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계 조위선생이 1480년대초 평양을 들렀을때 을밀대와 부벽루, 영명사 등
여러 명승지들을 둘러보며 감흥을 시로 남겼는데 그때를 그려보고 음미해본다. .
을밀대(乙密臺)
-을밀대는 평양의 대동강과 보통강이 만나는 지점의 금수산(錦繡山)
산마루에 있는 고구려시대의 누정으로 을밀봉에 있다고 을밀대라 한다.
을밀대 봄놀이(密臺賞春)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금수산에 높이 솟은 을밀대 荒臺峨峨錦繡山(황대아아금수산)
깎아지른 절벽 위 강가에 있다. 斷崖斗絶臨江灣(단애두절임강만)
하룻밤 동풍에 꽃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一夜東風花似錦(일야동풍화사금)
안개와 풀빛도 온통 봄빛이구나. 烟光草色春斑斑(연광초색춘반반)
세월은 빠르기가 나는 새와 같아도 流光鼎鼎如飛鳥(유광정정여비조)
온 천지의 밝은 봄 참으로 좋구나. 滿眼韶華十分好(만안소화십분호)
내일 술병 들고 다시 찾아오련만 明朝携酒擬重尋(명조휴주의중심)
밤사이에 꽃이 지고 봄이 갈까 조바심 든다. 却恐花殘春已老(각공화잔춘이노)
부벽루
-부벽루(浮碧樓)는 평양 금수산 동쪽 청류벽에 있는 누각으로
원래 이름은 영명루이며 392년에 세운 영명사의 부속 건물이었다.
부벽루의 달맞이(浮碧玩月)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허공에 붉은 무지개처럼 높이 솟은 부벽루 半空高棟翔紅霓(반공고동상홍예)
굽어보니 넓은 들과 못 산들이 나직이 깔려있다. 俯瞰大野群山低(부감대야군산저)
난간에 기대자마자 바로 달이 솟아오르고 憑欄正値柱輪上(빙간정치주륜상)
빛에 반사된 강물은 만 이랑의 푸른 구슬인 듯 倒浸萬頃靑玻瓈(도침만경청파려)
하늘엔 밝은 달, 누대 아래엔 넘실넘실 푸른 물결 空明上下瀁寒碧(공명상하양한벽)
갈대꽃 하얗게 핀 사이로 금물결이 반짝인다. 金影閃閃蘆花白(금영섬섬노화백)
밤이 깊어 밤이슬 차게 내려도 夜深不禁風露寒(야심불금풍로한)
다시 비선을 불러 날라리를 불게 한다. 更喚吹鐵笛(갱환비선취철적)
*비선(飛仙) : 날아다니는 신선
-고려말 충신인 목은 이색이 부벽루에서 읊은 시도 감상해본다-
부벽루(浮碧樓)
이색(李穡: 1328~1396)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성은 텅 빈 채로 달 한 조각 떠 있고 城空月一片 (성공월일편)
오래된 조천석 위에 천 년의 구름 흐르네. 石老雲千秋 (석로운천추)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는데 麟馬去不返 (인마거불반)
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天孫何處遊 (천손하처유)
돌다리에 기대어 휘파람 부노라니 長嘯倚風? (장소의풍등)
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이 한시는 이색(李穡: 1328~1396)이 인간 역사의 유한함과
자연의 영원함을 대조적으로 표현하여 지난 날의 찬란한 역사를 회고하며
그와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에서 인생 무상에 젖어 읊은 것이다.
그는 고려 말의 문신· 학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정방 폐지, 3년상을 제도화하고,
우왕의 사부로, 김구용, 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으며 위화도 회군 후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고, 조선 태조가 한산백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부벽루
영명사(永明寺)는 평양 금수산(錦繡山)에 위치한 절인데
부벽루가 원래 영명사의 부속 건물이었다고 하니 부벽루 인근 어디쯤일 것이다.
영명사는 고구려 때 세워져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평양의 대표적 사찰로.
조선 세종대에 선·교 양종의 교종 18개사에 들어갔고
조선후기를 거쳐 근대기까지 이어져왔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 항목에서는 평양 금수산 정상의 을밀대(乙密臺) 아래에
부벽루(浮碧樓)가 있고 그 옆에 영명사가 위치한다고 설명하였다.
또 영명사를 일컬어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구제궁(九梯宮)으로 소개하면서,
동명왕이 기린을 타고 나왔다는 기린굴(麒麟窟)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영명사는 조선후기에도 몇 차례 중수를 거쳤고 1894년에 발발한 청일전쟁 때 불에 탔다.
재건 후에는 일제시대 31본산의 하나로서 평안남도 지역 16개 말사를 총괄하는 등
사찰의 위상을 되찾았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
절터에 팔각석불감과 5층석탑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영명사 중을 찾아(永明尋僧)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강 구름은 칠흑같이 어두운데 江雲黯黯如抹漆(강운암암여말칠)
온 천지에 눈이 내려 무릎까지 묻힌다. 雪花滿地深沒膝(설화만지심몰슬)
새벽에 말 타고 장경문을 나서니 騎驢曉出長慶門(기려효출장경문)
자갈길이 미끄러워 나귀는 자주 넘어질 듯 石噔路滑驢頻叱(석등노골려빈질)
영명사 중은 아직도 대문을 열어놓지 않았는데 古寺居僧尙掩扃(고사거승상엄경)
담장 너머로 다연만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隔墻苒苒茶烟靑(격장염염다연청)
스님 불러 담소하며 함께 우엉을 구우며 呼僧談笑共煨竿(호승담소공외간)
한참을 앉아 있으니 바람결에 풍경소리가 들린다. 坐久風來聞塔鈴(좌구풍래문탑령)
*장경문(長慶門) : 평양성 동쪽에 있는 문
'뿌리와 예의범절 > 梅溪 曺偉 先生'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47)가정의 시에 차운하여 부여를 회고하다 (0) | 2020.02.24 |
---|---|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46)보통문에서 손님을 전송하며 (0) | 2020.02.21 |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44)임진 (0) | 2020.02.16 |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43)호남으로 떠나며 함께 온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다 (0) | 2020.02.13 |
매계 조위선생의 발자취를 찾아서~(42)황학루 그림족자 (0) | 2020.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