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화랑(본명 조광환 曺曠煥,1921∼1983)의 생가가
2020년 3월 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75호로 지정됐다.
김천 봉계마을의 나화랑 생가는 광복 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가수, 작곡가 나화랑(본명 조광환)과 작사가 고려성(본명 조경환,曺景煥)
형제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과거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또한 동시대 음악가 중 월북자나 친일 인사 등을 제외한 32명을 가려
그중 나화랑 업적에 견줄 만한 사람으로 고복수, 이난영, 현인, 김교성, 김부해,
김서정, 김화영, 손석우, 왕평, 이시우, 조춘영, 형석기 등 12명을 선정하였으나
활동했던 음악가의 생가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라 현존하는 생가가 지닌
희소성, 상징성과 음악사적, 지역사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등록문화재로 선정되었다.
나화랑(1921~1983)은 열아홉 순정, 무너진 사랑탑, 늴리리 맘보 등
생애 500여편의 가요를 남기고 수많은 음반을 양산하여
한국 대중가요 보급과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고 인정되었다.
나화랑은 광복 후 KBS경음악단 지휘자로도 활동한 바 있는데,
그가 태어나고 자란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봉계마을)의 나화랑생가는
1801년 건축한 안채 108㎡, 사랑채 138㎡, 창고 40㎡로 구성되어있다.
나화랑의 본명은 조광환(曺曠煥)으로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출신의 작곡가, 연주자, 편곡자, 가요 비평가, 음반 제작자이다.
1921년 1월 25일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인의동 722번지에서 태어났다.
. 1935년 김천 봉계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김천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학교 브라스밴드 악장으로 활약하였다. 1940년 김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중앙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였다.
맏형 고려성(본명 조경환)의 영향을 입은 그는 1940년 8월
제1회 레코드예술상에 응모하여 입상, 당시 태평레코드사 문예부장
박영호로부터 나화랑이란 예명을 받으며 가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내 가수 활동을 단념하고, 1942년 8월 가요 "삼각산 손님"
(고려성 작사)을 작곡하여 발표하면서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8·15 해방 후 김천여자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근무하면서
"봉계초등학교 교가"(정재란 작사, 1945년), "김천서부초등학교 교가"
(김상태 작사, 1947년)를 작곡하여 헌정하기도 하였다.
6·25전쟁중인 1952년에는 육군본부 군예대 악단장,
1954년에는 공군 정훈음악대에서 군가 작곡 및 지휘자로 활동했다.
1954년 12월 킹스타레코드사 전속 작곡가 겸 문예부장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그때까지 산만하게 전승되던 민요를 체계적으로 편곡하여 많은 민요집을
제작한 후 우리나라 최초의 민요 LP판을 보급하는 한편으로 상당수의 신민요와
민요풍의 가요를 남겼다. 특히 서양의 맘보 리듬을 최초로 한국 가요에 도입하고
스윙과 탱고, 블루스 등의 리듬을 우리 대중가요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1956년 KBS 서울중앙방송국 경음악단 상임지휘자를 맡았으며, 대한레코드작가협회
창립 멤버로서 연주 및 가요 비평, 건전 가요 저작에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1962년에는 라미라레코드사를 창설하여 직접 음반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는데,
이 무렵 손석우· 황문평· 전오승· 김인배 ·송민영 등과 한국방송작가그룹을
결성하여 밝고 건전한 가요 보급에 힘썼다.
1975년에 작곡한 "멸공의 횃불" (서정포 작사, 국방부 제정)은
지금도 군부대에서 불릴 정도로 국민가요로 꼽힌다.
가수 발굴과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여서 송민도, 남일해, 이미자,
도미, 박재란, 김상희, 명국환 등을 유명 가수의 반열에 데뷔
또는 등극시키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요 보급에 앞장섰다.
나화랑(본명 조광환생가, 2024.7.8)
나화랑생가는 원래 황산댁(黃山宅)인데, 황산댁의 택호인 황산은
조광한의 5대조인 조한규(曺翰奎,1804~1864)의 부인인 거창신씨로
친정이 거창 위천 황산마을 거창신씨 집성촌인데서 연유되었다.
사랑채
사랑채 대들보에 상원오십팔년 신유팔월십삼일미시 입주상량
(上元五十八年 辛酉八月十參日未時 立株上梁)이라 되어있어
1801년(순조1) 나화랑(본명 조광환,曺曠煥 ) 6대조인 이조참의
조언명(曺彦明,1768~1835)이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
참고로 나화랑(본명 조광환)의 6대조는 조언명(曺彦明)이고,
5대조가 한규(翰奎), 고조는 진호(鎭昊), 증조는 학영(學永),
조부는 우승(祐承), 부는 병철(秉徹)이며 조경환(고려성)은 맏형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
기옥의 현소유주인 조상환은 조광환의 가족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게 되자,
조상환의 조부이신 조홍승씨가 본인의 증조부가 건축한 건물을 인수하였다.
조상환은 한규(翰奎)의 같은 5대손(동고조)으로 조광환과는 10촌(村)간이 된다.
우물
가옥은 문간채와 사랑채, 안채, 곳간채로 이루어졌으며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짓는 내외문이 별도로 나있으며,
안채에서 텃밭으로 연결되는 쪽문이 남아있는것이 특징이다.
특히 600석의 쌀을 저장했다는 곳간채는 김천지역 고택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서 대대로 천석꾼으로 불린
이 집안의 재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KBS에서는 2021년 4월 19일(월) 방영한 가요무대 1698회에서
작곡가 나화랑편을 편성하여, 나화랑이 발굴한 가수 김상희를 비롯하여 주현미,
장보윤, 류지광, 김혜연, 안다성, 유지나, 마이진, 우연이, 한강, 염수연, 해수, 주현미,
신미래, 남일해 등 15명이 출연하여 나화랑(본명 조광환)이 직곡한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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