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계 조위선생이 36세가 되던 1489년(성종20년) 2월
함양군수로 재직한지 6년째 되는 해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임금께서 부의로 쌀과 콩, 기름, 꿀 등을 하사하였다.
5월에 황간현(현 김천시 대항면)마암산 자좌(子坐)의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
1493년(성종24년) 6월,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임명되었다.
8월에 정조사(正朝使)로 임명되었으나, 어버이가 연로함을 이유로 장계를 올려
관직을 내놓고 물러나서, 어머니의 수연(壽宴)을 베풀고 금산(김천)으로 돌아와 살았다.
9월에 선영에 분황제(焚黃祭)를 올렸으며, 아버지의 묘 앞에 표석을 세우고,
비석의 뒤에 관력과 생년월일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선고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통훈대부 울진현령 부군 묘표
(先考 贈嘉善大夫 吏曹參判 行通訓大夫 蔚珍縣令 府君墓表)
돌아가신 아버지의 휘는 계문이고, 자는 윤부(덕)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先公諱繼門, 字胤父, 昌寧人)
선고의 증조는 정순대부판전의사사를 역임하고 문하좌시중에 추증된 우희이고,
(曾祖, 正順大夫判典儀寺事 贈門下左侍中諱遇禧)
할아버지는 봉익대부 밀직사사를 역임한 경수이며,
(祖, 奉翊大夫密直司使諱敬修)
아버지는 통정대부 병조참의로 추증된 심이며,
(考, 贈通政大夫兵曹參議諱深)
어머니는 숙부인 서산정씨로 영락 갑오년(1414년, 태종14년)에 공을 낳았다.
(妣淑夫人, 瑞山鄭氏, 永樂甲午生公)
공은 삼군진무, 전농주부, 사헌감찰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가
(歷官三軍鎭撫 典農主簿, 司憲監察)
현풍과 울진 두 고을의 군수를 역임하여 품계가 통훈대부에 올랐다.
(宰玄風 蔚珍二縣 階通訓)
고향에서 20여년을 여유롭게 보내다가 홍치 기유년(1489년, 성종20년) 2월 무오일에
(優遊鄕里二十餘年, 弘治己酉二月戊午)
금산 봉계리 집에서 돌아가셨는데, 향년 76세였다.
(卒于金山鳳溪里第, 享年七十有六)
계축년(1493년,성종24년) 7월 자식의 일로 가선대부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癸丑七月, 以子恩贈嘉善大夫吏曹參判)
공은 먼저 하빈 이씨를 아내로 맞아 1녀를 낳아 자헌대부 형조판서인
김종직에게 시집을 보냈다.
(公先娶河濱李氏, 生一女, 適資憲大夫刑曹判書金宗直)
후에 문화 류씨에게 장가를 들어 1남 위를 낳았는데, 지금 벼슬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後娶文化柳氏, 生一男偉, 今官至嘉善大夫戶曹參判, )
측실에서 6남 4녀를 낳았는데 첫째 윤은 선략장군, 둘째 전은 효력부위,
(側室生六男四女, 曰倫, 宣略將軍, 曰佺, 效力副尉)
셋째 신은 통덕랑 사역원 주부이며, 큰 딸은 최송수에게 시집갔고,
(曰伸, 通德郞司譯院主簿, 女適崔松壽)
둘째는 김시종에게, 셋째는 최맹선에게 시집을 갔으며, 나머지는 다 어리다.
(次適金諟種, 次適崔孟濬, 餘階幼),
이 해 5월 경신일에 황간현(현 대항면)마암동 자좌 오향의 언덕에 장례를 치렀다.
(是年五月庚申, 葬于黃澗縣馬巖洞子坐午向之原)
매계선생이 42세가 되던 1495년(연산군 1년) 4월,
체직(遞職)하여 한성우윤(漢城右尹)에 임명되어 서울에 도착하자,
대사성(大司成)으로 옮겨졌다. 7월, 금산(김천)으로 돌아오자,
같은 달 23일에 전라감사로 임명되어, 8월에 부임하였는데.
10월에 어머니가 금산(김천 봉계)에서 돌아가셨다.
묘지(墓誌)를 홍 허백(홍귀달)에게 청하여 12월에 마암산
축좌(丑坐)의 언덕에 장례를 치루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선비 정부인 문화류씨 묘표
(先妣 貞夫人 文化柳氏 墓表)
돌아가신 어머니는 문화의 세족으로 고려의 위사공신을 역임한 문정공 경의 후예이다.
(先夫人 文化世族 高麗衛社功臣文正公璥之後)
증조부는 가선대부 한성 윤을 역임한 신이고,
(曾祖諱信, 嘉善大夫漢城尹,
조부는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된 흡이며,
(祖諱洽, 贈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
아버지는 이름이 문으로 행주 기씨에게 장가를 들어 부인을 낳았다.
(考諱汶, 娶幸州奇氏生夫人)
부인은 천성이 어질면서도 숙덕이 있었으며, 이조참판에 추증된 조계문에게
시집을 가서 현재 관직이 전라도관찰사인 큰 아들 위를 낳았다.
(賢而有淑德, 適贈吏曹參判曺公諱繼門, 生一男偉. 今官至全羅道觀察使)
부인은 선덕 정미년(1427년, 세종2년)에 태어나서 향년 69세를 누리셨다.
(夫人生于宣德丁未, 享年六十九)
홍치 을묘년(1495년), 연산군 1년)10월 을묘일에 돌아가셨는데,
(弘治乙卯十月乙卯卒)
자식의 은전으로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以子恩追贈貞夫人)
이 해 12월 황간현(현 대항면) 마암동 동북쪽 언덕의 서남쪽 향에 장사를 지냈다.
(是年十二月, 葬于黃澗縣馬巖洞丑坐未向之原)
김천시는 2001년 대항면 복전리에서 출토된 정부인 문화류씨 묘지명
지석(墓誌銘 誌石)이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392호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묘지의 주인인 정부인 문화 류씨는 울진 현령을 지냈던
조계문(曺繼門)의 부인이자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 선생의 어머니다.
연산군 원년(1495년) 69세로 세상을 떠나자 아들 조위가
어머니의 덕행을 후세에 전하기위해 묘지명(墓誌銘)을
직접 돌에 글씨를 써서 새긴 후 묘소 앞에 묻었다고 전해지며,
지난 2001년 묘소 보수작업 중 상석밑에서 발견돼 창녕 조씨 문장공파
종중에서 보관해오다 지난해(2002년) 9월부터 국립 대구박물관에 보관중이다.
경북도 문화재심의위원회는 "조선시대 묘지석중 돌로 만든 것은
흔치 않으며 제작 연대가 오래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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