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례는 김천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면소재지이다.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현이었으며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동쪽으로 성주의 경계까지 13리, 서쪽은 무주현의 경계까지 38리,
남쪽은 거창군 경계까지 46리, 북쪽은 금산군 경계까지 15리,
서울과의 거리는 624리다. 로 되어있다.
이곳은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이나 대전등지에서
거창이나 함양 진주 방면으로 오가려면
반드시 김천을 지나 이곳 지례를 거쳐 가야만하는 길목이었다.
지금은 향교만 남아있어 과거의 형세를 말해줄 뿐
객사의 자리는 흔적조차 없는데, 아마도 향교 아래쪽 어디쯤일텐데...
선비들이 오가던 그 길은 흑돼지골목길이 되어 유명세를 타고있다.
매계 조위선생은 1475년 봄과 꼭 20년뒤인 1495년에
이곳 지례객관을 지나면서 세편의 시를 남겼다.
지례객관 -知禮客館 三首(幷書)
매계 조위(梅溪 曺偉,1454~1503)
귀성장하(龜城墻下) 귀성의 담장아래에
유고매이수(有古梅二樹) 늙은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매세성개(每歲盛開) 해마다 꽃을 활짝 피운다.
을미춘(乙未春) 을미년(1475년,성종 6년) 봄에
여과기현(余過其縣) 내가 그 현을 지나다가
작일절(作一絶) 절구 한 수를 지었으며,
기동, 우부이절(其冬, 又賦二絶) 그 해 겨울 또 절구 두 수를 지었다.
을묘세, 중과(乙卯歲, 重過) 을묘년(1495년, 연산군 1년)에 또 지나는데
관우개구 벽기동장(館宇改構 闢其東墻) 관청을 개수하여 그 동쪽 담을 헐어
매재정중(梅在庭中) 매화는 마당 가운데 있게 되었고
부소이합포의(扶踈已合抱矣) 무성하게 자라 한 아름이나 되어 있었다.
부앙이십재(俯仰二十載) 20여 년이 지났지만
물색의연(物色依然) 물색이 의연함을 생각하며
주저감염자구지(躊躇感念者久之) 서성이며 감상하기를 오래하였다.
야우생한수옥기(夜雨生寒瘦玉肌) 지난밤 비에 한기가 들어 옥 같은 꽃잎이 시들어
평명요수만장지(平明繞樹挽長枝) 날이 밝자 나무를 감싸며 긴 가지를 끌어 당겨본다.
여금역사무소식(如今驛使無消息) 지금은 파발사자가 온다는 소식이 없으니
종유한향기여유(縱有寒香寄與誰) 비록 한향이 있은들 누구에게 전해주겠는가?
설판빙유미방개(雪瓣氷㽔未放開) 백설같은 꽃잎, 얼음같은 꽃술 아직 열리지 않았는데
사아직간고장외(槎牙直幹古墻隈) 삭정이로 변한 곧은 가지가 무너진 담 모퉁이로 뻗어있다.
반조욕문춘소식(攀條欲問春消息) 한 가지 휘어잡고 봄소식 묻고자 하지만
소살유랑금독래(笑殺劉郞今獨來) 지금 유량이 혼자 온 것을 비웃겠지.
*유랑(劉郞) ~ 당나라 유우석 시인의 시에 자신(曺偉)을 비유하여 가리킴.
옥예찬지족강사(玉蘂攢枝簇絳紗) 옥 같은 꽃송이 비단을 매달아 놓은 듯
동풍응시영년화(東風應是領年華) 봄바람은 분명 한 해의 꽃소식을 관장하니
정녕금세강남신(丁寧今歲江南信) 정녕 올해에도 강남의 소식 있을 것이니
일반귀심이도가(一半歸心已到家)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이미 절반은 집에 이르렀다오.
지례객관에서
숙분 조신(叔奮 曺伸, 매계선생의 동생)
본래 먼 고야(姑耶) 선녀의 곱다란 살갗이니
평범한 풀이나 속된 꽃가지와 같을리 없다.
이 열매가 음식의 맛을 고르는 것은 전부터 알았으나
비바람에 시들어 떨어진다고 어느 누구를 원망할까?
천겹깊이 감춘 재주 반도 피지 못하고
거칠고 더러운 곳에 몸을 던져 정자 모퉁이에 피해있구나.
꽃다운 넋은 봄빛 가득하기를 기다릴수 있으나
옥 같은 자질은 불러 일으킬 방법 없구나.
늙은 눈이 몽롱하여 엷은 깁을 격해 보는것 같으니
어찌 서울의 화려한 곳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밟을 수 있으리.
공의 시구를 매계(梅溪)위에서 외니
고산처사(孤山處士)의 집에 있는것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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