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계고택(漁溪古宅)은 경남 함안 군북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漁溪 趙旅, 1420~1489)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초에 조려(趙旅)의 조부(祖父)인 전서공 조열(典書公 趙悅)선생은
이성계가 고려 공양왕을 폐위(고려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여 태조왕이 되자
공조전서(工曹典書, 정2품, 오늘날 국토건설부장관)의 벼슬자리를 내던지고
경기도 두문동으로 들어가 몇 달 살다가, 경남 합천 두심동으로 내려와
거기서 2~3년간 살다가, 다시 지금의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로 내려와
정착함으로써 함안조씨(咸安趙氏)가 되었으니,
함안조씨라는 본관이 태생된 집이 바로 어계고택(漁溪古宅)이라 할수있다
참고로 함안조씨(咸安趙氏)들은 시조를 조정(趙鼎)으로 하고 있다.
조정은 중국 후당(後唐, 923~936년) 사람으로,
신라말에 두 아우인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한반도로 들어왔다.
조정(趙鼎)은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합천에서 군대를 일으켜
후백제 견훤의 군대를 대파하고, 동경주현(東京州縣)의 대부분을 항복받아
후삼국을 통일하여 고려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고려태조 왕건은 그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대장군(大將軍,종3품무관직),
원윤(元尹) 등의 높은 벼슬을 내려주었다.
또 940(태조23)년에 신흥사(新興寺)를 중수할 때 공신당(功臣堂)을 짓고,
그 벽면에 고려개국공신들을 그려 넣었는데,
그 그림에 이름이 올라간 개국벽상공신(開國壁上功臣)이다.
조려(趙旅)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셨다.
그 후 어계 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忠臣 贈 吏曹參判 趙旅 之閭 肅宗癸未 命旌 正宗辛丑 加贈吏曹判書 諡 貞節
충신 증 이조참판 조려 지려 숙종계미 명정 정종신축 가증이조판서 시 정철
이 정려문은 조려의 사후에 왕이 내린 정려문으로
숙종대왕이 1703년(숙종계미)에 충신 조려를 이조참판에 증직하고
집에 정려(旌閭)를 세우라 명령 하였으며, 정조대왕은 1781년(정조신축)에
추가로 이조판서로 증직하고 시호를 정절공(貞節公)이라 내렸다.
어계고택이며 재실로 사용중인 원북재(院北齋)
금은유풍(琴隱遺風)의 금은(琴隱)은 어계 조려의 조부인 조열(趙悅)선생의 호이다
사당은 어계 선생과 부인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어계 조려(趙旅,1420~1489)는 조선 세종, 문종, 단종 때의 문신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 은자(漁溪 隱者)이다.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함안에 돌아와 백이산(伯夷山) 아래에 숨어 살았다.
함안 채미정은 조선 단종때에 생육신의 한사람인 어계(漁溪) 조려(趙旅)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 위를 차지한 세조의 처신에 격분하여
조정을 등지고 고향에 돌아와 여생을 보낸 정자이다.
1693년에 창건하였고 1954년에 재건(再建)하였으며,
단층 팔작지붕으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채미정(采薇亭)이란 이름은 "고사리나 캔다"는 뜻으로,
백세청풍과 같이 백이, 숙제의 중국고사에서 따온말이다.
건물 정면에 방형 연못이 있고 북쪽 절벽위에
청풍대(淸風臺) 석비와 육각정인 문풍루(聞風樓)가 있다.
이 글씨는 어계 조려선생의 유덕(遺德)을 추모(追慕)하여
선생의 15대 후손인 조삼규(趙三圭,1890~1950)가, 채미정 처마밑에 걸려있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씨를 이 고마암(叩馬巖) 벽에 새기면서
서산(西山)이라는 시(詩)를 지어 함께 새겼다 한다.
서산이라는 명칭은 중국사기열전에서 고죽국의 백이.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기전에 채미가를 지으면서
그 첫 구절에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사리나 캐지" 에서
절개를 지킨 수양산을 말하는 것으로, 곧 절개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서산(西山)
漁祖登臨日(어조등림일) / 어계선생 이곳에 오를땐
溪山淸復淸(계산청부청) / 계산은 푸르고 또 푸르네
後生誰不仰(후생수불앙) / 뒷 사람 누군들 우러러 보지 않으리
百世樹風聲(백세수풍성) / 영원토록 부는 맑은 바람소리를
후손 조삼규 고(後孫 趙三圭 稿) 청암(淸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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