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은 충북 옥천 군북면 이백리에 있는 서당건물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0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2020년 12월 29일 옥천 이지당을 포함한 강릉향교(江陵鄕校)의
명륜당(明倫堂) 등 20건(서원 3건, 향교 14건, 서당 3건)을 보물로 지정하면서,
이 20건은 역사· 예술· 학술· 건축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趙憲1544~1592)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으로, 각신마을앞에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따라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하고 친필편액을 걸었었다.
뒤에 송시열(1607~1689)이 시전(詩傳)의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
즉 1)‘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2)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 라는 뜻의
문구에서 끝의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 고치고 친히 현판을 썼다.
그후 퇴락된 것을 1901년(광무 5), 옥천 옥각리(玉覺里) 금씨(琴氏)· 이씨(李氏)·
조씨(趙氏)· 안씨(安氏)의 네 문중에서 이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정통 성리학자로 본관은 은진, 자는 영보, 호는 우암.
주자의 학설을 전적으로 신봉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평생의 업을 삼았으며,
17세기 중엽 이후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서인노론의 영수이자
사상적 지주로서 활동했다. 보수적인 서인, 특히 노론의 입장을 대변했으며,
명을 존중하고 청을 경계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기조가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쳤던 조헌(趙憲:)은 친필로 ‘각신서당’이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조헌의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
도원(陶原) 또는 후율(後栗)이며,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이의 문인 가운데서도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1,700여 명을 규합하여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승병(僧兵)과 함께 청주(淸州)를 수복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후 금산싸움에서 700명의 의병과 함께 순국하였다.
이지당 뒷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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