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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천 조각환의 나들이 흔적
뿌리와 예의범절/조문 인물과 발자취,묘소

적암 조신(曺伸)선생 ~ 2)수난사

by 안천 조각환 2020. 12. 13.

적암(適菴) 조신(曺伸)선생은 이륜행실도등 많은 저서와 시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형(兄)인 매계(梅溪) 조위(曺偉)선생이 유배를 간 이후에

집안에 닥친 많은 어려움과  고난들, 그리고 죄인의 집안이라

드러내 놓고 불평이나 원망도 하지 못하며 참고 지내야만 했던 수많은 날들,

기록으로도 남길수 없었던 참담하고 애닲은 마음들을 시로 남겼다.

520여년전 우리 선조님들이 겪었던 그 고난의 세월들을 모두 다 알수는

없겠지만 이 시를 통해서 대충이나마 미루어 짐작해보고자 한다.

 

 

1.대풍가(大風歌)

 

    적암(適菴)  조신(曺伸, 1454~1529)

 

큰 바람 불어옴이여! 산 속 나무 부러지네.             

맹수 부르짖음이여! 산 속 돌 찢어지네.                 

남아 태어났으면 명당을 부축하여 바로 세워야지    

성패 어지러움 어찌 족히 말하리오.  

                    

대풍취혜 산수절(大風吹兮 山水折)

맹수후혜 산석열(猛獸吼兮 山石裂)

남아천출 부명당(男兒天出 扶明堂)

성패분분 안족설(成敗紛紛 安足說)

 

 내 빈 산 속에 누우니 가을 이미 깊은데                 

서리 이슬 떨어지려 하니 세월은 빨리 흐르려하네.   

이 몸 어찌 같이 어울리는 무리와 다르리오?           

하늘은 홀로 나에게만 산림에서 늙게 하는가?  

       

아와공산 추기심(我臥空山 秋己深)

상로욕락 세장침(霜露欲落 歲將駸)

형구기시 이등배(形軀豈是 異等輩)

천독인여 노산림(天獨忍予 老山林)

 

따르는 사람 날곡식 먹으며 굶주림 위로하는데       

흥에 겨워 미친듯 노래하며 오로지 산발하고 있네.   

맑은 밤 장차 가려하니 너를 어찌하리?                 

홀로 우는 두견새와 더불어 쇠잔한 달 원망하네.   

   

종인립식 위기갈(從人粒食 慰飢渴)

즉흥광가 료산발(卽興狂歌聊散髮)

청야차저 나이하(淸夜且狙 奈爾何)

독여제견 원잔월(獨與啼鵑 怨殘月)

 

*이 시는 무오사화가 일어나고, 매계선생이 의주로 유배를 갔는 시기인것으로 보인다..

 큰 바람이 휘몰아 치고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암울함 속에서

 굶주림과 두려움에 떠는 나날을 보내던 바로 그때가 아닐지?

 

 

2.매계가 지은 "구성(龜城), 공관(公館), 고매(古梅)” 세 절구에 차운하여

 

            적암(適菴) 조신(曺伸, 1454~1529)

 

원래 마고선녀같은 작약한 살결이라                      

평범한 풀도 세속 꽃가지와 같지 않네.                   

이 매실이 당연히 조리용인줄 모두 알고 있으니        

비바람에 시들어 떨어진들 누구를 원망하리오?     

    

원시고선 작약기(元是姑仙 綽約肌)

부동범초 속화지(不同凡草 俗花枝)

공지차실 당조정(共知此實當調鼎)

풍우조령 원아수(風雨凋零 怨阿誰)

 

가슴속에 천겹이나 품운 뜻 반도 열지 못했지만        

거칠고 더러운 곳에 몸 맡겨 다투는 것 사양했네.      

꽃다운 넋 봄빛 기다려 활짝 피길 기다릴 만하나       

옥 같은 자질 불러일으킬 길이 없네.                  

    

온포천중 반미개(蘊抱千重 半未開)

위신황예 사쟁외(委身荒穢 謝爭隈)

방혼가대 춘광만(芳魂可待 春光滿)

옥질무유 환기래(玉質無由 喚起來)

 

늙은 눈 몽롱하여 가는 천을 사이에 둔듯하니          

번화한 서울 길 밟으려 어찌 달려가겠는가?            

공의 싯귀에서 매계를 우러러 외우니                       

고산처사 임포집에 있는 듯하네.                          

