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금마면에 소재한 미륵사지는 공주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관북리 유적,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왕궁리 유적등과 함께 8곳이
백제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적 제15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곳은 볼거리가 두가지인데.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으로 국보 제11호이며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다른 하나는 당간지주로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이며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에도 발굴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동탑은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석탑은 전면이 거의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기록을 알수없어 나머지는 후대에
더 밝혀지면 복원하도록 남겨두고 원래 형태대로만 복원하였으며
복원시에 원래의 옛 돌을 62%정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란 사찰에 큰 행사가 있을때 이를 알리기 위해 큰 깃발을 달았으며
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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