오늘날의 극곡이라 將軍今郤穀(장군금극곡)
국경 서쪽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鎖錀國西門(쇄륜국서문)
*극곡(郤穀) : 춘추시대 진나라 사람, 예악과 시서에 조예가 깊었다.
의주 삼차도(펌)
형승은 예전부터 으뜸 形勝由來獨(형승유래독)
금성탕지로 만고에 알려졌다. 金湯萬古聞(금탕만고문)
군영의 울타리엔 예전의 달이 걸려있고 儲胥臨古月(저서임고월)
성벽의 낮은 담엔 찬 구름이 잠겨있다. 睥睨鎖寒雲(비예쇄한운)
나팔소리에 병사의 함성은 웅장하고 鼓角軍聲壯(고각군성장)
산과 강의 경계는 분명하다. 山河境界分(산하경계분)
무재를 조정의 책략에 보태니 止戈資廟略(지과자묘락)
오랫동안 문치에 젖은 사람들만 믿지 말라. 莫倚久修文(막의구수문)
의주 금광천
* 다음의 시는 매계선생이 의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종제(從弟)인 척(倜, 자는 존신存愼)이 존신문여종군고운((存愼問余從軍故云)
즉 "나에게 종군이라도 해서 죄를 가볍게 하고 싶은 의향은 없느냐?" 라는
편지에 대하여 지난날들을 회고하면서 당부의 말과 함께 안부도 물어보는
다소 복잡한 심경을 담아 답장한 내용이다
종제인 존신에게 주다(寄贈從弟存愼)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분주한 서울거리에서 세상살이를 구경하고 奔走京塵閱歲華(분주경진열세화)
벼슬살이는 고향에서 또 자랑할 만하다. 宦遊鄕國亦堪誇(환유향국역감과)
오랫동안 어사대에서 청총마를 탓고 久爲柏府乘驄客(구위백부승총객)
함녕 땅에선 고을 가득 핀 꽃을 구경했었지. 來看咸寧滿縣花(래간함녕만현화)
오마타고 돌아갈 길 재촉하니 뽕나무가 뒤흔들리고 五馬催歸桑榟勳(오마최귀상재훈)
쌍어를 새로 차니 마을 사람들이 감탄한다. 雙魚新佩里閭嗟(쌍어신패이여차)
임금의 큰 은혜로 한 집안이 등 따습고 배부르니 一家暖飽君恩重(일가난포군은중)
관복입고 제멋대로 관아를 벗어나지는 말게나. 莫擁黃紬放早衙(막옹황주방조아)
탁월하고 노련하다는 명성 오랜 세월 전해오니 卓老聲名萬古傳(탁노성명만고전)
뒷날 계승할 자 가운데 현자는 몇이나 되겠는가? 後來繼者幾多賢(후래계자기다현)
잘못된 경영 시속의 명예를 따르면 어찌 병폐가 없으리. 曲營時譽寧無病(곡영시예녕무병)
침략을 즐기는 강한 종족도 온전하기 드물다네. 喜擊强宗亦罕全(희격강종역한전)
백성을 어루만지기를 힘쓰며 선치를 생각하고 努力拊循思製金(노력부순사제금)
사랑과 용서를 마음에 두고 형벌을 경계하게나. 存心仁恕戒烹鮮(존심인서계팽선)
어느 때 금각에서 현송을 들어 보리 何時琴閣聞絃誦( 하시금각문현송)
매번 서당을 향할 때면 아우를 꿈꾼다오. 每向西堂夢惠連(매향서당몽혜연)
병든 몸 더욱 수척해가고 病骨崢嶸庾十分(병골쟁영유십분)
귀밑머리 윤기 잃고 흰빛으로 어지럽다. 鬢毛衰颯白紛紛(빈모쇠삽백분분)
나그네 수심은 용만의 달빛에 괴롭고 羈懷正苦龍灣月(기회정고용만월)
고향 돌아가는 꿈에 자주 조령을 넘는 구름을 본다. 歸夢頻過鳥嶺雲(귀몽빈과조령운)
젊은 날엔 대궐에서 사초를 보았는데 少日金鑾曾視草(소일금란증시초)
늙어감에 철마타고 종군하고 싶다네. 老來鐵馬欲從軍(노래철마욕종군)
고향소식은 지금 어떠한가? 故園消息今何似(고원소식금하사)
매형과 죽군에게 안부라도 물어주게. 爲問梅兄與竹君(위문매형여죽군)
*함녕(咸寧) : 지금의 상주 함창 *쌍어(雙魚) : 관리들이 차는 고기모양의 어패
서당(西堂) : 동진의 시인 사령운의 서실로,
여기서는 족제인 사혜련을 대하면 좋은 시구를 얻었다고 함
*용만(龍灣) : 평안북도 신의주로 매계선생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귀양 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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