 

노안몽롱 사격사(老眼朦朧 似隔紗)

하감추주 답경화(何堪趍走 踏京華)

송공시귀 매계상(誦公詩句 梅溪上)

여재고산 처사가(如在孤山 處士家)

 

*이 시는 제목이 "매계가 오래전에 지은 구성(龜城), 공관(公館), 고매(古梅)” 세 절구를

 고을 수령 정란에게 청하여 판에 새겨 걸기를 청하고 그 시에 차운하여 붙인다" 라는

 것으로 보아, 적암선생이 관직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할 때에

 매계와 같이 지내던 날들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3.중추의 보름달(中秋望月)

 

           적암(適菴)   조신(曺伸, 1454~1529)

 

추석날 밤에 앉아 밤이 긴것을 다시 깨닫는데          

은하는 소리 없이 굽은 회랑 돌아가네.                   

달이 조금 열리니 잎사귀 같은 구름 빛나고             

대나무 잎 떨어져 어지러운데 이슬 꽃 빛나네.          

 

중추야좌 각갱장(中秋夜坐 覺更長)

하한무성 전곡랑(河漢無聲 轉曲廊)

월리사아 운엽형(月離些兒 雲葉炯)

죽승영란 로화광(竹承零亂 露華光)

 

관직하나 나를 얽으니 맑은 흥에 허물되고             

수 없이 울리는 다듬질소리 고향 생각 일으키네.      

또 술잔 갖춰 때로 지나치게 많이 마시며               

다시 싯귀 찾아 비단 주머니에 넣어 주리.              

 

일관누아 고청흥(一官累我 辜淸興)

천저명침 동고향(千杵鳴砧 動故鄕)

차판주배 시통음(且辦酒盃 時痛飮)

갱탐신귀 부금낭(更探新句 付錦囊)

 

매계구거 -율수재-

 

4.매계 숙형 운에 차운하다(次梅溪叔兄韻)

 

                적암(適菴) 조신(曺伸, 1454~1529)

 

사면령 은혜 언제 입을까? 우두커니 생각하고          

홀로 청산 마주하며 두 눈썹 찡그리네.                   

강가에서 발 씻고 탁주 외상으로 사고                   

숲 아래서 두건 비스듬히 쓰고 맑은 시 찾네.     

      

계간우로 저하시(鷄竿雨露 佇何時)

독대청산 축양미(獨對靑山 蹙兩眉)

탁족강우 사탁주(濯足江于 賖濁酒)

안건임하 탐청시(岸巾林下 探淸詩)

 

뚝뚝 떨어지다 남은 눈물은 밝은 임금 때문이나       

찻잎 모두 삶은 건 비장 병 고치기 위함일세.           

누가 헤아려 주리오? 예문관 옛 학사가                 

집 뚫리고 울타리 무너져 업신여김 당하는 줄         

 

적잔고루 연명주(滴殘苦淚 緣明主)

팽진신차 위병비(烹盡新茶 爲病脾)

수요금난 구학사(誰料金鑾 舊學士)

옥천리결 피인기(屋穿籬缺 被人欺)

 

*이 시는 사면령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물러가고 중종이 등극한 얼마후로 보이는데,

 적암선생도 병이들고, 집도 구멍이 뜷리고, 담장이 무너져 내려도 손도 못쓰는

 아주 암담하고 처참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다.

 이 때는 적암이 50대 후반으로 노년에 접어들었을 시기인데,

 현재 "매계구거(梅溪舊居)"라는 율수재, 바로 그곳의 허물어져가는 옛집에서

우리 선조들이 격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 후손들의 가슴이 즈려옴은 숨길 수 없다.

 

 

그후 중종이 나라를 다스려 테평하게 한 그 이듬해인 1507년(정묘,丁卯),

원통한 죄를 거슬러 올라가 풀어주고, 매계 조위선생을 가정대부(嘉靖大夫)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경연춘추관성균관사(經筵春秋館成均館事)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홍문관(弘文館) 제학(提學),

예문관(藝文官) 제학(提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에

추증하였으며, 자손에게 녹용(錄用)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므로 매계선생이 유배가던 1498년부터 1507년 신원(사면)되기까지

10여년간 가산이 적몰(나라에 뺏기다)되고 시와 서책, 기록등도

모두 불에 태워지거나 소멸시키고, 벼슬도 못나가게 되니,

따라서 먹을것도 없는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고통을 격어셨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