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華城行宮)은 수원 남창동 화성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으로 행차할때
임시거처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궁궐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1997.12)되었다.
화성행궁은 사적 제478호, 화녕전은 사적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한각, 복도각, 이안청은 보물 제2035호로 지정(2019.8) 되어있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현륭원(현 융건릉)으로
옮기면서 능 주위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이주시키고
이곳에 새로운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참고로 융건릉(隆健陵)의 융릉은 사도세자와 현경왕후를 모신곳이고,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를 모신곳으로 합쳐서 융건릉이라 하며 화성시에 있다.
화성행궁은 1794~1796년(정조18~20년)에 화성 축성과 함께 팔달산
동쪽에 건립했는데, 규모는 전체 557칸으로 다른 행궁에 비해 현저히 크고
웅장하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으로
평상시에는 유수부의 관청으로 사용하였다.
행궁은 전체적으로 앞쪽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정면 중앙에는 약간 안으로 들여 정문인 신풍루(新豊樓)가 있고
중축 선상에 내삼문인 좌익문(左翊門)과 중양문(重陽門)이 있으며
정당인 봉수당(奉壽堂)이 가장 안쪽에 배치되었다.
신풍문은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신풍은 "임금님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수원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로, 1795년 정조가 참석한 가운데
신풍루 앞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죽을 끓여먹이는 진휼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정당(正堂)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진찬연)을 열었다.
정당(봉수당) 향우측에는 초창기 때의 모습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낙남헌(洛南軒)이 있으며, 낙남헌은 본래 읍치의 득중정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건물 규모는 7량가로 14.5칸이고 낙남헌 뒤쪽으로는 용마루가 이어지면서
남쪽으로 꺾인 노래당(老來堂)이라는 건물이 있다.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특별과거시험과 양로연을 열었다.
노래당(老來堂)은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노후생활을 꿈꾸며 지은 건물이다
화녕전(華寧展)은 정조대왕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시기 위해
순조 1년에 세워진 건물로, 화성에서의 "화(華)자와 "시경"에서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는 귀녕부모(歸寧父母)에서 녕(寧)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사적 제115호로 지정(1963년) 되어 있으며,
운한각, 복도각,이안청은 보물 제2035호로 지정(2019.8월) 되어있다.
정조대왕 어진은 운한각에 봉안되어 있다
유여택은 1790년(정조 14)에 지은 건물로 정조는 이곳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세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화녕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봉수당(정당) 서북쪽으로는 모서리끼리 연결된 장락당(長樂堂)이 있는데
이곳이 왕의 침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장락당 앞으로는 경룡관이라는 누각 형식의 삼문이 있다.
장락당 향좌측 복내당(福內堂)은 행궁의 내당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복내당 앞에는 유여택(維與宅)이라는 5량가의 8칸 건물이 있다.
고을수령과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
행궁 앞으로는 관아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신풍루 향좌측에는 외정리소, 비장청, 서리청, 남군영 등이 있고
향우측에는 집사청, 북군영, 우화관 등이 있다.
외정리소는 화성에서 거행되는 국왕의 행차나 행사에 드는
모든 비용문제를 총괄하는 곳이다.
정조 19년(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를때
행사준비를 담당하기 위해 임시기관으로 만들었다.
행사후에는 화성행궁의 수리, 군사들의 식량과 말 먹이까지 관장하였다.
읍치 건물에는 남북 군영과 비장청, 무기고 등이 있고
나머지 외정리소, 서리청, 집사청 등은 성곽 축조 때 지은 것들이다.
1874년(고종 11)에는 2만 냥을 들여 행궁 지붕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화성행궁은 고종 때 까지도 잘 유지되어 왔다고 볼 수 있으나
구한 말 개화의 물결과 함께 수원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1910년 세워지면서 행궁 일부가 파손되었다.
1989년 화성행궁 복원 추진위원회가 설립되고
1991년에는 수원 의료원 건물이 이전되면서 1993년에 수원시에서
화성행궁 복원을 위한 장기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따라 2003년 복원공사가 완공되어 옛 모습을 되찾았다.
"화성"은 석축 성곽으로 길이는 총 5,7km이며
창룡문(동), 화서문(서), 팔달문(남), 장안문(북)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다.
김홍도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채제공, 정약용을 포함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건설에 참여하였으며, 벽돌과 돌의 쌓는 방법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 방법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건설 비용과 인원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뛰어난 건축술로 인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개발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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